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한 조각] 노을, 홍수, 그리고 가락아파트

in kr-memory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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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Pixabay.com]



내 어린시절 추억은 많은 부분 "가락아파트"에 있다. 가락아파트가 서울시 "강동구" 가락동에 있던 시절에 거기 살았었다. 가락 농수산물 시장 공사장이 놀이터였고, 탄천 넘어 지금의 일원동에 가면 맑은 개울이 있어 가재 한 마리 없을까 돌을 뒤졌었다.

가락아파트 단지의 끄트머리 모서리 쪽에 5층 복도식 아파트가 있고, 그 복도에선 아파트 단지 둘레로 쳐진 빨간 벽돌담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탄천 둑방과 벽돌담 사이, 한 때는 물이 고여있기도 했었고, 한 때는 비닐하우스 한 동이 있기도 했었다. 거기에 누군가 살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느 여름날, 비가 많이 왔다. 종종 비는 몰아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고, 한강 물이 넘쳐서 풍납동 같은 저지대가 침수되었다는 뉴스가 낯설 지 않던 때였다. 그런데 이번 비는 좀 더 심각했었나 보다. 아파트 앞 주차장과 도로에도 물이차는 걸 처음봤다. 물론 겨우 내 무릎 정도 차는 거라 아파트에 사는 나에게 홍수 피해는 없었다. 밖에 나가 놀지 못하는 것 만 빼고.

비가 그쳤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도 사라졌다. 서쪽 하늘에는 노을이 참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붉은 노을"이었다. 복도 끝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데, 빨간 담 넘어 비닐하우스의 모습도 역시 눈에 들어왔다. 거기 사는 누군가는 분주히 안과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비닐하우스 집에 물이 들어와 가재도구를 집 밖 약간 높은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은 확실히 애달퍼보였다. 우리 집이 물에 잠긴 적은 없었지만, 분주히 움직이는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고달픔이 느껴졌다. 그런데 노을이 너무 예뻤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붉은 노을 이었다. 노을이 아름다운데, 그걸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죄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다.


나중에 대학에서 후배와 얘기 중에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후배는 한 화면 안에서 고통/슬픔과 대비되어 어떤 대상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 미학 용어로 XXX라고 부른다고 알려줬다. 물론 그 용어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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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

여름 하늘은 사계절 중 제일 예뻐요. 노을도 여름에 제일 많이 보고.

노을이 여름에 많이 보인다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왜 그런지 한 번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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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va 뉴욕 dj-on-steem/td> DC 근교 hello-sunshine DC

Dj님의 어릴적 한 자락을 같이 들여다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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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독백이었는데, 같이 봐주시니 고백이 되었네요 ^^

뭔가 마음의 무언가를 건들이는 글이네요. 가락아파트와 홍수, 너무 예쁜 노을 ㅠ 장면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노을에는 다들 추억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습니다. 고물님도 쿠바에서 노을 많이 보셨을테고... ^^

  ·  5 years ago Reveal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