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ism] 그냥, 제 생각입니다. #1

in kr-feminism •  6 years ago 
1.

어느 인터넷 페이지에서 지랄이란 표현은 간질환자 혐오표현이므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포스팅이 올라왔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비간질환자)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어요.
"지랄이란 표현을 쓸 때 우리는 간질환자를 혐오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과거면 모를까 요즘은 지랄이란 단어가 간질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 아니다. 그 의미가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으니 지랄이란 단어와 간질환자 혐오는 상관이 없다."

권력자의 모습은 이렇게 추해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혐오를 합리화하죠. 그 합리화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 사회가 권력자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성과 합리라는 언어 중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소수자를 억누르고 나온 것들이라서, 저는 때때로 그 언어가 싫어요. 또 그것들은 대개 그럴듯하고 멋져 보이죠. 그래서 분하고 원통해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는 워딩은 그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정도일 것 같아요.

2.

여성학에 관심을 두면서 에코 페미니스트 지인들도 생겼어요.
이전까지 환경 보호나 채식, 동물권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얼마 전부터 이건 제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이 되었죠. 인간 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게 웃기겠지만, 또 가증스러워 보이겠지만, 미안해요.

모두가 비건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모르는게 아니에요. 그 행동을 하면서 단순히 내 쾌락을 위해 필요 이상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게 요즘의 저예요. 제가 비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의 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도해야겠죠. 그게 도리니까요.

3-1.

여성학을 배우면서, 왜 반대 의견을 듣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봤는데, 어쩌면 페미니스트들이 안티페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요.
생각해 봐요.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 모두 논페미 혹은 안티페미였잖아요.

3-2.

페미니스트들이 반대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말 했지만, 저도 비판점이 있다는건 분명 알고 있어요.

이 문제에 있어서, 저는 이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페미니즘도 여러 진영이 있고, 저 또한 그것에 속한 사람으로서,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들보다 현재 페미니즘의 동향과 내부 상황을 잘 알고 있어요.
또한 페미니즘 내부적으로 특정 행동에 대한 논의와 여러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죠.

특정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것에 대한 비판을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그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도 결국 논페미/안티페미 때문이었는걸요.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도, 그 반대의 것들도 모두 비판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페미니즘 비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역시 페미니즘의 내부 발화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비판글 하나 정도는 써야 한다는 생각이 최근엔 들어요.

4.

오늘 아빠가 오빠 여권 사진을 보면서, 필리핀 사람 몽타주 같이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순간 실망했죠. 동남아 혐오가 아빠한텐 디폴트라니.

아빠와 혈연이 아니었더라면, 누군지도 모르는- 인터넷상에서 대화를 주고 받았더라면 저는 당장 동남아시아인 혐오를 하지 말라고, 여러분이 아는 평소의 제 태도로 지적을 했을거예요.
그런데 아빠라서 그런걸까요. 제 뿌리가 유교 사상에서 비롯되어서 그런 걸까요. 저는 그러지 못했네요.

저는 친한 사람들에게 너무 약해서, 그게 스스로한테 너무 분해요. 이건 약한게 아니라 비굴한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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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udos @luisvaldez

당하는 입장에서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피부가 까매서 동남아시아 사람 관련 조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공감이 좀 되네요.

대만에서 교환학생 할 때, 대만 현지인들하고 같이 있으면 피부색이 똑같아서 사람들이 저보고 현지인 같다고 많이 놀렸거든요.

저 스스로는 별로 기분은 안 나빴지만, 만약 이런 조크를 현지인들이 들으면 엄청 기분 나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사실을 얘기한 거긴 하지만 그걸 사람 놀리는 소재로 사용한 게 엄청 괘씸하잖아요.


위니님 포스팅만 보면 생각이 많아지네요ㄷㄷㄷ

특히 내가 어디선가 했을지 모르는 언행을 곱씹어보게 되는 게...ㅠㅠ

몇 십년 살아온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자신의 허물과 궤변은 인지하지 못한 채 타인의 주장만 (반박이 아니라) 물어뜯는 사람들이 있어요. 얘기하기 참 피곤한데, 가끔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혹시 저렇게 고지식하지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반대 의견을 듣지 않는게 아니라 충분히 들어보고 말이 안된다고 논리가 서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신의 논리는 튼실한가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자세로요.

아이러니하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의 영향을 적게 받는 것 같아요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바로 피해 받는 이들을 알게 되면서 쏟아놓은 말들이 버겁게 느껴지더군요..

스팀잇서 페미니즘 관련 글을 찾다가 위니님을 팔뤄했습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합리화', 정당하지 않은 '정당화'와는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글도 잘 읽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
이번 방학이 너무 바빠서 저번 방학보다는 글을 못 쓸 것 같아요. 그래도 자주 찾아와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