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몰랑일기 138

in kr-gazua •  6 years ago 

의도치 않게 3일만에 일기를 쓰게 되었네.
그 사이 스팀잇도 안되고 그저 텔레방에서 멍하니 다른 회원들 채팅하는걸 눈팅한 것 같아.

꿈을 꾸었어.
여느때와 다름없이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며 식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데 갑자기 전 사원들을 한 자리에 모으네? 오늘이 저번부터 말해왔던 시험치는 날이라며. 그런데 그때마침 화장실이 가고 싶었어. 그래서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화장실을 갔는데 문앞까지 줄이 길게 서 있더군. 당황해서 다른쪽 화장실을 이용하자 싶어서 다른곳으로 갔는데 몇 번 갔던 그 장소에 화장실이 남자화장실 밖에 없더라구. 더 웃긴건 거기가 사장실 바로 옆이야. 우연치 않게 내가 자꾸 얼쩡 거리니까 지시하더군.

"지금 바로 시험을 쳐야 겠군요." 하더니 자기 자리에서 박스채로 가득 담긴 시험지와 답안지를 관리자에게 넘기더군. 그래서 황급히 같이 있던 언니들 곁에 내 자리로 돌아가 착석했어.
"이제 시험을 시작합니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옆으로 돌려주세요." 하는 말과 함께 답안지를 받고 곧 이어 시험지가 눈 앞에 도착했어. 그런데 어느틈에 생긴건지 내 책상위에 수학책이 있더군. 도형과 공식이 가득했지. 그 책을 내가 예전에 풀었던 적이 있는건지 온통 낙서투성이에 밑줄이 좍좍 그어져있더군.

컷닝페이퍼이니 다들 아주 쉬울겁니다. 하는 안내의 말에 곁에서 언니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문제를 풀더라구. 문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식문제였어. 4지 선다에서 답들이 전부 공식이고, 문제는 대략 이런 식. "다음중 틀린 공식은?" 이라고 하는 공식의 맞고 틀리고를 맞히는 문제였지. 책을 넘겨가며 살펴보는데 분명 비슷한 공식 같지만 틀린 공식들이 가득했지. 아까전 화장실을 가고 싶던 생각은 1도 없어지고 긴장이 되더군. 그런데 시험이지만 다들 하하호호 웃으며 장난치듯 말하며 문제를 푸는 분위기에 옆에 언니에게 자연스럽게 물었어.

"언니, 문제가. . ."라고 하자마자 날 쳐다보며 "^^)문제가 쉽게 나왔다 그치?"하는거야. 거기서 눈을 굴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몇 분간 더 책을 뒤적거려 보았지만 1번문제부터 막히는 내 자신이 싫은거야(ㅠ .ㅠ)그래서 다시 여자화장실로 향하는데 내 호주머니에 핸드폰이 있는것이 느껴졌어. (요즘 폰이 워낙 덩치가 커서 묵직함) 순간적으로 아, 시험지를 화장실로 들고가서 무음으로 사진을 찍어 남편한테 전송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시댁쪽이 수학에 조금 특출남) 안되면 아주벗님에게 도형문제를 전송한다는 생각까지 하며 화장실로 향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는 아주 잔인하게 사원들을 모두 감시하는 미친 회사인게 생각났어. 아마도 내가 사진을 찍어서 챗방에 올리고 답을 받은걸 그대로 캡쳐해서 사내 벽보에 붙이고는 징계, 퇴직 뭐 이렇게 적어버릴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었다가 아니라 그러고도 남을 회사라는 생각을 하니 핸드폰을 갖고 있어도 도형문제라 검색조차 할 수 없고, 사진을 찍어도 전송조차 못하는 갑갑한 현실에 일단 볼일을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어.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핸드폰도 안 걷고 시험을 치는 구나 미친회사. . .하고 생각하며 다시 시험지를 보는데 뒤에서 누가 웃으며 말하더군.

"야, 1번문제 1번이 답이잖앜ㅋㅋ미친아"하며 뒷쪽에서 히히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뒤를 보니 나보다 후배인데 아주 깔깔거리며 서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문제를 풀고 있더군. 내가 도대체 왜 쟤네보다 못한건데 하는 (문제도 못 푸는데 무슨 근자감으로 미친ㅋㅋ) 생각을 하며 다시 그 1번문제에 1번이라는 걸 다시 보는데 아무리봐도 그냥 공식이야. ㅠ.ㅠ)또 막. . . 수학울렁증이 도질것 같은거야. . . 그래서 다른 문제를 풀어보려고 딴 걸 보려해도 죄다 공식문제였어. 이 세상 모든 공식들은 이쪽으로 다 집중된 것 같더라. 수학에 공식이 이토록 많다니. 더 놀라운 것은 앞에 대 놓고 보라고 준 책이 500페이지는 거뜬해 보이는데 전부 공식만 나오는 책이였어.

