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면 좋고 싫은면 싫은 것이지 모르겠다는 뭐야?
맞으면 맞는거고 틀리면 틀린거지 확실하지 않다는 뭐야? 나를 가장 흥분케하는 답변. "모르겠다."
나는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확실히 입장을 정할 수 없더라도 추후에는 입장을 정할 것이다. 늘 그래왔다.
그 이유는 불확실성이란 변수를 없애고, 얻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나는 감정, 생각 그리고 행동에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냉●온탕 처럼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알았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다.
책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졸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우리의 도덕관념을 크게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률 내에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반대는 사회적 비난을 받는 행동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는 이 세계의 도덕관념과 가치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나도 이방인일 때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목격한 가족중에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때를 회상해보면 그 순간의 감정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움에 가까웠다. 할아버지의 임종 직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솔직히 장례식이 치뤄지는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부재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통곡했을 때가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 관이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곡하는 소리가 울릴 때 나는 할어버지의 부재가 가슴에 박혔다.
나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됨을 크게 깨달았다.
이외에도 뫼르소는 이방인의 모습을 작품 내내 보여준다.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다음날 이전에 알고 지내던 마리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를 가진다. 이 사회 도덕률상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가 하루 밖에 안되었는데 이성과 쾌락을 추구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마리가 뫼르소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자 뫼르소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 결혼은 할거냐고 묻자 당신이 원한다면 하겠다고 답한다. 마리는 추가적으로 다른 여성이 결혼하자고 해도 할거냐고 묻는데 뫼르소는 한다고 답한다. 이처럼 그의 답변과 행동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다.
심지어 뫼르소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죽였지만 살인동기를 본인도 모르겠다고 법정에서 답한다. 처음에 나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왜 작가 카뮈는 주인공 뫼르소로 하여금 아랍인을 죽이게 했을까...
나는 이방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유투브 강의도 시청했지만 직접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소설을 분석하고 정리하면서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뫼르소가 몸 담은 세계(이분법적 사고, 도덕률, 사회적 가치를 거부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 안에 없다.
단지 마리와 뫼르소의 친구들만이 자신의 세계(이분법적 사고, 도덕률,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세계)에 몸담으면서 뫼르소를 조금이라도 포용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을뿐...
원래 뫼르소는 자신만 세계에서 잘 살고 있었다 .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식, 마리와의 만남, 친구의 폭력에 대한 증언 등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자꾸만 자신이 몸담은 세계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한다.
뫼르소의 총성은 더 이상 자신의 세계로 침범하지 말라는 세상(이분법적 사고, 도덕률,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세계)을 향한 경고성 '외침'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세계를 단 한명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분법적 사고, 도덕률,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세계)을 향한 '절규'일지도...
결국 소설 속 사회는 뫼르소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형을 선고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뫼르소와 같은 이방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은 이방인이라는 신분에서 자유로운가? 이는 분명 우리가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 "이방인"에서 일부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