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 짐 고든이 게리 올드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완벽한 증거

in kr-movie •  7 years ago  (edited)

'A Masterpiece' 가장 진부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대변할 단어로써 쓸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예고편이 처음으로 나오자마자 이건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영화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볼 수 있었고 보고야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부제로 적었지만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짐 고든이 게리 올드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완벽한 증거로 내세울 수 있는 영화다.

꼭 그런 배우가 있다. 그 배우의 본명이 떠오르지 않고 그가 맡았던 캐릭터의 이름이 떠오르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을 떠올리면 토니 스타크가, 조니 뎁의 얼굴을 떠올리면 잭 스패로우가 떠오르 듯이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희한하게 본인이 찍었던 영화의 감독과도 함께 연상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존 파브로, 조니 뎁은 팀 버튼. 물론, 이들도 아이언 맨 시리즈나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 말고도 역시나 '명작'이라 불릴만한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게리 올드만이 윈스턴 처칠로 분한 '다키스트 아워'는 굉장히 뜬금없으면서 신선한 배역이다.

사실 게리 올드만은 짐 고든이라는 캐릭터가 그를 대변할만했다. 적어도 이 영화 전까지는.

애초부터 윈스턴 처칠이라는 캐릭터의 외모부터 게리 올드만의 외모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게리 올드만이 어떻게 풍채 좋은 영국의 총리였던 처칠로 변신했을까. 바로 특수분장의 대가로 불리는 카즈히로 츠지 그리고 특수 의상의 대가 바네사 리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게리 올드만은 매 촬영마다 처칠로 변신하기 위해 6시간을 분장과 의상에 투자했다.

게리 올드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모만을 처칠에 가깝게 '만들어야' 했다면 게리 올드만이 아니더라도 처칠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배우를 섭외했을 터. 그는 종전에 이미 만들어진 처칠을 다룬 영화를 참고하여 이들의 색깔을 지우고자 했다. 게다가 같은 해 '처칠'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브라이언 콕스가 분한 처칠도 호평을 받았던 상황. 까만 중절모, 꼬나 문 시가 그리고 지팡이. 처칠의 상징과도 같은 이 요소는 당연히 필요했다. 같은 처칠을 분했으나 게리 올드만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디테일이다.

그는 우선 모든 처칠의 육성이 담긴 자료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목소리와 발음을 철저히 그에 맞춰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처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했고 행동했을까에 대해 공부했다. 아주 작은 표정부터 행동까지 '윈스턴 처칠' 이 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게리 올드만 정도면 받을 수 있는 상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이번 수상은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게리 올드만은 영국 노동자 계층 출신의 배우이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심하지 않다고 하지만 노동자 계층 출신의 배우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심한 편이다. 영국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배우는 귀족 계층 출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리 올드만이 처칠 역을 맡았고 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되겠고 영국 영화판 내에 울리는 큰 경종이 될 테다.

실제 엑스맨 시리즈에 출연했던 제임스 매카보이는 이러한 차별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왔다. 테이큰 시리즈의 리암 니슨 또한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오랜 기간 영국에서 배우로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심지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고 영국 영어 발음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는) 콜린 퍼스는 중산층 출신으로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6세 역을 맡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꽤나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찌 됐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지니는 영화이고 개인적으로는 여태껏 봐온 영화 중 완성도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불꽃같은 연설 중 한마디는 배우 게리 올드만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WE SHALL NEVER SURRENDER!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킹스 스피치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에는 반드시 덩케르크를 한 번 보면 좋겠다. 킹스 스피치와 덩케르크 모두 이미 봤더라도 이 순서대로 보면 아마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역사적 의미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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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킹스스피치와 덩케르크를 왜 언급하셨나 했더니 역사적 시간순이 킹스 스피치-다키스트 아워-덩케르크 순인가요? 세계대전의 영국을 중심으로 그렇게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역사적 시간순으로 보면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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