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완벽한 아침
지난여름 여행이 아닌 일로 제주에 출장을 갔어요. 다음날 일정이 11시부터라 오전에 짧게 여유시간이 생겼죠. 10분이라도 더 여유로운 개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일출이 아름답다는 가까운 오름에 가기로 했어요.
일상이었다면 알람을 세 번쯤 끄고 간신히 일어났을 텐데, 벨 소리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말똥말똥 눈이 떠지더라고요. 숙소인 하도리와 차로 20분쯤 걸리는 다랑쉬오름으로 갔어요.
오롯이 둘이서,
일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주변이 밝아서 살짝 실망했죠. 맑은 지평선 위에서 뜨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훨씬 더 일찍 이어야 했나 봐요. 그래도 어스름히 밝아지는 대지와 한 걸음씩 위로 오를 때마다 바뀌는 풍경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오름에 올랐어요.
다랑쉬 오름은 마냥 쉬운 오름도 아니지만, 캔버스 화 정도로도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어요. 숨이 조금 찰 때쯤 꼭대기에 도착하죠. 아무도 없는 오름 위에서, 방금 떠 오른 해와 오롯이 마주하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상쾌하다, 아름답다, 고요하다, 벅차다 같은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제 내려가려는데 중년 부부가 올라오시더라고요. 아침 산책 중이신 것 같았어요. 집에서 가져온 사과와 토마토를 한쪽씩 나눠주시면서 오름을 크게 한 바퀴 돌아봤냐고 물어보셨어요.
오름은 작은 화산이잖아요. 정상이 분화구처럼 움푹 팬 오름이 많아요. 나는 올라오자마자 오른쪽 길만 보고 정상으로 왔는데. 왼쪽 길로 가면 오름 분화구를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댔어요. 그렇게 돌아야 오름이 제대로 보인데요.
낭만적인 아침인사
정말 그렇더라구요. 오름 분화구의 능선이 강물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일렁여요. 다랑쉬오름에 가면 꼭,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서 정상으로 가보세요. 오름을 다시 한 바퀴 돌고 내려가려는데 수풀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리고. 길 끝에서 노루가 폴짝 뛰어나와 저를 마주 보고 섰어요. 겁이 많은 녀석인지 내가 한걸음 떼니 도망갈 준비를 하더라고요. 눈인사만 하고, 다시 풀썩 수풀로 뛰어든 녀석. 아침 인사치고는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요?
천연기념물의 숲에서 하는 조깅
제주의 여름은 정말 더웠어요. 가벼운 트래킹이라 생각했는데 온몸이 땀 범벅이었죠. 다시 숙소로 가려고 내비게이션을 보니 비자림 숲이 바로 옆에 있더라고요. 숲은, 이른 아침이 제일 예쁜 거 아세요? 아침 햇살이 나뭇잎나무 잎 사이사이로 길게 빛을 뿌려서 예쁘거든요. 차로 5분 만에 비자림에 도착.
시원한 숲 그늘을 천천히 걸었어요. 비자림은 관광객도 많이 찾는 유명한 곳이에요. 아침 일찍 가보니 가볍게 조깅을 하거나, 천천히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이 많았어요. 걷다 마주치면 서로 눈인사를 하고, 습기를 머금은 이끼를 쓰다듬고, 차분히 가라앉은 숲의 공기를 몸으로 가득 들이마시는 아침.
시계를 보니 아직도 9시가 채 안 됐더라고요.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세화해변이 생각났어요. 다랑쉬오름에 오를 때부터 땀이 한가득하여라 차가운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시간도 남았겠다 바다로 행했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해수욕장. 파도를 조각내는 아침 햇살. 온몸에 닿는 부드럽고 시원한 물결. 바다에 둥둥 떠서 흘러가는 구름, 물소리를 듣다가 멋진 친구도 만났어요. 나보다 훨~씬 수영을 잘 하는 잘생긴 리트리버! 주인아저씨랑 신나게 놀고 가더라고요.
바다에서 나와 벗어뒀던 티셔츠로 몸을 쓱쓱 닦고 바위 위에 잠깐 앉아 있으니까 금세 몸이 마르더라고요.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주인 언니에게 문자가 왔어요. 조식 먹으러 안 오냐고 놀았는데 아직 조식 시간도 안 끝났다니 멋지고 황홀한 제주의 아침.
이래서 많은 사람이 제주의 삶을 꿈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복되는 삶은 어디나 비슷하겠죠. 그런데 제주의 일상 속 조각은 이렇게나 멋진 풍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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