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possible

in kr-diary •  7 years ago  (edited)

나도 저랬을까? 방학을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르는것 같다. 큰애는 그래도 어느정도 시간을 관리하는게 눈에 보이는데, 둘째는 시간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진 콜라병 마냥, 하루종일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아직 애기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기 중에 미치도록 바빴던 내 몸과 마음을 나역시도 풀어놓은 상태에, 학교 다닐 때처럼 시간표대로 딱딱 움직이지 않는지라, 그동안은 나도 늦잠자고 내 단도리 하느라, 핸드폰이나 게임기 잡고 있는게 자꾸 보이면 야단이나 쳤지, 딱히 아이들의 시간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어영부영 하다보니 벌써 방학 3주차에 접어들었다.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글을 읽고, 글쓰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물론 타겟은 큰아이지만, 둘째에게 한글학교만 보낼 일이 아닌 것 같아(읽고 쓸줄은 아는데, 그 뜻을 모른다ㅠ) 둘째의 한국말 교육도 시급하던 차라 아침먹고 좀 쉬고 일하는 아이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콘도 밑에 있는 스타벅스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우리 딸은 나를 닮아 책을 읽고 무언가 끄적이는걸 원래 좋아하는 편인데, 둘째는 아직 성향을 잘 모르겠다. 아니 아직 성향이라는게 게임기와 유튜브 동영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 이 참에 이놈이 한글을 읽고 쓰는 단계를 벗어나, 본인의 글을 쓰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러한 작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이라도 알려주고 싶다.

한글로 된 책을 못읽어내는 딸을 위해, 일전에 한국으로 복귀하시는 분께서 주고가신, 논술책을을 지금 보니, 얇은 책이라 부담없이 접근해서 독후감을 쓰기에 좋을 듯 하다.

그 중 [산 위의 불]이라는 책을 골라 읽고, 생애 첫 한글 독후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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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딴에는 구글 번역기도 돌리고, 지우기도 하고, 귀엽다. 그런데 이 감동의 물결은 무엇인가… 원래 주책맞게 눈물을 찔끔찔끔 자주 흘리는 편인데, 엄마가 하라고 하니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하게 노력하여 쓴 글이… 괜찮다. 잘 쓴다. 잘 하지도 못하는 언어로 된 책을 읽고 이만큼 글을 쓴다. 발레를 접고 지도 나도, 약간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공부 말고 잘하는 게 춤추고 발레하는거 말고, 글쓰기도 넣어도 될 것 같다. 아직 초등 저학년 수준의 한국어 실력으로 쓴 글이 이정도면, 이 아이는 글을 계속 쓰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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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우리 둘째… 한글로 된 동화책 한 권 도 아니고,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다. 딸아이처럼 한국말이 서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하는 아이ㅠㅠ. 단순히 한국 친구들을 만들어주지 못한 엄마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특이한 경우인데... 한글학교를 다녀서 읽을줄은 안다. 그런데 뜻을 모르니, 한 문장을 읽으면 그만큼 내가 설명을 해줘야 한다.

까마귀 이야기를 이렇게 깊이있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다니… 둘째에게 내가 내린 미션은, 책을 읽고 읽은대로 필사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 페이지 읽고 이해 하는데만 20분 이상 걸린다. 그나마도,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야했고, 갑자기 피곤해서 2분 정도 눈감고 엎드려 있어야 했으며, 먹고싶지도 않은 케잌까지 주문한 후였다.

분노게이지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가 죽어도 하기싫은 일을 겨우겨우 하는데, 필사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한시간 동안, 오늘 분량 4페이지를 읽(히)고 이해하고(시키고) 필사했다(시켰다). 나는 까마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그림을 통해 내 인생 처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자세히 알게 되었고, 까마귀가 알을 까고 나와 힘센 어른 까마귀가 되는 첫 과정을 생생하게 구연할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방학동안 딸아이는 부쩍 성장할 듯 하다. 둘째의 한국말이 조금은 나아질 듯 하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더 늙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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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따님은 글씨도 잘 쓰고 독후감도 좋아요.
둘째 아드님은 따라 할려고 하는 것이 기특하고 귀엽습니다.
취미를 붙이도록 잘 이끌어 주시면 금방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키퍼님 잘하고 있으니까 칭찬해 주세요 ^^

