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삐 열전(列傳)
뉘엿뉘엿 해가 진 여름 어둑한 사랑채에서 주인영감님이 저녁상을 받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부잣집이니 어른 저녁상은 진수성찬이라는 상상과는 달리 달랑 죽 한 그릇에 열무김치 한 보시기에 간장 한 종지가 전부였다. 행랑채 툇마루에 걸터앉은 머슴에게도 저녁상이 도착했다. 거무스레하게 보리가 섞이긴 했어도 사발위로 수북이 쌓인 밥상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물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람이 어째서 주인영감님은 멀건 죽이고 머슴은 밥이냐고 하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영감님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까워 벌벌 떨기 때문에 삼시세끼를 밥을 먹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 주로 죽을 드시는데 머슴은 죽이나 먹고는 힘든 농사일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로 밥을 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죽만 먹고 모은 돈과 장리쌀을 놓았다 가을에 거두어들인 돈이 모여 해마다 논밭을 사서 점점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에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안주인이 자리보전을 하는 날이 늘더니 급기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약도 변변히 못 써보고 허무하게 보낸데 대한 때늦은 후회와 애통한 마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을 했다. 후처도 전처 못지않게 고운 얼굴에 심성도 착하고 솜씨도 좋고 영감님께 극진한 것은 물론 전처 자식들도 정성으로 보살폈다. 모두들 영감님이 처복을 타고 났다느니 할 정도로 잘 사는 듯 했으나 무슨 까닭인지 의붓자식들은 늘 풀이 죽어서 겉돌았다. 그러다 영감님께서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너무나 섧게 곡을 하며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는 아무도 그 여인을 본 일이 없었고 풀이 죽어 겉돌던 아들들이 크게 되었다는 소리가 끝이었다.
피난길에서도 손을 놓으면 다시 못 만날 것 같아 서로 허리띠를 묶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하늘아래 단 둘인 핏줄은 그렇게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어른이 되었다. 낯선 땅에 맨 주먹으로 들어와 주춧돌을 놓고 마침내 대문간에 문패를 달던 날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형은 하나 뿐인 큰아들을 중학교도 학력인정이 되지 않는 군인들이 교사로 봉사하는 비정규 학교를 보낼 정도였고 동생도 하나 뿐인 딸을 남의 집에서 버리려고 하는 낡은 코트를 양복점에 맡겨 수선을 해서 입힐 정도였다. 어느덧 자리를 잡고 밥술이나 먹고 살만할 때 형제가 모처럼 함께 출타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창밖으로 고향 앞산과 닮은 풍경을 보았다. 형제는 수소문해서 그 산을 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형이 렙토스피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그 산에 묻혔다. 동생은 여전히 눈만 뜨면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마다않고 했다. 어느 날 사촌들끼리 우연한 말끝에 다툼이 벌어졌다. 얼마 가지 않아 형의 묘지가 파헤쳐지고 실향민들이 모여 마련한 공동묘지로 이장을 하고 사촌들은 서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시골 동네는 아홉시만 지나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한 밤중에 아이가 울면 아빠는 부리나케 옷을 입고 땡삐아저씨네 가게로 뛰어갔다. 요즘 말로 하면 편의점의 원조라고 이해하면 틀림없다. 바로 그 땡삐아저씨네 집에 놀러 갈 때는 밥을 먹고 가야 한다고 했다. 아무도 그 집 밥을 얻어먹은 적은 없다고 할 정도였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었다. 사실 그 입장이면 하고 싶은 일은 남의 일이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해야 할 일을 찾게 된다. 친척 아저씨를 따라 간 곳은 정미소였다. 언제나 시끄러운 소음과 겨에서 쏟아지는 먼지 속에서 살았다. 밥도 먼지에 섞어서 먹었고 잠도 먼지를 덮고 잤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라도 기술을 배워 동생들 학교 보내고 싶은 마음에 모진 고생을 견뎌냈다. 그러다 조금 크면서 화물차 조수로 가서 서울로 쌀을 싣고 가서 올 때는 연탄을 사가지고 왔다. 연탄을 다 내리고 차 바닥을 청소하면서 새까만 연탄가루가 묻힌 쌀을 깨끗이 씻어 말린 다음 모아서 한 말이 되면 쌀집에 팔았다. 이제는 연세도 드시고 자녀들도 서울에서 제법 잘 나간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남의 집 궂은일에는 빠지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었다. 평소에 공밥 안 주고 괜한 인심 안 쓰기로 유명한 아저씨네 집 앞이 어느 날 왁자지껄했다. 땡삐아저씨가 잔치를 벌였다. 연세 높으신 동네 어른들을 위한 잔치였다. 말이 어르신 잔치였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을 한 그릇씩 차지하고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이웃 사람들 이야기 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을 올리실때 다음에 올려서 다시 복사를 해오시면 위에서 보는 현상이 사라지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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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지요.
문서에서 복사해 올렸는데 그런 현상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원인은 모르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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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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