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그랬던 것들, 아니었던 것들

in kr-diary •  6 years ago 

나는 주머니에 물건이 든 상태로 앉아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주머니에 든 것들을 다 꺼내어 놓고 앉아있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일어설 때마다 하나씩 주머니에 주워담으며 점검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집, 카페 말고는 별 다른 장소도 없는데 이어폰이 없었다. 다음 날 카페에 다시 다서 확인을 해보았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그래서 한주를 이어폰 없이 보내다가 이어폰을 샀다. 이전에 쓰던 것보다는 불편했지만, 싼값에 쓴다며 나름대로 위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어폰을 보았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놓인 것도, 어디에 굴러 떨어진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는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방전되고 말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나는 과부하가 오면 정신을 놓고 멈춰버리는데, 주변 사람들은 항상 방전되었다며 나를 놀렸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장을 보고 들어온 것 외에는 외출이 없었는데 지갑을 잃어버릴 곳이 어디인가, 정지시켜야 하는 카드는 어떤 것인가, 다음 날 재발급 받을 것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방전되고 멈춰버렸다. 사실 방전되고 멈춰버리길 다행이었다. 지갑 또한 항상 놓여진 곳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내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 하고 있지만, 그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겨우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무방비한 집에서 내 정신은 산산조각나고 완전히 무너져있다. 나는 그 정신을 재건하고 있다. 파도가 몰려오면 녹아버리는 모래성처럼, 구축과 해체가 반복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온전해지리라믿으며.

도서관을 가야겠다. 정신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완전히 전념하지 않고서는 소화할 수 없을 책이 즉효약이다. 다음에는 조금 더 건전한 소식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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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다른 정신세계와 조우하며 잠깐 나를 잊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