안그래도 딸아이에게 칭찬해주고 둘째는 이뻐서 안아주었답니다 ㅎㅎ 뭘 해도 이쁜데... 한숨이 날 때가 많은...ㅠ

ㅎㅎㅎ 재밌습니다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글쓰기 느낌이 참 편안하네요~
첫 독후감인데 참 잘썼어요^^
둘째의 연필 잡은 손을 보고 미소짓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독후감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보통 줄거리나 나열하는데 그러지 않고 요점만 쏙쏙 뽑아서 이해하고 글을 쓰는게 신기하고 대견하더라구요.
둘째보고는 저도 연신 웃었습니다. 하하

둘째는 좀 더 크면 잘 할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조바심내지말고 기다려보셔도 될것 같아요. 아이들 마다 다 다르니까요 ^^

네 조바심 내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리기... 가 힘드네요ㅠ

우리집 풍경인줄요 ㅎㅎㅎ
따님은 엄마 닮아 책도 좋아하고 글도 잘쓰네요. 둘째는 ㅋ 귀여움을 무기도 유투브 좋아하고 책 안 읽고 ㅋㅋㅋ 풍경이 넘 이뻐요!! 엄마 마음만 잘 다스리면 천국이네요~

풍경이 이쁩니까? ㅎㅎ 첫째한테 이야기하고 글 읽고 할 때랑 둘째 읽고 가르치고 할 때랑 마음가짐 자체가 다릅니다 ㅎㅎ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엄마가 먼저 지친답니다.ㅎㅎ
어느집이나 첫째는 진득하고 둘째는 꾀가 많잖아요..

네... 안그래도 무리하지 않는 방향에서 제가 할 수 있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둘째야 아직 어린것 같으니... 조금씩 성향이 나타나겠죠!
뭔가를 하려고 애쓴 흔적이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ㅋㅋㅋㅋㅋ 북키퍼님께 안티에이징 크림이라도 선물해야 할듯...

안티에이징 말고 스탑에이징으로 부탁드립니다 ㅎㅎ

마치 bookkeeper 님의 세월과 아이의 성장을 맞바꾸는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일이 바쁘단 핑계로 아이의 한글공부에 신경을 쓰지 못한것 같아 돌아보게 됩니다~ ^^

이 시간들이 의미있는 시간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방학 동안이라도 학원이나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닌 제 손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일이에요. 참을 인을 머리에 새기고 시작하는데도 불쑥 불쑥 깊은 빡침이 올라올때쯤이면 차라리 자리를 비워버립니다ㅋㅋㅋ첫째의 독후감 멋집니다^^

내 아이 가르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습니다. 한국어를 이나라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화는 안나던데, 욕심이 없어 그런거 같습니다. 내 아이에게는 욕심을 내니...

웃으면 안되는데 전에 과외하던 애들이 생각나서 북키퍼님 늙는다는 말씀에 확 공감이....아이들을 가르치는건지 내가 인내를 배우는 건지 헷갈릴 즈음 두시간이 끝나더라구요. 방학 끝날 무렵이면 부쩍 늘어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해 하시겠죠? 퐈이팅입니다!!

제발 그렇기를 바래봅니다

외국에 살면 아이들이 우리말을 접하기 어려우니, 걱정이 되시겠습니다. 꾸역꾸역이나마 필사를 마무리한 둘째가 무척 귀엽게 느껴집니다ㅎㅎ

네 귀엽습니다. 분노게이지가 가끔 상승해도 뭘해도 귀엽고 이쁩니다 ㅎㅎ

누군가를 지도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지금은 그래서 그쪽이랑은 담을 쌓았죠.

어릴적 돌이켜보면 제가 딱 둘째같았겠지 싶습니다 ㅋㅋ아이들도 장성하면 부모님께 많이 고마워할거에요.

안그래도 나중에 더 크면 엄마한테 고맙다고 절할거야.. 했더니 딸아이는 코웃음치고, 둘째는 WHAT DO YOU MEAN?? 한숨..

문득 나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따님은 성장하고 둘째는 조금 나아지고, 북키퍼님은...같이 성장하시겠죠. ㅎㅎㅎ

같이 성장하고 더 늙는 불상사는 없기를요 ㅎㅎ

귀엽네용~ 아가덜~
저보다 글씨 잘쓰능데용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저 글씨보다 못쓰신다면 반성하셔야 할 듯 합니다. ㅎㅎ

ㅎㅎㅎㅎ 원래 자기 아이 가르치는 게 가장 어려운데. ㅎㅎㅎ
근데 따님 글씨 참 잘 쓰네요. 외국에서 자란 아이가 저 정도 글쓰고 읽고 이해한다는 건 대단한 거 같아요.
둘째도 싫다고 도망다니지 않으니 칭찬해주세요.
북키퍼님도 수고하셨으니 방학 끝나면 회춘(?)을 위해 스파에서 맛사지 받아보심이.. ^^

안그래도 맛사지 생각이 간절합니다 ㅎㅎ

아, 육아... TT
방학 잘 이겨내시길!

