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구리 마지막 이야기

in kr-join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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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문화 공원

저에게 방문을 요청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여행을 다녀오시기 위해 연락을 주시는 편이에요. 그리고 가끔 '애들때문에 8년 동안 어디를 가본적이 없다'고 하시거나, 정작 힘들게 떠나고 나서도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볼때면 제가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과감히 떠나시라! 집사가 행복해야 행복한 고양이도 있는거라고 그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반대로 어떤분은 '젊었을때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한다! 그렇게 대책없이 여행다니는 거는 스튜핏!!!' 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생각해보면 직장인들은 하루 하루 일상에서 기운을 충전할 시간도 없고, 나를 위한 작은 행복부림도 하기 힘든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의미로 여행이야 말로 짧고 굵게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씀씀이의 형태로도 볼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리 미리 준비하고 좋은 정보를 챙겨가며 하는 여행은 많지 않은 돈으로도 할 수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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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다원(오설록 아님)

그런 의미로 저는 오히려 여름을 피하는 여행을 추천합니다. 제주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더위' 였어요. 특히 그냥 더위가 아닌 습기를 가득 머금은 끈적끈적한! 제주는 일년의 절반이상이 여름인 듯 싶고 심지어 겨울에도 간혹 낮에 바람이 안불고 맑은 날은 약간 덥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죠. 육지는 현재 여러가지 정황상 여름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제주는 이미 예전부터 여름이죠. 그리고 아마 대략 11월로 들어가야 그제서야 가을이 시작된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저는 오히려 그 무렵이 여행 적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저기 다닐때 땀도 안흘리고, 쾌적한 기분, 좋은 컨디션으로 여유있게 다닐수 있죠. 무엇보다 가장 좋은건 많은 여행지가 그렇듯 10월, 11월은 제주의 여행 비수기이기 때문에 비행기와 숙박, 렌트 등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죠. 게다가 한라산의 단풍이며, 풍성한 귤 밭, 미친듯 휘날리는 억새들도 여행의 멋진 배경이 되어줍니다. 또한 그런 제주만의 매력은 위의 사진에서처럼 해안가가 아닌 내륙, 즉 중산간 지역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오름, 원시림의 곶자왈, 사려니, 삼다수 숲 트레킹, 힘들지만 성취감을 안겨주는 한라산 등반 등등. 다음에 제주를 방문하실 분들은 바다도 바다지만 꼭 중산간을 맛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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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 숲길 잎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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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방목지
여하튼 저번 구리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구리와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산책을 하며 보내는 시간들은 참 행복했어요. 이전에 육지 친구들이 안부 전화를 하면 '아! 그냥 해변에서 개랑 산책중이야'라며 허세떨며 은근히 자랑을 했다면, 구리랑 있을때는 '뒤뜰에서 고양이랑 걷고 있어'라고 말해주면 왠지 조금 더 스웩 넘치는? 느낌이었죠 ㅎㅎ.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 시간이 계속 되지 않을거라 어림짐작하고 있었어요. 조만간 제주를, 그리고 구리를 떠나게 될것이라는... 그런 이유로 무엇보다도 구리를 위해 서둘러 해주어야 할 것은 중성화 수술이었어요.

효리네 민박같은 걸 보면 사람들은 제주도에 대해 많은 환상을 가지겠지만 사실 현실제주, 일상제주는 바다가 있는, 관광지가 있는 강원도 두메산골에 가깝습니다. 즉, 제주시나 서귀포시, 혹은 대규모 관광단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직 대부분 깡촌에 가까운 곳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동물병원이라고 검색하면 도시에 있는 것 같은 반려동물 병원이 아닌 대부분 소위 대동물이라고 하는 소, 말, 돼지 같은 커다란 가축을 상대하는 병원들이 나오죠. 그나마 있는 동물병원들도 아까 말한 큰도시까지 한참을 가야하고 고양이 보다는 개, 그것도 애완견보다는 밖에서 기르는 대형견 위주로 진료를 많이 하고 있기에 믿을만한 고양이 중성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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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곧 맞이하게 될 운명에 놀라 휘둥그레해진 구리 ㅋㅋ

