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광수 교수님 제자 박기태입니다. 오늘은 연재중인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의 4편, 자택 방문 편입니다.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1): 기억, 수업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2): 소설, 음식과 담배
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3): 반복과 늙음, 산다라박의 사자 머리
1. 자택 방문
교수님의 집에 간 이유는 역시 '사라'때문이었다. '즐거운 사라'는 절판되어 당시에 매우 구하기 힘든 책이었고(연대 도서관에도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 들어가 있다), 교수님 본인도 몇 권 안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나는 책을 달라고 혹은 빌려달라고 조른 것이다. 교수님은 학교에 가져오기 힘드니 집으로 와서 보라고(그리고 복사해서 다시 반납하라고) 하였다.
동부이촌동에 있는 교수님의 집은 고급스럽고 널찍한 아파트 단지에 있었는데, 집 안에 들어서니 그 넓은 집이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온갖 야한 물건들로 가득찬 연구실과 달리, 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인지 별달리 야한 물건들은 없었던 것 같다.
집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등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걸 보아 아마 늘 하던 이야기나 좀 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은 마교수님의 노모께서 사과를 깎아서 주셨던 것, 그리고 마교수님이 역시 오물오물, 그 사과를 먹었던 것 정도이다. 집에 돌아가는데, 마교수님과 노모께서 모두 문 앞까지 배웅해 주셨던 점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두달 뒤, 당시 하던 '아우름'이라는 토론동아리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마교수님 집에 방문했다. 교수님께 애들 데리고 찾아갈테니 좋은 얘기좀 해달라고 미리 말을 했더니, '내가 엄청 바쁜데.. 출판사도 만나야 하고... 할 일도 있고 그래. 바쁘니까 1시간 이상은 시간 못내' 라고 하셨다.
동아리 친구와 후배들을 데리고 마교수님 집에 찾아가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예의 늘 하는 그 이야기였다. 그리고 바쁘시다니 1시간 후 일어나기로 했는데, 마교수님은 대놓고 아쉬운 눈빛으로 '아니 왜 벌써 가.. 나 괜찮은데' 라고 하셔서, 한 시간 정도 더 있다가 나갔는데, 당시 나갈 때도 '아니 이정도면 충분해? 더 있다 가도 되는데' 라고 하시는 것을 모른 척 하고 나왔다.
이런 말 하면 죄송스럽지만, 집에 강아지를 두고 나올 때 강아지가 보내는 눈빛 같은, 그런 외로움과 아쉬움을 느껴서, 불현듯 미안해졌다. 강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늘 바쁜 유명인이었던 그 분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때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이 마교수님과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맨 오른쪽이 나이다). 부음을 듣고 나니 사진이 한 장인 것이 아쉬워서 더 찍을걸 싶은 마음이 들지만, 뭐 내가 마교수님과 셀카 찍는 순간의 어색함을 상상해보니 돌아가봐야 사진이 더 남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 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교수님을 찾아가지 않았다.
2. 나에게, 마광수는.
2008년은 나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2005년 군대 휴가때부터 만난 첫 여자친구와 그 해 헤어졌는데, 그 순간이 나에겐 마치 세계의 종말처럼 느껴져서, 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자주 술을 마시고 여러 사람을 만나 거짓말로 여러 거짓 연애들을 만들었다. 친구들이 고시공부냐 취업준비냐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이 시궁창처럼 느껴졌고 나는 스스로를 쓰레기라 생각했다.
바로 그 때, 마교수님을 만났다. 당시 나는 마교수님의 사상에 거의 동의할 수 없었지만, 세상과 불화하다 부딛혀 조로한 천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무언가 위안이 되었다. 나도 좀 더 세상과 불화해도 될 것 같았고, 나의 방황이 의미 있는 일처럼 생각되었으며, 방탕한 내 생활도 좀 괜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2008년 가을부터, 더 이상 교수님의 방을 찾지 않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좀 더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새로 안정적인 연애를 시작하며 방탕한 삶을 청산했으며, 노숙인단체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들을 발견했다. 즉, 마교수님은 더 이상 내 삶에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교수님과 문과대 앞에서 몇 번 마주쳤을 때나 이야기를 하였고, 교수님은 ‘좀 놀러오고 그래-’라고 아쉬워하곤 하였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몇년 뒤 나는 로스쿨에 입학했고, 바쁜 상황에서 마교수님에 대하여 상당부분 망각했다. 그러던 중 아마도 2012년쯤, 우연히 교정에서 교수님과 다시 마주쳤다. 나는 좀 어색하고 죄송했지만 교수님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도 어색한지, 혹은 기억을 제대로 못 하는지 어색한 존대말로, ‘아 그래 반가워요. 학교에는 무슨 일로?’라고 인사를 하였다. 어색한 인사를 하고 ‘그래요 한번씩 놀러오고 그래요~’라는 말로 헤어져 가던 길을 가는데, 몇 발자국 멀어진 순간 마교수님이 뭔가 머뭇거리는 느낌으로 내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했다.
‘근데 예전에 깔아준 그거, 이제 안 돼요. 다시 깔아야 되나봐.’
2008년에 교수님께 깔아드린 DNS free에 대한 이야기였다(기억 1화 참조).
교수님이 한결같다는 게 웃음이 나올 만한 일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날이, 내가 교수님을 만나 뵌 마지막 날이었다. (계속)
즐거운 사라는 구하기가 어렵군요.. 역사에 남을 작품인데.. @cyanosis 님의 개인적 회상인데 자꾸 제가 직접 마교수님과 만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렁그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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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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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학년 때 즈음해서 학교에 복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업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저는 기회를 놓쳤죠. 수업 시간엔 거침없이 말씀하셨을지 몰라도 교정에서 인사 드리면 학생들에게 꼭 허리 숙여 같이 인사해 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복귀하신 후의 모습은 너무 마르시고 마음 고생 많이 하신 모습이어서 뵐 때마다 마음이 저릿했어요. 제 친구는 야설 쓰는 게 과제인 수업 들었었는데 저는 못 들은 게 이제와 참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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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신 내용을 무척이나 잘 읽었습니다. 마 교수님 목소리가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보기까지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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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서님. 아직 마지막 편이 남아 있습니다! 마교수님 목소리는 느릿느릿하고 권태로운 목소리였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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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팔로하고 가요!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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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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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짱짱맨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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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바이러스님, 짱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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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만 접하던 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한 번에 다 읽고 왔습니다. 멈춰계셨다고 느끼셨다는 말을 듣고, 평소 모습을 묘사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네요. 마지막편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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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후피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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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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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왜 울컥하는지 저도 모르지만 저 장면을 생각하면 저도 늘 울컥하곤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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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에 울컥했어요. 시대를 앞서는 천재들은 늘 고독한것같아요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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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하이주예은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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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마지막 교수님의 한 마디가 참 머릿속에서 영사기가 돌아가듯 아련하게 그려지면서 목울대가 먹먹해 지네요.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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