정말 한글은 거의 없고 온리 공식으로 묻고 답하는 책이였지. 공식한줄 써놓고 그 밑에 증명이랍시고 아주 길게 (ㅋㅋㅋ) 대문자 영어와 도형그림, 각도 뭐 그런것들이 빼곡히 적혀있더라구. 그걸 보는데 누가 말해준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 "여기서 이 시험에 고득점을 받은 사원들은 따로 큰 보상이 주어지겠구나.. 가령 선진국에 장기출장이나 진급? 관리직 부서로 이동?" 이런 생각이 들면서 왜 내가 하나도 공부하지 않을걸까 나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어. 언니들이랑 시시덕 거리지 말고 퇴근하고 집에가서 수학공부를 했다면 반이상 맞췄을텐데(...)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더군.

그러고보니 난 도대체 잘 하는게 뭘까.. 하는 자기반성을 넘어 비판으로 이어졌지. 올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되돌아봤어. 블로그에 낙서글이나 도배하고. . 아이양육. . 그냥 아무생각없이 회사다닌거. 뭐 세가지 정도 생각났지만 그걸로 어디가서 내세울 만한 그런것들은 아니라고 느껴졌어. 그러면서 마나마인쪽 분들이 불현듯 생각나더군. 다들 한 분야를 깊게 파고 들어간 분들이 연재하는 곳이잖아. 차라리 나도 특정 취미를 계속 이어나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내게 있어서 특정취미는 무엇인가. 또 생각을 해보니 그림? 얼굴밖에 못그리는 캐릭인데 그걸 하나의 컨텐츠로 만들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였어. 글? 글도 창작글보다는 일상글 수준이라서 항상 제자리 걸음인것 같아. 그래서 에세이 작가가 꿈이기도 했지만 요즘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본인을 표현하는 수단이 많아지며 일상글, 에세이로 특출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달까? 차라리 나 혼자 만족용으로 소량 출판하고 간직하는 그런 분들도 많아지는 것 같아. 정말 레고라고 팠어야 했나. . 하는 생각이 1초 들었지만. 아니. 난 그렇게 하나하나 조립하는 ㅠㅠ섬세한 작업은 아닌 것 같아. 솔직히 바느질이나 십자수도 아주 쥐약이야. 보통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섬세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굵은 펜으로 그어대는 그림을 좋아하는 지라 섬세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

정말 나는 잘하는게 뭘까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니 꿈에서 깨어났어. 시간을 보니 새벽 4시반쯤? 아기와 남편은 곁에서 자고 있고 뱃속에는 아기가 자라고 있어. 육아를 내세워 포장하려 하지만 그런걸로 나의 정체성을 표현한다는게 약간 슬픈 느낌이 들더군.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저는 아이 둘을 일하며 키웠어요.' 하고 답하면 으례 이렇게 말하지. '그것참 대단하군요. 일을 하며 아이 둘을 키우다니, 역시 엄마라는 직업은 보통일이 아니지요?^^'하는 인사치례말이 따라 온다. 남과 여를 구분해서 생각하면 안되지만 남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디가서 자신의 인생에 육아를 하나의 '잘하는 일'로 포장할 것 같진 않았다. '잘한 일'이라면 모를까.

뭐랄까. 첫째 아이 하나만으로도 숨막히는 중에 느닷없는 시험꿈을 꾸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누군가보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고등학교때 찾지 못한 진로의 문제를 32살에 다시 찾도록 꿈이 이끌어주는 것인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고. 여기서 좀 삐딱하게 가자면. 뭐어때.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는게 어디야. 육아도 돈버는 것도 뭐든 생산적인 걸 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얼마나 더 값어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거야? 하는 가시덩쿨을 칭칭 감고 공격하는 거친말들을 쏟아낼 방법도 있겠지.