화이팅~

아이의 말은 8할이 엄마가 만든다...(바람이 만들면 좋지만... ^^)
언어적 재능이 충분한것 같네요. 둘째는 아직 어려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엄마가 북키퍼님인 이상 별 걱정은 없네요 ^^

엄마가 북키퍼님이라 별 걱정 없다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합니다 ㅎㅎ

아...외국 살면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에 신경을 써야하네요..
홧팅!!

네 잠깐 살면 영어가 안는다고 고민, 오래 살면 한국어 까먹는다고 걱정입니다

첫째아이의 글이 참 인상작이네요.
외국에 있으면 아이들 언어는 자연스레 그 환경에 맞춰지는지라 언어를 가르친다는건 참 어려운것 같아요. 전 한글같은 경우 아이에게 의사소통 정도만 치중하고 읽고 쓰는건 나중에 아이가 관심있어하면 가르치려구요. 그러기엔 제 능력치가 ... ㅜ 그래서 더 대단하세요.

생각보다 잘 써서 저도 좀 놀랐습니다 ㅎㅎ 아이가 한국말을 하나봅니다. 우리집은 다들 한국 사람인데 우리 둘째가 특이한 경우입니다. 한국 친구가 없는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한데ㅜ 시간이 갈수록 고민입니다 ㅎㅎ

제 아이는 지금 외국인이 한국말 하듯이 해요.
아무래도 친구 영향이 정말 클거에요. 동네에 사는 제 사촌언니도 아들이 있는데 어릴때는 조금 한국말 하는가 싶더니 유치원 가고 학교 들어가면서 영어만 하더라구요. 더 지켜봐야겠지만 제 아이도 후에 영어만 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둘째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가봐요. 제 아이도 둘째가 한국말이 첫째보다는 좀 서툴고 공부에 담 쌓고 살았는데... 아이가 나이를 조금씩 들어가니 많이 변하더군요. 키가 커가면서 성향도 바뀌고 공부도 조금씩 나아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건 아빠 엄마의 사정이라...관리 잘 하세요.^^

공부애 담을 쌓는다니...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흑흑

저는 애는 하나지만 남이야기가 아니네요 ^^
그래도 북키퍼님은 큰 아이가 만족을 많이 시켜주시는걸요^^
저도 신랑한테 매번 그래요. 나만 폭삭 늙어간다고 ㅎㅎ

신랑들은 알까요 아이 키우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아내의 젊음이 들어가는지...

아이들을 보면 나도 저랬나 싶어요..
울 꼬맹이도 24시간이 노느라 부족하고 숙제 대충할때 정말 내 속에 불공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해요.. 부모는 원래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두 아이와 엄마에게 많이 많이 의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몇일 마음 추스리면 생각보다 덜 늙을 수도 있을꺼예요.
힘내세요. 아이들은 원래 그래요. 사실 우리도 그러니까요~

말은 이리하면서 집에가서 꼬맹이 방에 숙제부터 챙기러 간답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래서 늙엇나? ㅎㅎ

흠...언제쯤 자기손으로 숙제하고 할런지... 큰애 때는 어땠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는게 맞는군요.. 저희집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

대신 우리집에는 요리하는 엄마가 없어요 ㅎㅎ

전 저희 애들 가르치는거 포기.
소리만 질러서.. ㅠ ㅠ
다른집 애들 가르칠땐 안그랬는데... 왜 저희집 애들한텐 자꾸 소릴 지르는건지 모르겠습니다. ㅜ ㅜ

욕심이 생겨 그래요... 저도 둘째는 가끔 소리가 올라가요ㅜ

북키퍼님 멋져요
좋은 엄마예요...
저라면 백번 욱했을 거예요ㅠㅠ

흐흐흐 그래도 말귀 알아듣는 아이들이라 그래요. 둥이들도 말귀 알아듣고 하면 분노게이지 조절이 좀 될거에요.ㅎㅎ

헤헤. 아이들 걷는 속도가 제각기 다르니 비교하시면 혈압만 오릅니다. 릴렉스~~ 하세요^^

ㅋㅋㅋ능력있고ㅡ좋은 엄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