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미술 미술관 체험하기

in kr-art •  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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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었다. 씨알콜렉티브(CR Collective)에서 열리고 있는 황연주 개인전 <H양의 그릇가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오잉? 출입문이 닫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출입문에 부착된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전화를 했다. 씨알콜렉티브 오세원 대표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H양의 그릇가게’에 들어서니 온갖 그릇들이 바닥에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색유리 표면을 조각해서 만든 크리스탈 와인병과 잔에서부터 미제 파이렉스 접시, 중국식 다기세트, ‘홍장미 세트’라는 커피잔 세트, 스테인레스 그릇뿐만 아니라 락앤락 투명 플라스틱 밀폐용기와 원목 장식장까지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물들을 수집한 것일까? 그렇다! 그것은 일종의 ‘레디-메이드’이다. 미술계에서 ‘레디-메이드’ 사용은 뒤샹의 ‘샘’(1917)을 시작으로 이미 100년이 넘었다. 어떤 생각으로 황연주는 ‘레디-메이드’를 전시한 것일까? 우선 오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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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 작가는 2016년 과천아파트개발로 슬럼화 되어가는 자신의 동네에서 우연히 땅에 반쯤 묻혀 있는 그릇더미를 발견했다고 해요. 그 그릇무더기는 주변 주택에 살던 모 주부가 새 아파트로의 이사와 함께 ‘버린 것’ 같다고 하네요. 황 작가는 그 그릇들을 작업실로 가져와 깨끗이 설거지를 했어요.”

‘H양의 그릇가게’ 바닥에 진열된 각종 그릇들은 다름아닌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이다. 아니다! ‘H양의 그릇가게’ 진열된 각종 그릇들 중에는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들도 있지만 작가가 직접 중고가계에서 구입한 것도 있고 주변인들로부터 받은 것도 있단다. 다시 오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작가는 이후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릇과 그릇에 얽힌 사연을 받기 시작했고, 중고가게를 기웃거리면서 그릇들을 모으기도 했으며, 심지어 길가에 버려진 그릇을 줍기도 했어요. 급기야 페이스북에 ‘H양의 그릇가게’를 개설해 페친들로부터 그릇을 제공받기도 했지요. ㅎㅎ”

난 페이스북 ‘H양의 그릇가게’를 방문했다. 2017년 10월 17일 황연주는 페이스북 ‘H양의 그릇가게’를 오픈해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경의를”이라는 슬러건으로 페친들에게 “여러분의 이야기가 담긴 그릇들을 찾습니다”고 공고했다.

황연주가 페이스북에 ‘H양의 그릇가게’를 오픈하니 “간혹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셔서 오프라인 매장은 어디인가를 묻는 분도 계셨고, 이제 작가생활이 어려우니 부업을 시작했냐며 나름 반가워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H양의 그릇가게는 오프라인 매장은 없습니다만, 모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고 7개월 간의 온라인 ‘H양의 그릇가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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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는 페친께서 페이스북 ‘H양의 그릇가게’에 그릇 제공 메시지를 남기면 직접 받으러 갔다. 물론 그녀는 페친들로부터 받은 그릇뿐만 아니라 그릇에 관한 사연도 받았다. 그렇다! ‘H양의 그릇가게’에는 각종 그릇들과 함께 각종 사연들도 제공되어 있다.

물론 그녀는 각종 그릇 제공자들로부터 받은 사연을 그녀가 정리(각색)하여 A4용지에 인쇄해 놓았다. 따라서 황연주의 ‘레디-메이드’ 작업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그의 후예들의 ‘레디-메이드’ 작업과 다른 지점이 바로 ‘사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뒤샹의 ‘남자소변기’나, 댄 플레빈의 ‘형광등’, 칼 앙드레의 ‘벽돌’이나 ‘철판’, 제프 쿤스의 ‘진공청소기’나 ‘농구공’, 하임 스타인바스의 ‘운동화’나 ‘주전자’ 그리고 ‘냄비’ 등에는 사연이 부재한다.

글마들은 중성적인 대량생산품 그 자체를 제시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글마들의 ‘공산품’ 이외에 기욤 바일의 ‘농산품’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수산품’과 ‘축산품’ 그리고 ‘인간(해골)’에 이르는 ‘레디-메이드’ 역시 사연이 부재한다.

그렇다면 황연주의 ‘레디-메이드’는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황연주의 ‘레디-메이드’를 뒤샹이 가지 않은 길을 꾸준히 가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레디-메이드’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렸던 황연주의 개인전 <기억하는 사물들>이 그것이다. 당시 황연주는 주변의 지인들과 이웃들로부터 각종 사물들을 제공받아 전시해 놓았다. 물론 그녀가 그들로부터 받았던 사물들은 두 가지 조건 하에 이루어졌다.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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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현재로서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지만 버릴 수 없는 것, 둘째,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현재도 쓰임새를 가지지만 빈도수가 많지 않은 것. 단, 너무 소중해서 빌려줄 수 없는 것들은 제외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각종 사물들을 빌려주는 이들로부터 사연도 받았다. 물론 당시 그녀는 사연을 각색하지 않고 그들의 육성을 녹음해 전시장에서 들려주었다. 물론 그녀는 제공받은 사연있는 사물들을 전시가 끝난 후 되돌려주었다.

