스물여섯 살, 잡지 창간에 참여하다

in koreanmagazine •  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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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소꿉 장난이었다. 또 어떻게 보면 열정 페이였고 실은 시행착오이자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실은 핑계(술먹을 핑계, 짝지을 핑계)라는 깨달음을 처음 얻은 계기이기도 했다.

사회학을 동경했으나 엉뚱하게도 문학을 전공하게 된 나에게, 사회학 이론과 방법론을 사용해 문화 비평을 꾸준히 해나가던 그 잡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얄궂게도 발행 동인은 대부분 문학 전공자였다. 사회학 전공자들이 아니었다. 이들도 나처럼?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문학 비평과 문화 비평의 경계가 모호했으니까.

사실 진짜 사회학은 통계를 이용하고 상상력은 제한되는, 골치 아프고 딱딱한 학문이다. 내가 사춘기적 멋모르고 동경했던 사회학이란 그냥 자유롭게 뇌피셜을 펼치는, 바로 이 잡지에서와 같은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즉 문화 전반에 대한 분석과 담론 생산 말이다. 그러니 난 오히려 문학 전공하길 잘한 셈이었다.

그 문화 잡지에서 청년 잡지를 새로 만든다고 했다. 자기들은 중년의 기성 세대들이니 너희들만의 발랄한 생각들을 펼쳐 보이라고 주문했다. 저번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보수는 없었고 이번에는 접대조차 없었다. 술은 너희 돈으로 먹으라고 했다. 인쇄 비용을 대주는 게 어디냐는 거였다.

중년의 동인들 밑에서 따까리를 하던 소장파 연구자가 우리(청년)들의 리더로 파견되었고, 정말 잡지를 내는 건 맞는 듯, 이번에는 디자이너까지 합류했다. 물론 디자이너도 초보자로, 무보수였다.

소장파 연구자는 우선 현장 조사(에스노그라피)를 가자고 했다. 당시 슬슬 부각되던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가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의 문화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생뚱맞은 기획이었지만 호기심을 느낀 나와 몇 명이 따라 나섰다.

열악한 동네의 열악한 주거 시설에 가서 몹시 긴장된 분위기 속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났다. 통역자도 변변히 없는 방문, 외국인 노동자들은 몇 단어 알지 못하는 한국어로 뻔한 말들을 몇 마디 했다. 사장님 나빠요, 힘들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 잡지의 리더이자 현장 조사의 리더였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들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무모한 기획을 밀어붙이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입도 제대로 못 떼고 떨고 있었다. 그와 같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꽤 어려 보이는 동료 하나가 보다 못해 나서서 형식적인 질문이라도 던지고 있었다. 결국 참담한 심경으로 동굴과도 같던 곳에서 쫓기듯 나온 우리는, 다시는 그런 현장 조사를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문학 전공 반백수들이 모여 술이나 마시고 새로 나온 영화 얘기나 했다. 그리고 각자 주제를 정해 글을 쓴 다음 디자이너에게 보냈다. 디자이너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잔뜩 멋을 부린 편집을 하고 표지를 만들었다. 난 그녀가 내 글은 대충 디자인하고, 술자리에서 자기랑 히히덕거려주던 남자애들의 글에만 힘을 주어 디자인을 해준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게다가 글 전체를 교정을 본다든지 차례와 판권을 만드는 등의 부가적 업무가 내 몫으로만 떨어지고 다들 나 몰라라 하자 그것도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하면 출판 일을 경험해본 나에게 그런 업무가 주어지는 건 당연했고 오히려 권력이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때 내가 리더에게 분노에 차서 이메일을 보냈던 장면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래도 되는 거냐고. 왜 나만 혼자 일을 다 해야 하냐고. 리더는 아무 답장을 보내주지 않았고 나도 그냥 분풀이 한 번 한 것처럼 그러고 끝냈다.

그래도 잡지가 인쇄되어 나오긴 했으니, 아예 사기는 아니었다. 물론 각자 기념품처럼 십수권씩 나눠 가졌을 뿐 판매는 형편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놀라운 반응이 있긴 했다. 나에게 독자 이메일이 온 것이다. 그것도 내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문화계 거물에게서.

서점에 제대로 배본이나 됐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잡지를 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적시된 나의 글(문화 권력이 어쩌고 하는 내용이었다)도 읽고서, 글 말미(byline)에 적힌 나의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나에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한 번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흥분해서 펄쩍 뛰고 나서 답장을 보냈다.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쓴 거니까 잘못 알 것도 없고 어해를 풀러 만날 일도 없다고.

거물은 기분이 나쁜 듯,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답장을 보냈다. 나는 그 짧은 답장을 보면서 배시시 웃었던 것 같다. 유명인에게 이메일을 두 번이나 받고 나는 답장을 한번만 하다니, 정말 기분이 째졌다.

그 후로도 한두 번 더 비슷한 잡지 창간 작업에 참가한 적이 있으나 역시 모두 창간호가 마지막호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니 잡지라기보다는 동인지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 모인 우리는 동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느슨한 관계였다. 그치만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구인회나 백조 동인 같은 이들도 그 정도의 느슨함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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