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국가 싱가포르 이야기 5 하이난 퀴진(Hainan Cuisine)

in kr-history •  7 years ago 

하이난 퀴진 Hainan Cuisine

싱가포르 인구의 80%는 중국계이고, 그 대부분 복건(福建 Hokkien), 광동(廣東 Cantonese), 광동 조주(潮州 TeoChew), 해남(海南 Hainanese), 객가(客家 Hakka)라는 출신지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복건, 광동, 객가 출신의 이민자 그룹은 그 이민의 역사가 길고, 인구 역시 많아서 일찍이 싱가포르의 알짜배기 직종들, 즉 금융, 무역, 대농장 경영, 광산 경영, 인력거 사업 등등에 진출하여 그 분야를 장악한 것에 비해,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해남인들의 경우 비교적 돈이 되는 직종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시기까지만 해도 해남인들의 존재감은 다른 지역 이민자 그룹에 비해 옅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다만, 이들 해남인들이 독보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싱가포르의 음식문화이다. 해남인들을 빼고는 싱가포르의 음식문화를 얘기할 수 없다.

이미 다른 이민자 그룹이 장악해 놓은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없었던 해남인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싱가포르의 3D 업종에 종사하기 시작한다. 고무 농장의 고무 수액 채취자(rubber-tapper), 선원(seamen), 요리사(cooks), 점원, 하인(domestic servant) 등등이 그들의 주요 진출 업종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신 건지 무심치 않으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 해남인들은 이 중 요리사와 하인으로서 그 뛰어난 재능을 드러내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특히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부유한 유럽인들 및 화교들의 저택, 관공서, 군부대 등지에서 “houseboys” 및 “cookboys”로 고용되어 영국의 식민지 이자 동남아시아의 무역 금융 허브였던 싱가포르 지도층의 생활방식, 음식문화 등을 배우고 익히며 성장하였다. 이들 해남인들 중 이 직종에 숙련된 이들은 훌륭한 집사 및 요리사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숙련된 해남인들은 1920-30년대가 되면 고관대작의 저택을 벗어나 다양한 직종에서 그들의 재능을 펼치게 되는데, 바로 요리 실력과 서비스 정신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싱가포르의 요식업계였다. 그들이 유럽인들에게 고용되어 익혔던 세련된 서비스 및 레스토랑 관리 기술은 점점 서구화되어 가고 있던 싱가포르의 요식업계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고, 스스로 식당, 빵집, 푸드 코트를 창업하거나 혹은 호텔, 서구식 레스토랑, 카페 등에 요리사 및 웨이터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1920년대에서 50년대 사이에 특히 이들 해남인들의 요식업 진출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명한 커피 토스트 체인인 킬리니 꼬삐띠암(Killiney kopitiam)과 야쿤 카야(Ya Kun) 토스트이다. 킬리니는 해남 출신 이민자가 1919년에 킬리니 로드에 세운 가게가 그 출발점이었고, 야쿤 토스트 체인을 창업한 해남 출신 이민자 로이 아 쿤(Loi Ah Koon)의 경우 1926년 15세에 싱가포르로 건너 와 같은 해남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보조로 일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야쿤 토스트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즉 이 시기는 해남인들이 싱가포르의 요식업계에서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 이들이 이렇게 요식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그들이 스스로 개발한 메뉴에 있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인들의 저택 및 군부대에서 집사, 하인, 요리 보조, 요리사로 근무하면서 익힌 서구의 음식문화를 해남인들 특유의 해양성이 가미된 음식문화와 잘 접목시켜 메뉴를 개발하였고, 이것이 점차 서구화되어 가던 싱가포르인들의 입맛을 취향저격해 버렸던 것.

앞서 예를 든 킬리니 꼬삐띠암, 야쿤 토스트, 왕(Wang)카페 등에서 판매하는 대표적인 조식 및 브런치 메뉴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잘 우려낸 커피 혹은 홍차와 함께 나오는 카야 토스트 및 프렌치 토스트, 그리고 반숙 계란에 곁들인 간장의 조합은 원조 격인 영국식 브렉퍼스트를 해남인들의 감각으로 변용한 대표적인 메뉴.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필수 조식 혹은 브런치 메뉴다. 그 외에 싱가포르의 시그니쳐 메뉴인 치킨 라이스, 치킨 커리, 비프 누들 등등이 모두 해남인들의 작품이다. 또 해남인들의 커피 우려내는 솜씨 또한 기가 막혔다고도 하고.

무더운 싱가포르를 헤매는 여행객들의 든든한 친구인 한스Han's레스토랑 카페와 로컬 싱가포르인들이 즐겨 찾는 중저가 스테이크 하우스인 잭스 플레이스Jack’s place 역시 이 시기 해남인 ‘cookboys’ 들의 후손들이 창업한 요식업 체인이다.(한스 카페의 경우 Han씨 패밀리들이 창업한 것) 무엇보다도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이 1910년에서 1915년 사이에 래플스 호텔 롱바Raffle’s Hotel Long Bar의 해남인 바텐더 니암 통 분Ngiam Tong Boon에 의해 개발되었고, 1970년대에 그의 조카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개량되었다는 사실은 이 당시 해남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요식업분야에 진출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서구의 식민문화와 중국, 말레이, 인도인들의 아시아 문화가 혼종한 채로 200 여년을 영위해 온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시티. 외국인으로서 싱가포르를 여행하고 있거나, 해봤거나, 혹은 거주하고 있거나 거주해봤던 이들은 싱가포르의 다양한 모습들로부터 그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마이너한 그룹이지만, 해남인 이민자들 특유의 하이브리드한 경험과 감각을 통해 형성된 싱가포르의 음식문화야 말로 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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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사람이 요리를 잘하나보네요 그리고 님 말씀처럼 아시아 인도등등
여러 인종이 섞여있으니 향신료 많이 쓰는 음식이겠죠? 경험해보고싶네요
좋은글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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