따라서 황연주의 <기억하는 사물들>은 뒤샹과 후예들의 ‘레디-메이드’와는 달리 일종의 ‘빌려쓰기’인 셈이다. 이를테면 뒤샹과 후예들의 ‘레디-메이드’는 사물에서 작품으로라는 ‘작품의 예정설’에 덜미잡혀있는 반면, 황연주의 ‘레디-메이드’는 사물에서 작품으로 다시 사물로 되돌려주기라고 말이다.

물론 황연주의 <기억하는 사물들>은 타자들에게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이겠지만, 그 사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하나하나 저마다의 의미 있는 ‘기억하는 사물들’인 셈이다. 따라서 그녀의 <기억하는 사물들>은 사적인 사연의 사물들을 전시를 통해 공공적인 사물로 둔갑시킨다.

더욱이 황연주의 <기억하는 사물들>은 타자의 (소외받고 상처받은) 사연들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타자의 소외와 상처를 보듬는 작가의 심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2012년 황연주는 대안공간 정다방프로젝트와 복합문화공간 솜씨에서 개인전 <장소의 의미(SENSE OF PLACE)>를 개최한다. 그녀는 개인전을 앞두고 1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사이트 프로젝트’를 개설해 사람들의 사연을 모집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페친들은 자신과 관련한 공간에 관련한 지도를 올리면, 작가가 그중 하나를 선정하여 제시한다. 그러면 참여자들은 그곳과 관련된 사연의 글을 올린다. 두말할 것도 없이 참여자들의 사연은 SNS상에 올리기 전까지 그/녀만의 사연이었지만, 페북에 올려지면서 타자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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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는 페친들의 사연을 읽고 페친들이 언급한 곳으로 찾아가 오브제를 수집하고 소리도 채집(녹음)헤 전시장에 전시했다. 그것이 황연주의 ‘너의 추억과 나의 기념품’(2012)과 ‘스쳐 지나가다’(2012)이다.

2015년 황연주는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서 개인전 <타인의 삶>을 개최한다. 그녀는 한국전 당시 양구군 지역에서 전사한 나이 어린 학도병들의 명단에 적힌 이름과 같은 동명이인을 현실에서 찾아내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죽음을 느꼈던 여러 순간’에 대하여 질문했고, 그들은 다양한 죽을 뻔한 사연들을 진술했다. 그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 다름아닌 황연주의 단채널 영상작품 ‘타인의 삶’(2015)이다.

황연주의 ‘잔여물들’(2015)은 양구의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버려진 것들(탄피나 지뢰파편, 철 쪼가리, 죽은 새, 뼈 등)을 수집한 각종 오브제들을 전시한 작품이다. 따라서 그녀의 ‘잔여물들’은 기억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와이? 왜 그녀는 기억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녀의 답변이다.

“삶에 대한 불확실성은 때로는 눈앞에 와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수반하지만,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기억의 죽음, 즉 잊혀지는 것이다. 죽지 않고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길,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상실은 죽음 그 자체보다 슬프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옛 애인으로부터 잊혀진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머시라? 황연주의 그릇가계에 전시된 사물/작품들 중에 하나를 선정해 사연을 들려달라고요? 조타! ‘시어머니의 장식장’에 대한 사연 일부를 이곳에 인용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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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 작가의 후배로부터 받은 “한때 유행한 ‘바로크 가구’풍의 이 장식장은 최근 유행하는 소위 북유럽 감성과는 대척점에 있을 법합니다. 실제로 제 작업실에서도 도무지 둘 곳이 마땅치 않았으니, 현대적 생활패턴을 가진 후배의 아파트에서는 얼마나 물 위의 기름 같은 존재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고급 취향이 되어 시어머니의 취향이 담긴 장식장을 몰아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시어머니들은 이 장식장 같은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전시장 한 켠에서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 소리가 들린다. 벽면에 투사된 영상작품에서 나오는 사운드였다. 황연주는 목욕용 작은 의자에 앉아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바닥을 가득채운 각종 그릇들을 하나씩 하나씩 닦고 있다. 그녀는 그릇을 닦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H양의 그릇가게>에 대해 작가노트에 다음과 적었다.

“전시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과 사회적 기억 및 역사를 연결시키는 미시사(微示史)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가령 미시사의 관점에서 하나의 '그릇'에 관한 기억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에게 그 그릇에 담긴 추억의 음식이 가진 의미를 생각함과 동시에 그 특정한 스타일의 그릇이 제작되던 시기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 사회를 살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그릇들은 개인적인 기억과 동시에 사회, 문화적 기억을 담은 타임캡슐로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느날 '나'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다 옛 기억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하는 것을 시작한다. 황연주의 <H양의 그릇가게>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시간을 뿌리로 두고 있다.

프루스트가 어린시절을 기억해 내는 글쓰기를 통해서 망각에 맞서듯이, 황연주은 사라져가는 오브제들을 통해서 기억에 마주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사라져가는 오브제들의 실재를 기억, 즉 사연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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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의 <H양의 그릇가게>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상품들을 새롭게 구축한 작품으로 기억이라는 사연을 통해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고 난 생각한다). 뒤샹과 그의 후예들은 ‘레디-메이드’를 한결같이 오브제의 ‘익명성’에 방점을 찍은 반면, 황연주는 오브제 ‘사연’에 주목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오브제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품들이다. 그런데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 즉 누구나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황연주의 <H양의 그릇가게>는 ‘생활 속의 미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남은 것은 우리 각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라져가는 오브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신의 오브제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가?

씨알콜렉티브의 황연주 개인전 <H양의 그릇가게>는 6월 2일까지 전시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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