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며, 친구 무리도 형성되고 커플도 생겼다가 싸우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등, 조용한 교실은 아수라장이 돼갔다. 정신없이 번역에 몰두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맨앞에서 단조로운 표정으로 자바 언어 강의를 하는 강사와 별개로, 학생들의 모니터에서는 오로지 수십 개의 메신저 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깜빡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강사가 풀이 문제를 내주고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메신저 창들이 일제히 숨겨졌다. 난 그냥 아래한글 문서를 띄워놓고 번역을 계속하면 강사는 돌아다니다가 나를 보고 웃으며, “자바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데요?” 하고 농담을 건넸다.
2류 학원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주워들은 지식은 남아서, 우선 학생 때 만들었던 개인 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증설할 수 있었다. 게시판을 종류별로 여러 개 만들고 설문 폼 같은 것도 달아서 친구들이 와서 교류할 수 있는 웹커뮤니티를 꿈꿨다. 혹시나 해서 그때 등록했던 도메인을 쳐보니 없는 곳이라고 나온다. 예전엔 그래도 도메인 네임 판매 회사의 안내 페이지가 떴는데 말이다. 플랫폼들이 득세를 하니, 멋진 인터넷 주소 같은 건 별 의미 없는 게 돼버렸다. 나의 sogul.net을 팔라는 제안도 받아보고 그랬는데
한동안 친구들을 모으며 재미있게 놀았던 홈페이지(커뮤니티 페이지?)를 닫은 건, 정신분열증세가 시작된 선배가 도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기록삼아 저장해두고 싶어 그때 선배가 도배했던 글들을 다운 받아서 가지고 있긴 한데, 그다지 말이 되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하룻밤에도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거의 백 페이지는 될 법한 글을 매일 써서 각 게시판에 골고루 올리던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거였을까, 그 행동은 무슨 의미였을까 잠깐씩 기억이 떠오르고는 했다. 별로 친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나서는 명함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였다. 당시에 내 주변엔 문화계 백수들이 많았고 직장이 있더라도 자신의 연락처와 이메일 등을 넣어 이쁘장한 명함을 만들려는 수요가 좀 있었다. 나도 유일하게 친했던 디자이너에게 부탁해 명함을 만들었더랬는데, 이제 나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된 거다. 그걸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더니 수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디자인료는 받을 수 없었고 그야말로 실비, 인쇄비만 받고 만들어주었다. 한 통에 3만원 정도로, 단골 명함집(인쇄소)도 생겼다. 한 주가 멀다하고 제작을 의뢰하러 갔으니까. 나에게 명함을 의뢰했던 친구 중에는 영화감독을 준비중인 애가 있었는데 무려 앞뒤 제작(앞면은 한글 뒷면은 영어)을 의뢰하며 감독이라는 뜻의 director를 directer라고 지맘대로 써놔서, 큰 망신을 떨칠 뻔한 걸, 고쳐서 제작해준 뿌듯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친구의 친구에게서까지 절찬리에 의뢰가 들어오며 슬슬 명함 제작에도 싫증이 날 즈음.. 친구의 남편의 동생에게서 의뢰가 들어왔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이 이미 가지고 있는, 내가 만들어준 명함을 보더니, 이 피아니스트 동생은 약 10만원의 수고비도 함께 주겠다고 해서 다시 의욕을 좀 내볼까 싶었다.
근데 이분이 디자인을 자꾸 뺀지를 놓는 것이었다. “어… 뭐랄까 좀더 엘레강스하고 프레시한 디자인은 없을까요….” 꼭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그런 느낌의 뺀지를 두 번 먹고 나자, 세상에 돈 받고 하는 쉬운 일은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새삼 반복되면서, 돈 안 받고 하는 일만 하고 살고 싶어졌다.
그럴 땐 잠수가 최고였고 난 다시는 그녀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결국 친구를 통해서 연락이 왔을 때는, 그냥 퉁명스레 의사를 전달했다. 내 디자인 실력으론 고객을 만족시켜드릴 수 없을 것 같으니 포기하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