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작은 사람'이라고 두 번에 걸친 에어컨 수리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이번에도 또 실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건 또 예약을 하는 것 뿐이었다. 세 번째 방문에서, 기사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점검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 교체한 PCB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도 온갖 고객들의 불평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오죽 그게 심했으면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기만 하는 나에게 '화나면 자신에게 소리 질러도 괜찮다'고 말했다. 굉장히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내가 화가 난다면 그건 기업의 서비스 방식의 문제지(후에 더 자세히 얘기할 예정이다), 기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방문에서 그는 PCB를 다시 교체하고 드디어 해냈다. 그가 떠난 이후에도 쭉 에어컨을 켜두었지만 지난 번과 다르게 2시간이 지나도 문제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하고 꺼두었다. 아마 정말로 마지막이길 바란다.
이제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일단 지금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간단하게 불만을 정리하고 싶다. 우선 과정에서 의아한 순간이 자주 있었는데, 그건 기사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또는 점검 매뉴얼이 치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사는 막힐 때마다 다음 선택지를 찾지 못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아마도 단계 별로 체크리스트가 정확하게 제공되고 있다면 기사가 자율적으로 선택지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나의 경우가 드문 사례이기 때문일 수 있다. 이번에는 허술했지만 다음에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 길게 이야기 하지 않겠다.
정말 결정적인 문제는 내 에어컨 제조사에는 서비스 센터가 두 종류라는 사실이다. 제조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 센터, 그리고 유지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제조사의 자회사. 첫 방문은 그 자회사의 기사, 나머지는 제조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 센터의 기사였다. 나는 같은 제조사의 고객센터를 통해 문의를 했고 같은 고객명, 같은 주소, 같은 제품에 대한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각각 다른 주체에서 기사가 파견되었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둘 사이에 정확한 정보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겠지만 제조사의 서비스 센터에는 자회사의 수리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어떤 문제로, 어떤 처방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첫 번째 방문에 대한 건 내가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비스 주체가 나뉘어 진 상황, 그리고 둘 사이에 원활한 정보 교류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효율성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고객에게 비용 면에서도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 나의 경우에 PCB 교체를 2번 하게 되었는데 첫 교체한 PCB가 불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전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내가 그 과정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PCB가 내가 원래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지난 번에 방문한 기사가 교체한 PCB라는 사실을 고지할 수 있어서 추가적인 교체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상황을 내가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문제로 나는 비용을 배로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그거야 말로 정말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꽤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이미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했고 아직도 석연치 않은 면이 남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세 번의 출장비, 한 번의 부품 교체 비용을 면제 받은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내가 한번도 떼를 쓰거나 화를 내지 않고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게 고무적이다. 그 과정에 "엎어야 말을 듣는다"는 종류의 피드백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온건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니 참 다행이다. 이미 충분히 고통 받고 있을 기사에게 최대한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고도 해냈기 떄문이다. 물론 아직도 주변에서는 불만을 접수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며 내가 단순히 감면 받는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일부 환급까지도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내가 너무 미적지근했다고하지만⋯⋯.
사람을 믿지 못해서 체계, 즉 시스템을 갖추죠. 믿지 못한다는 의미가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 - 망각, 실수, 혐오, 폭력, 배척, 유혹 등등- 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래도록 IT 거버넌스와 체계를 운용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누구에게 보다 잘 보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대로 된 정보의 공유와 또 공유를 위한 조직 운영법, 직원 교육, 데이터베이스, 체계, 절차를 갖추었다면, 이번과 같은 불편을 겪지 않으셨을테지요. 뿐만 아니라, 우려하시는 바와 같이 그와 같은 동일한 일이 다른 고객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뭐, 아무튼 그래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으셨다니 올 여름 시원하게 나시겠네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에너지 비용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듯 하여, 몹시 안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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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시스템은 사람을 믿지 못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죠. 이번 경우에도 만약 제가 개인으로 존재하는 기사의 실수로 번거로움을 겪었다면 저는 기사에게 화가 났을 수 있지만, 시스템이 존재하고 시스템의 허술함이 기사의 실수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기사는 저의 불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집이 꽤 서늘한 편이라서(아직까지도 추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절실한 건 아니지만 제 고양이가 더위에 취약하기 때문에 일단 고쳐는 놓았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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