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폭행, 성, 그리고 팀team.

in kr-metoo •  7 years ago  (edited)

미리 말하지만 난 성범죄를 '폭행'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범죄의 본질에 해당하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여 법에 명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폭행은 물리적 위해를 가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이고, 그런 행위가 일어나는 이유는 '상대방이 얻은 피해'가 가해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폭행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가해자의 이익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폭행이 성립하지 않거나, 혹은 더 큰 폭행의 동기가 된다(더 자세한 논의는 구구해지므로 생략).

성범죄는 가해자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가해자 본인의 직접적 이익을 목표로 하는 범죄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이익이 피해자에게 폭행에 상응하는, 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피해와 좌절을 주게 된다.

폭행이 이익보다는 위해를 직접으로 하고, 위해에 의한 만족이 2차적으로 일어난다면, 성범죄는 성적 만족을 직접으로 하고, 피해가 2차적으로 일어난다는 면에서, 발생의 원인과 그 진행과정이 반대인 범죄들이다.

문제는 우리법이(세계의 거의 모든 법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이 서로 다른 범죄 유형을 포괄하지 못하고, 오로지 '폭행'에 관해서만 오랫동안 정밀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성범죄를 폭행에 의율하여 적용한다는 데에 있다. 유형이 너무 다르므로 성범죄가 폭행임을 검사와 판사에게 증명하는데 있어, 일반적인 폭행보다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일단 성범죄의 '물리적 강제나 위해'를 증명해야 하고, 그것으로 입은 피해자의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일반 폭행사범 처벌에 있어, 폭행의 존재유무에 대한 사실판단만으로 거의 모든 과정이 종결되는 경우에 비해 매우 불합리한 절차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자 처벌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기준에 따르면, 성추행보다는 성추행범을 인터넷에 고발하는 행위가 상대방에 대한 폭행에 해당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더 쉽다).

서양법은 그 전통이 개인의 소유권을 중시한 개인법이고, 그 개인의 대상은 여자와 아이를 거느린 자유인 남성이었다. 그런 문화적 배경에서 제정된 법에 개인이 아니라 둘 이상의 상호작용에 대한 어떤 개념을 만들어 만민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바로 그 이유때문에 문명사회는 지금 진보의 정체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성행위는 그것이 자위가 아닌 이상은 반드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며, 성행위가 종 보존과 문명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이기 때문에, 그 공동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 법에 명시되어 있어야 하고, 그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는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며, 나는 그 규정의 핵심에는 반드시 '합의'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으므로, 성범죄의 판단과 처벌의 근거는 '폭행 성립 여부'가 아니라 '합의 존재 여부'만으로 충분하게 되리라 생각한다(합의에 관한 이견이 있을 경우는 무엇이 합의인가에 대해 어떤 절차를 정하고 국민들이 이에 따르도록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합의'의 존재여부는 단지 성행위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동 행위', 즉, '팀 작업'에 대한 규범으로서 존재해야 한다(즉, 성 당사자 간의 행위를 전체 사회 윤리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개인 소유권을 시장경제의 원리로 삼는 것처럼). 그러면 팀을 소유물로 여기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고, 대부분의 팀은 합의된 사람들로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한 군데 모아 놓고, 하기 싫은 일을 시킨 뒤, 내가 니들 관리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냐고 우기면서 이익을 모두 독차지하는 행위도 사라질 것이다.

인류 문명은 신이나 성경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지구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이제 갓 시작된 현상이며, 인생은 만들어진 문명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경전이나 법 체계가 불완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는 문명의 유지, 발전과정에서 그것들을 개선하고 돌아 볼 의무를 지닌다. 남녀의 문제는 힘 센 개인을 문명 단위로 판단하던 과거의 자료들의 오류에서 출발한다. 그 개인 문명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고, 오늘날처럼 지구 전체의 부wealth가 개인 몇에게 편중이 되어도, 그에 저항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소유권은 왕에 대항하려는 공동체의 노력이었으므로, 이대로 가면 소유권에 대항하려는 공동체의 노력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공동의 의사결정에 대한 '합의권'을 소유권만큼이나 중시하는 문명과 법체계가 된다면, 오늘날 겪고 있는 가정 폭력, 학교 폭력, 그리고 성폭력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최근에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미투'의 문제도 합의권보다 소유권을 숭상했던 문명에 대한 반성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물론 이런 발상이 매우매우매우매우 싫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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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워서 3번 정독했습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성범죄에 합의 문제를 거론하는 클리셰같은 글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고 읽어보니 굉장히 좋은 관점이네요.
그런데..해바라기센터(한국 성폭력센터) 에서 간간히 일했던 제 경험을 뒤돌아 보면, 이 합의라는 것이 주관적인 거이라 적용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간혹 피해자 인터뷰해보면, 남자들 중에서는 늦은 밤 술을 같이 먹는 행위만으로도, 성관계에 합의하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기가 차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관점이 굉장히 신선하여,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kr-metoo 태그를 새로 신설하셨네요. 앞서나가시는 분 ㅎㅎㅎㅎ

  ·  7 years ago (edited)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폭행은 물리적 위해를 가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 형법상 문제가 되는 정의는 아닌 것 같은데요. 다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정의하는데 저는 이 정의가 너무 협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범죄 이슈와 관련되었을 뿐 아니라 태동중인 공유경제나 더불어 crypto-economy 에 이르기까지 통찰을 주는 글이네요. 잘 읽고 리스팀해둡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주제 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화이팅 하세요. ^^

복잡한 세상입니다... 성폭력을 이용해 멀쩡한 남자를 한순간에 매장시키는 여성들도 있고요...

성폭력을 한 게 맞다면 그 남자가 멀쩡한 남자일까요?

절대 멀쩡할리가 없죠... 문제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남자를 금전적 이득을 얻고자 허위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