여하튼 우여곡절끝에 중성화를 마치고, 그 다음 스텝은 제가 떠나고 난 뒤의 구리였어요. 아마 제주에서 제가 계속 살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 그럴 수 없었고, 육지에서는 같이 지낼수 없는 상황이었죠. 어쩌면 구리는 저에게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처럼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장기 투숙객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애초에 발견되어진 곳도 객실이었기도 했고^^ 실제로 구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수 있기도 했죠. 물론 사람과 친해진 구리가 야생에 다시 적응하기는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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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구리에게도 제가 떠난 이후에 함께 지낼 가족과 안전한 거주지를 찾아주고 싶었어요.그리고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이기 때문에 제주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것이 구리를 위해서도 좋을거라고 생각했었고,무엇보다도 이렇게 밖에서 뛰노는 걸 좋아하니 제가 사는 도시는 더욱 구리에게 맞지 않을듯 싶더군요. 그렇게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 줄 입양처를 찾기 시작했고, 그 중에 한 군데가 바로 김녕 미로공원이었어요. 가보신 분들이나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로공원은 고양이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에요. 미로공원의 주인이신 분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한마리 두마리 거두다 보니 엄청 대가족이 되었고 결국 야외에서 자유롭게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는, 이제는 미로만큼이나 고양이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죠. 그곳이라면 친구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밖에서 뛰놀수 있다는 생각에 얼핏 구리에게 딱 맞을거 같았지만 실제로 몇번 가보고 그 곳 사장님과 상담도 해보니 장점만 있는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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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미로 공원의 냥이들

아무래도 그렇게 여러마리가 그렇게 넓은 공간에서 지내다보니,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노출되어 있다보니 한마리 한마리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기 힘들고 주차장과 차도를 포함해 위험요소들도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이미 있는 친구들도 모두 구리를 반겨주리라는 법도 없고요. 사장님도 그 점들을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고 구리가 와서 행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고 하셔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 다행히 구인글을 보시고 멀리 모슬포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사실 아무래도 도시에 비해 인구도 적고, 그 대부분이 노인분들인데다가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곳이 아니다보니 공고를 보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적어 하루 하루 마음이 많이 불안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죠. 무엇보다도 그 분의 꿈이 같이 산책을 다닐수 있는 고양이라고 하셨는데, 저를 따라 걸어 나온 구리를 보고 무척이나 흡족해 하셨고, 그 먼거리를 급하게 달려올 정도로 가족 모두가 구리에 대해 애정을 보여주셔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구리를 보내줄 수 있었죠. 게다가 그분 집에는 이미 마음씨 좋게 생긴 친구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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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잘 살고 있다는 구리^^

여하튼 그렇게 구리와, 또 제주와 이별을 하고 이제 육지에 와서 방문탁묘를 하게 되었는데, 가끔 구리 생각이 날때가 있어요. 구리 이전에도 많은 고양이를 만났었지만 구리 같은 독특한 아이는 처음이었고 흔치 않은 케릭터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왠걸요. 방문해서 만나는 아이들은 말그대로 백묘백색이라는 한자성어가 딱 어울릴만큼 다양합니다. '호랭이처럼 파이팅 넘치는 아이,'닌자처럼 소리도 흔적도 없이 숨는 아이', '알약도 내 운명이겠거니 꿀떡 꿀떡 잘도 넘기는 아이', '하악질 하면서 부비부비하는 다중성격묘', '끊임없이 뭐라 뭐라 참견하는 수다쟁이냥반', '먹을 거 앞에서는 자존심은 개에게 양보하는 아이', 똥 오줌 못가리는 칠렐레 팔렐레 하룻 고양이부터 세상 다 산듯 무념무상의 할배, 할매 냥이까지 세상은 넓고 고양이는 많더군요. 저야 이제 경험이 많이 쌓여 어떤 분을 만나던, 또 아프던 어리던, 싸납던, 무겁던, 힘쎄던, 사라지던 그 분들의 심기를 거슬르지 않고 제 할일을 잘 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냥이들을 만나고 그들만의 매력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이 일을 하는데 있어 큰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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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남달랐던 구리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가능하면 구리에게 맞는 환경과, 조건들을 만들어 주려고 했고, 또 나름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개성을 매력으로서 지켜주려 했던 것 처럼...사랑이란 것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맞는 것을 찾아주고, 독특함이나 매력을 지켜주려는 것. 물론 고양이는 뭘 해달라고 말해주지도, 원한다고 표현하지도 못하지만 적어도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궁금해하고 뭘 원할까 고민하고, 어떻게 해주는 것이 이로울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집사로서 가져야 할 좋은 덕목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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