이런 류의 방탕한(?) 생각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볼 기회조차 없애버리는 것 같다. 뭐 어쩌라고 같은 류의 생각인데 사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으례 방어적으로 저런 말들이 튀어나온다. 참 상대를 할 말 없게 만드는 베베 꼬인 말인데 가끔은 스트레스 해소겸 저런 류의 생각도 필요하지만 어떤 날은 그동안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인생이 걸어온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런 류의 꿈질문들은 학교나 언론매체에서 혹은 책에서 주입받은 질문일 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대표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이 으례 자서전에 한줄 씩 써넣는 그런 말이랄까?

하나의 성공을 이루면 그동안 걸어온 길들이 모두 그냥이 아니게 되듯 내게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은가 보다. 나는 나름대로 출세욕? 성공욕? 이런 것들을 많이 내려놓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닌것 같다. 나는 '항상 그림자 같이 살다가야지' 라고 생각한다고 전부터 말했었다. 그림자란 것이 사람들이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그림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해도 항상 붙어 있는 그런 것이라고 달리 생각해보니 그 시커멓고 조용히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는 녀석이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림자 같은 삶이란 것이 더 보통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병상에 누워 두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그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림자 같은 엄마였니? 아니면 나보다 먼저 죽을지 모르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물어봐야 할 것인가. 여보, 나는 당신에게 그림자 같은 아내였나요? 아니면 이곳에 물어야 하나? 여러분, 저는 그림자 같은 이웃인가요?

빛나는 태양이 싫어서 그림자를 택했는데 그림자만큼 인간에게 착 붙어있는 존재가 없는 것 같다. 밝은 빛 아래 언제나 붙어다니는 그림자라니. 빛과 그림자는 절대 따로 일수가 없다. 그동안 수 많은 심리테스트를 해왔지만 언제나 미궁같던 내 마음인데 오늘은 글을 쓰며 또 하나의 나를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태양을 가까이에 두려한다는 것. 내가 빛날 수 없다면 빛나는 사람곁에 언제나 붙어있고 싶다는 마음을 발견한 것 같다.

그 누구보다 나의 심리를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나라서 오늘의 글은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이래서 심리테스트를 끊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심리관련 기관을 보면 흥미로워 하는 것도. 자기 자신만큼 재밌는 건 없다고 느낀다. 내 안을 파고 파고 파다가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생각하며 글을 쓰다보니 꿈이야기할 때와 혼자 생각할때 말투가 바뀐듯...-_-;)

오늘의 일기 3줄 요약
-시험치는 꿈을 꿈
-나는 잘하는게 무엇인가 생각해 봄
-'그림자 같은 삶'에 대한 모토가 전혀 평범치 않음을 발견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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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존재하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요~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부모님의 자식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지금껏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꿈은 현실의 반대라잖아요. 꿈에서 공식문제를 1번부터 못풀었다면 현실에서는 1번부터 술술 풀릴거에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술술 풀리는 하루 보내세요~^^

오홍 파치아모님 힘이 나는 댓글이네요
^^)!!!출근길 조심하시궁 행복한하루 되셔요

수포자는 ㅋㅋㅋ 다 같은 마음이겠지 이게 뭔소리여 하고 ㅎㅎ

그러겤ㅋㅋㅋㅋㅋ휴
ㅋㅋ힘든 고통의 시간이였다.

꿈한번 겁나 디테일하네 ㅋㅋㅋㅋㅋ
잘 썼고 잘 읽었다

ㅋㅋㄱㅋㅋㅋㅋㅋ디테일한거 인정ㅋㄲㅋㅋㅋ

꿈이 이렇게 생생히 기억날 수 있는건가 ㅎ

ㅋㅋ자고나서 바로

적었어욤~~!!

꿈이 아닌줄... 어떤 회사이길래 500페이지 공식집을 주고 시험을ㅎㅎㅎㅎ
저는 금요일날 칠 시험을 월요일에 생생하게 꿔서 좌절할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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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저는 이미ㅋㅋㅋ아침부터 느닷없는 시험지로 멘붕이였네요

찡찡~
원래 수학문제는 푸는게 아니랬어 찍는거지~
개인적으로 찡으 ㅣ 일기가 전자책으로 나오면 좋을꺼같아 ^^

에?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뽀돌님 사랑합니데이

꿈이 기묘하다.
하루키의 책을 읽는 느낌..
내가 요즘 하루키 책에 빠져 있어서..ㅎㅎㅎㅎㅎㅎㅎ
그러고보니 찡이랑 하루키가 닮은 듯!

도담님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하루키라니요
ㅋㅋㅋㅋ
ㅋㅋㅋㅋ
성은이 망극하옵니다ㅋㅋ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