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훈련병 시절 이야기 - 논산 육군훈련소 1주차

in kr-army •  7 years ago 

이번 오마주는 훈련병 시절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잊을만 하면 생각나는 그 때 그 시절...
기존 포스트에 내용 약간 추가했습니다.

링크: https://steemit.com/kr-army/@dorian-lee/1


1주차 때는 그리 힘든 교육은 없다. 주로 내무반에서 정신교육을 받거나 제식훈련, 총검술 등을 배웠다. 교육 자체로는 힘든 게 없지만, 시키는대로 하지 못하거나 군기가 조금이라도 빠졌다 싶으면, 즉시 얼차려를 받았다. 교육이 힘든 게 아니고, 얼차려가 힘들었다. 나 또한 조교들의 눈에 띄어 개인 얼차려를 많이 받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조교들에게 쉽게 찍혔다.


(추가 글)
일조 점호 후 매일마다 구보를 했다. 줄 맞춰서 뛰어야 했지만, 같이 뛰는 조교의 지시에 따라 번호를 붙여가며 뛰어야 했다.

"번호 붙여~ 갓!"

"하나~! 둘~! 셋~! 넷~! 하나둘셋넷! 하나둘셋넷!"

그냥 뛰어도 숨이 차는데, 소리까지 질러야 하니 더 힘들었다. 코스의 중간쯤에 이르니 훈련병들의 목소리는 점점 저 작아져 갔다. 이에 열받은 조교는 훈련병들을 세우고 토끼뜀이나 오리걸음을 시켰다. 숨 차는 상황에서 다리 근육의 고통까지...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교는 그럼에도 성에 안 찼는지 우리들을 내무실에 복귀시키고도 얼차려를 계속 주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앉어! 일어서!"

얼차려도 힘들지만, 이러다 아침 못 먹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밥 생각은 나더라는...


5일차. 그 날은 영내가 아닌 영외로 교육 출장을 나갔다. 영외로 나가는 날은 대체로 아침에 구보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 나가는데만 해도 평균 40~50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침에 바쁘게 단독군장을 갖추며 준비를 끝내고, 28연대 근처의 쪽문으로 병력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나가자마자 눈 앞에 논이 쫙 펼쳐져 있었고, 간간이 집들이 보였으며, 멀리서 수많은 산들이 보였다. '논산은 논이랑 산 밖에 없어서 논산이다.'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교장까지 가는데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2열로 줄을 서서 한 열은 길 한쪽 끝에, 다른 열은 반대쪽 끝에서 줄을 유지하며 걸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가는 동안에는 조금씩 애들과 떠드는 애들도 있었으나, 이를 통제하는 교관이나 조교는 없었다. 교장으로 가는 도중에 민가가 눈에 띄었다. 부대 안에만 있다가 민가를 보니 훈련병들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도착해서 첫 영외교육으로 오전에는 제식훈련을 받았는데, 경계근무와 관련된 동작을 배웠다. 두 시간의 제식훈련이 끝나고, 나머지는 경계근무에 대해서 배웠다. 2년 2개월의 육군 병사로 군 생활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초를 선다. 이에 관한 기초적인 교육이 이 날 실시되었다. 보초를 서면서 해야 할 것, 해서는 안되는 것들, 모르는 사람이 눈에 띄었을 때 해야할 일 등을 배웠고, 이를 실습하면서 조금씩 익혀 나갔다.
영외 교육은 2주차, 3주차 들어가면서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그에 따라 훈련 강도는 조금씩 높아져 갔다.


1주차 교육이 끝나고, 일요일날 오전에 종교행사가 있어서 교회로 갔다. 육군 훈련소는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26연대에서 교회까지 가는데만 해도 20분이 걸렸다. 연무대 교회는 1000여명이 넘는 훈련병들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히 컸다. 연무대 교회에 크게 걸려 있는 문구가 있었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너무나 인상깊은 문구라서 수양록에 적어두었다. 처음에는 복음 성가와 찬송가를 부르며, 분위기가 들떴고, 이어서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다. 입소대에 있을 때와 달리 설교 내용이 딱딱했다. 그래서 졸거나 자는 훈련병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랬다. 종교 행사가 끝나고 초코파이를 기대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오지 않았다. 그 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뒤로 성당이나 법당으로 가는 애들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당연히 초코파이 때문이었다.

야간 종교행사도 있었고, 난 오전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택했다. 이번에는 복음성가와 율동이 주를 이루었다.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고, 여러가지 율동을 취하며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야말로 놀며 즐기는 분위기였다. 훈련병들은 이럴 때 연무대 교회를 '연무 나이트'라 부르기도 했다. 오전에 초코파이를 주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교회로 갔다. 나는 초코파이 때문에 종교를 파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가)...라고 그 당시에는 나름 고상한 척을 했던 것 같았다.


이 글은 [오마주]프로젝트로 재 발굴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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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가 개종까지 시켜주는 마법의 과자임

맞습니다. 그 때는 그랬었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