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ism]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슬프다.

in kr-feminism •  7 years ago  (edited)

페미니스트인 사람이 자기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때.

"내가 페미니스트인건 아니지만-"

저 말 뒤에 페미니즘을 따르는 말이 붙을 때.


어느 주말에 제일 친한 친구 A를 만났다.
A는 공학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다. 꿈은 초등학생 때부터 한결같이 선생님.
내가 대학에 온 뒤로 부쩍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아져서 이 주제로 A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A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말했다.

"내가 페미니스트인건 아니지만- 블라블라."

'블라블라'에는 여성주의 사고관이 드러났었다. 왠지 맥이 빠졌다.
그리고 그 다음주 주말에 A는 말했다.

"지난 주에 내가 난 중립을 지킨다고 했잖아. 근데- 교육 봉사 같이하는 여대 언니들 말 들어보니까 생각이 바뀌었어. 세상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걸."

기뻤지만, 여전히 A는 본인과 나를 나누고 있었다. 논페미와 페미로.


친오빠와 페미니즘 주제로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이전에 언급 했었다.
여성주의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확실히 오빠는 한국의 다른 남성들보다는 인권 감수성이 발달해 있고 맨스플레인도 안하는 편이다. 다만 가끔 소수자 혐오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지적을 해주면 잘 알아 듣고 반성한다. 어쨌든 나는 열심히 오빠를 조신남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오빠도 자신이 페미니스트인 것은 모른다.

"내가 페미니스트인건 아니지만 너를 지지해. 네 말이 다 맞아."


사람들이 자신이 페미니스트인 것을 모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페미니즘을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고 여긴다.
    대단한.. 혹은 엄청난 것쯤으로 여긴다.
    페미니즘은 그저 성평등주의이며 페미니스트는 성평등주의자일 뿐이다.

혹시나 이퀄리즘을 운운하는 자가 댓글을 단다면 이퀄리즘을 운운하는 자들이 왜 저열한지, 페미니즘이 곧 성평등주의임에 대한 글 링크를 줄 생각은 있다.

  • 세간의 눈초리가 두렵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메갈이라고 하는 시대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서 선뜻 여성주의에 관심 있다는 말을 꺼낼 수 없다.
    요근래 생각해 본건데, 꽤 많은 안티페미들은 페미=메갈 이라며 페미니즘은 해서는 안 될 것이란 분위기를 조성한다. 근데 사실 얘네는 메갈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알아볼 생각 조차 없다. 얘네 말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도, 손석희도, 설현도, 티파니도, 수영도, 아이린도, 방탄소년단의 어떤 멤버도이름 생각 안남, 김혜수도, 다른 수많은 저명인사들도 모두 메갈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곧 대메갈시대가 오겠구나, 생각하고 있다.
    걔들 말대로라면 페미=메갈이지않나. ㅎㅎ

페미니스트인 사람이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들을 탓할 생각 없다. 그들 잘못이 아니니까.
덧붙여서 나는 그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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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세!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응원합니다

이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의미를 어느정도 이해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은 스스로의 과거를(그것도 바꿀 수 없는) 낱낱히 파헤치는 것, 더하면 자기부정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어려운 일입니다 ㅠㅠ

  ·  7 years ago (edited)

감수성이 있는 사람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해서 페미니스트라거나, 미묘하게 다르다 해서 종북이라 낙인찍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인간의 사고를 네 편, 내편으로 나누는 것은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것이라, 무리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흑백이 아니라 그레이스케일일 수도 있잖아요. 사실 사람들의 생각은 그레이 스케일이 아니라 유채색이라 명도나 채도도 다양한 스펙트럼일 수 있는데, 제가 보기에 페미니즘은 그레이 스케일도 아닌 흑백 논리에 가까워 보여요. 성적 지향의 상징이 무지개 빛깔인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피해의식에 붙잡히기 쉬운데, 이럴 때일수록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페미니즘은, 예전 미국 흑인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운동만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으로 보여요. 해봐야 미투운동으로 끝날 것 같아 매우 안타까워요.

제 생각은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이라는 스펙트럼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사상 운동이고 현재 (여성의)인권의 사각지대의 한 부분을 제거하는데 크게 기여(여성의 인권 개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사상 운동인 만큼 기본적으로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야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이지 '내편 네편'을 가르자고 하는 건 아닌것 같습니다. 페미니스트나 논-페미니스트(non-feminist)를 가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릴렉스킴님이 페미니즘을 흑백논리의 한 형태로 보는 시각은 어느정도 이해해는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단지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페미니즘의 본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덧붙여LGBT 운동과 같은 운동도 휴머니즘이라는 스펙트럼의 한 부분으로써 페미니즘과 크게 보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ㅎ

반면 말씀하신 '홀로 설 수 있는 힘'이라 함은 현재와 같은 불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여성들은 누군가의 도움없이 자신의 인권을 지킬 힘을 스스로 길러야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더불어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아프리카계인('흑인')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공감대나 현재 페미니즘을 둘러싼 공감대나 인권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ㅎ

이런저런 생각에 제 견해 몇 글자 적어 봤습니다^^ ㅎ

어떤 ‘이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표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깨달은 자’와 ‘깨닿지 못한 자’로 나누어 생각하는게 이질적으로 다가왔어요. 이는 어떤 ‘주의’에 대한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식’이나 ‘관점’의 문제니까요. 어딘가 모르게 우열을 조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부분이 어떤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희석시키고, 반감을 줄 수 있기때문에 안타까워요.

릴렉스킴 님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개인의 '인식' 혹은 '관점'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신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 어떤 개인은 위니님을 말씀하시는 거구요? 릴렉스킴 님은 위니님이 마치 '페미니즘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를 우열로 나누고 있다는 인상을 받으셔서 말씀을 하신거구요?ㅎ 그렇다면 제가 집어도 한참 잘못 집었네요;; 죄송합니다, , ,

저도 @tony-chooi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부분 공감해요. 방향이 비슷한데, 그냥 언어의 한계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에 서로 미안해하지 않기로 해요.

  ·  7 years ago (edited)

저도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한 단계라서 확답은 못드리지만 페미니즘도 여러 갈래가 있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의견대립이 일어나는 게 빈번해요. 제 소망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이 당연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 사이에서 묘하게 우열을 나누고 있다는 점 맞아요.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깨달은 자들은 답답하고 깨닫지 못한 자(단순히 이 문제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이 아닌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해가 안되겠죠.
흑인 인권운동이 연대로서 성공했듯이 여성운동도 연대로 인해 성공하리라고 믿어요. 최근에 진행한 펭귄 프로젝트처럼요! ^^ 여성은 (흑인들처럼) 남성들에 비해 자원도 권력도 부족하기에 홀로 서는 것은 많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홀로서기가 가능한 여성도 있겠지만 현재의 정황으로는 다같이 힘을 모아서 연대하는게 최우선이에요 :)!

저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까지 매우 오래 걸렸어요.

각자 이유가 다르겠지만. 내가 페미니즘을 정말 이해하고 있나.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한 여성분께서, 남성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해서. 그냥 과감하게 지금은 얘기하고 다니는 중이죠. ^^

그래도 여전히 저는 공부중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너무 많아서 문제죠. 페미니즘의 본질 자체는 좋은거인데;

스팀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