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무서운 이야기 5. 공포 택시]

in kr-daily •  6 years ago 

[PW 무서운 이야기 5. 공포 택시]

차창에 부딪히는 빗발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와이퍼를 한 단계 더 올렸다.
장마라서 그런지 이놈의 비는 그쳤다가도 금세 다시 엄청나게 퍼붓곤 한다.
이러다가 진짜 오늘 영치금도 내지 못할 것 같다. 그나저나 정말 오늘은 손님이 없다.
간간이 반대편 차로에 차가 지나가는 것만 제외하고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보통 이 시간대에는 취객들이 많이 나오는데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빗물의 양을 보니 정말 비가 많이 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느낌이 든다. 마치 몸이 공중에 뜬 듯...
정확히 표현하자면 도로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이다. 흡사 내 택시가 잠수함이라도 된 것 같은...

부산 라 1990 영업용 택시를 몰게 된 건 약 한 달 전부터인 것 같다.
요새는 정말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거라서 어쨌든 학교 다닐 때 친구 따라 따 놨었던 택시 운전면허가 이렇게 졸업 후에 바로 쓰일 줄은 몰랐다.
개인택시라도 몰려면 그래도 경력이 있어야 하니까 영업택시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심야시간대에 핸들을 잡게 된 것이다.
밤 11시에 교대해서 심야 할증 시간대의 손님은 잘만 잡으면 장거리가 많아서 돈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하는 날에는 완전히 공치는 날도 있는 것이다.

교대 후 약 2시간 동안 한 사람의 손님도 태우지 못했다.
아니, 지나가는 사람조차 보지 못했다는 게 적당한 표현일 듯싶다.
물론 엄청나게 쏟아붓는 비와 내부의 습기로 번져버린 성에 때문에 시야가 더욱 가려 버린 이유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진짜 손님이 없다.
편도 4차로의 길은 포기하고 우회전을 해야겠다.

우회전하고 약 5분가량 달렸을까. 저만치에 가로등 밑에 누군가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행여나 다른 택시가 먼저 발견할까 봐 서둘러 2차로로 차선을 변경했다.
희미한 시야를 뚫고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검은색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호리호리한 몸매의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나는 이 시간에 혼자 서 있는 게 좀 갸웃거리긴 했지만, 가로등 아래서 비에 다 젖어 서 있는 여자는 분명 택시를 기다릴 거라 생각하고 그 여자 앞에 택시를 세웠다. 잠시 동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택시를 타는 게 아닌가 하면서 나는 사이드미러를 봤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녀는 뒷좌석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저... 어디로 가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두구동으로 가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릴 듯 말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두구동까지는 꽤 장거리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 영치금은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비는 점차 더 거세진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턴가 한기가 조금씩 들었다. 나는 차의 에어컨을 끄고 룸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봤다.
비에 젖은 머리에 가려져 뒷좌석 여자의 얼굴은 잘 볼 수 없다.
왠지 사방의 빗속에 고립되어 우리 두 사람만 남은 듯한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불안감을 떨기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비가 많이 오죠?"

"..."

뒷좌석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나는 재차 말을 걸었다.

"택시 기다리신다고 오래 있었어요? 우산도 없이... 택시가 잘 안 잡히던가요?"

또다시 적막이 흐른다. 차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만 아니면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나의 불안은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보통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는 집에 있는 게 상책이죠. 운전하다가도 사고 날 위험도 높구요. 아까도 교대하고서 광안대교 지나가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트럭 한 대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덮치더라구요. 급히 핸들을 꺾긴 했는데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까 피했더라구요. 트럭은 난간에 박은 거 같은데 구경하려다가 비가 많이 와서 그냥 나왔죠."

여전히 뒷좌석은 묵묵부답이다. 이 얘기를 해 주면 그래도 반응이 있을 듯싶었다.
비현실적인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귀신을 태운건가...?'

얼마 전에 동료 기사가 밥 먹으면서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으슥한 밤이었는데 말이야. 어떤 남자를 한 명 태웠거든. 근데 그 손님이 왠지 모르게 표정이 안 좋아. 대답도 없고, 행선지만 말하고 한마디도 없더라구. 근데 운전하는 동안 진짜 계속 섬뜩섬뜩했어. 뒷덜미가 말이야. 어떻게 행선지까지 간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다 오니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그 집에 가 봤지."

보통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는 가끔 귀신을 태우는 기사가 있다고 했다.
그 귀신은 대부분 자신의 기일에 제삿집에 가는 길이거나 무덤으로 돌아가는 길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귀신을 태우게 되면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 자신이 그 고인을 태우고 왔다고 말하면 요금을 두 세배 더 얹어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나는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다시 룸미러로 뒤편을 확인했다.
분명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들었던 귀신을 뒤에 태우면 거울로 보이질 않는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거울로 보이는 여자는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최대한의 지름길로 서둘러 달렸다.
도중에 내릴 수도, 아니 만약 세웠다가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등골이 섬뜩한 것을 계속해서 느꼈다. 저절로 엑셀에 힘이 더 들어갔다.
와이퍼는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구동 근처에 오니 주변 이정표에 화장터를 가리키는 팻말이 보였다.
아... 여기는 영락공원 화장터가 있는 곳이지.. 등 너머로 이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듯한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좌회전해 주세요..."

정말이지 빨리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침 주변에는 차가 없어서 신호도 무시한 채 핸들을 꺾었다.
어느 정도의 골목길로 들어서자 뒷좌석의 여자가 세워달라고 말한다.
나는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고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진짜 이렇게 긴장해 보기는 처음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차비를 가지고 올게요..."

룸미러로 비친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뒷좌석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직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하나 꺼내서 불을 붙였다.
아무리 돈이 된다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마치 시체를 닦는 아르바이트처럼...
나는 마음을 진정시킬 겸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를 틀면서 왜 아까 라디오를 틀지 않았든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처음에 잡힌 주파수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치지직... 전했습니다... 다음은 사고 소식입니다."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뒷좌석의 반지를 봤다. 어차피 저건 진짜가 아니라 허상일 거야.
근데 왜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지?

"... 광안대교에서 빗길에 미끄러진 3톤 화물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를 들이받아 택시가 바다로 떨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이 사고로 부산 라 1990 영업용 택시의 운전자 박 모 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트럭운전자 최 모 씨는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현재 광안대교 주위는 택시를 인양하는 차량으로 인해 정체되고..."

은주는 이제 이별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대충 머리를 말리고 젖은 옷을 서둘러 갈아입은 뒤에 택시비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아무도 없고 그녀의 커플링이었던 반지만이 비를 맞고 있었을 뿐이었다.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우리말 맞춤법 검사기에 의해 powerknow가 직접 검토한 후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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