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불안 - 알랭 드 보통 (Status Anxiety - Alain de Botton)

in kr-book •  6 years ago 

1. 책을 읽게 된 에피소드

지난 주, 일을 하다가 실수를 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중대한 실수는 아니고 그냥 다음부터 조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때 엄청나게 당황했고 패닉상태에 빠졌다. 실수를 한 것을 깨달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는거지? 아 정말 망했다. 나 미쳤나봐'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다. 그 때, 나는 왜 그렇게 당황하고 타인으로부터 "괜찮아"라는 말을 듣기까지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까?

돌이켜보면 그 전에도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의 공통점은? 일을 마감할 때, 일에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되는 실수를 할 때였다. 그래, 나는 아마 나는 타인으로부터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싶어했나보다. 그래서 스스로 개인적인 실수나, 시간의 부족 등으로 "이정도의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에 부응을 하지 못할까봐 극심하게 두려워했던 것 같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타인의 시선에 기댄 자존감이었나? 패닉상태의 나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다.

2. 책의 구성

한국말로 제목은 "불안"이지만 정확한 제목은 "지위 불안"이다. Status Anxiety에 대한 정의와 기본 명제를 내린 후, 지위 불안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말해준다. 먼저 지위에 대한 정의들과 이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지위 :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좁은의미에서 이 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가리킨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키며, 이 책에서는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 p.7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p.7

결국, 나는 이 책에서 말하듯이, 지위로 인한 불안을 겪은 것이었다. 내 안에 이토록 지위에 대한 열망이 컸는지, 그리고 이 불안이 이토록 심했는지 처음 알았는지라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러면 이 불안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얘기하듯이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으로 5가지를 짚는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 그 원인이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라고 하면서 그 각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설명을 한다.

3. 책의 내용

가. 불안의 원인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여러 불안의 원인 중 나에게 제일 공감이 갔던 원인은 "사랑 결핍"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 나의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높다고 스스로 자부해왔다. 내 자아가 단단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태껏 내가 쌓아놓은 자존감은 결국 타인들이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내용이기에.. 막상 글을 읽다보니 공감가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원리>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죽은 사람 취급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상대하듯 한다면, 오래지 않아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p.22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나. 불안의 해법
불안의 해법은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원인에 따라 해법이 달라진다고 느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속물근성' & '능력주의'로 자신에 대해 저평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술"을 통해서 우아하게 비꼬거나, 비판할 수 있다. 혹은 "철학"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이성으로 나 자신을 평가함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이정도는 가져야해" "이것은 당연한 것이야" 라는 기대(아프리카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도록 정해졌다/ 아파트 한채, 자동차 한대 정도는 가져야 한다 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가치체계를 바꾸기 위해서 "정치"행위를 통해 연대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

은행원, 기업가, 법조인 등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볼 수 있는 직업만을 선호하며 불확실함을 가지는 직업을 천대하는 사회를 향해 "보헤미아"는 '너희들이 틀렸어'라고 하면서 상업적 성공 능력 외의 대안적인 삶에 대해 정통성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시인, 여행가, 에세이스트들 또한 그 빈곤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 주장한다.

그러면 직업과 관계 없는 평판이 떨어질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지막 남은 기독교가 그나마 그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제공해주는 것 같았다. 기독교는 항상 죽음 뒤의 삶을 강조한다. 지금 살아가는 삶은 찰나의 것이며, 이 때의 삶에서의 믿음, 행동들이 내세를 정해준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죽을 때 나에게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죽음은 지위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던 관심의 덧없음, 나아가 무가치함을 드러낸다. 우리의 건강이 좋고 권력도 막강할 때는 우리를 칭찬하는 사람이 진짜 애정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어떤 이익을 노리고 그러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나 때문인가 아니면 나의 사회적 지위 때문인가?"하고 물어볼 용기 또는 냉소적 태도는 보여주기 힘들다. 그러나 병은 세속적 사랑의 조건을 제거하여 그런 구별이 잔인할 정도로 분명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p.297~8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p.334

4. 소감

읽으면서 공감되는 글이 너무 많았고, 필사도 참 많이 하면서 읽었다. 이 포스팅은 단순히 나의 불안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에 초점을 맞춰서 썼지만, 우리가 왜 지나치게 물질에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주게 하는 책이라는게 좀 더 맞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기준의 잣대로 나 자신을 평가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나의 불안은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기존 잣대가 불편하다면 사회적 연대로 변화시킬 수 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나의 불안은 여전한 것 같지만, 그 원인과 그것을 경감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서 감사하다. 아니, 단지 이 불안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마무리도 마찬가지로 책 발췌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보헤미안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철학,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하나 이상의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p.384,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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