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不知堂)의 茶 이야기. 15.
앞서 나는 오미자, 생강, 감잎, 대추 등과 같은 우리 차들이 대용(代用)차 정도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차(茶)가 이같은 대접을 받는 이유와 원인이 무엇일까요?
우리 땅은 평원이 대부분 평원인 중국 땅과 달리 70%이상이 산이고, 여기서 자라는 식물들도 중국에서 생산된 식물들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계곡 사이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사계절(四季節)의 변화는 초목(草木)들에게 풍부한 영양분과 제 나름의 약성(藥性)을 갖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역사적으로 중국의 제왕들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우리 땅으로 사람들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식물들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거나, 약(藥)으로 법제(法制)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많은 처방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재료로 만들어낸 식음료들을 차(茶)라 말했고, 차나무에 만들진 것은 이것들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다양한 신(神)이 있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믿는 것처럼, 차 역시 마찮가지 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음료에 차(茶)라는 이름이 붙여 졌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아무래도 차(茶)의 역사(歷史)를 따라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중국인들은 기원전 3000년경의 전설적 인물인 신농(神農)까지 끌어드려 자신들이 차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재밋는 것은 신농이란 존재는 우리 고대사가 기록된 환단고기(桓檀古記)에도 등장합니다. 그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온갖 식물들을 직접 먹어 독초와 약초를 구별하였고, 또 재배할 수 있는 작물까지 찾아주었기 때문에 농사(農事)의 신(神)이 되었지요.
중국인들이 신농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끌어드린 계기는 도홍경(陶弘景:456~536)이라는 인물 때문입니다. 그가 진한(秦漢)시대에 기록된 ‘본초경(本草經)’을 ‘신농본초경’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내면서 다음과 같은 茶이야기를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신농씨가 어느 날 산에서 복통을 일으켰는데, 어떤 나뭇잎을 뜯어 먹자 씻은 듯이 나았으므로 이 나무를 차(茶)라 일컫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본초경의 원래 기록인지, 아니면 ‘도홍경’이 썰을 풀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속에서 등장하는 신기한 나무를 왜 ‘차’라고 명명했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에 앞서 茶라는 어떤 것이 있어야 됩니다. 게다가 그것이 지금의 중국인들이 재배하고 있는 차나무들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 때문인지 그들은 공자의 생존 시대)에 나온 「시경(詩經)」이나 「안자춘추(晏子春秋)」의 내용에 나오는 '도(荼)’ ‘가(檟)’ ‘여(艅)’ 천(荈)같은 풀이름들까지 끌어와 차(茶)의 원래 글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중국 차의 역사는 당나라 시대에 육우(陸羽:733~804)가 나타난 이후 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도 자신의 다경(茶經)속에 신농 이야기를 집어 넣으므로써 중국이 차의 종주국이라 자처하고 있지만, 이런 몸부림까지도 헛발질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 역시 차(茶)라는 문자가 어디서 굴러온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茶라는 문자는 우리 역사 속에 최초로 등장했던 것은 민족 문화가 시작되었던 고조선 시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祭祀)문화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한국인들의 제사는 유교(儒敎)문화에서 온 기제(忌祭)와 기원전 단군 시대부터 지내왔던 천제(天祭)가 있습니다. 이 천제는 설과 추석같은 명절이나 결혼식 같은 큰 행사 때 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하늘 제사를 '차례'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제는 이상하게도 심야(深夜)가 아닌 한 낮에 지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땅의 귀신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조상인 하늘님을 모시는 천제(天祭)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하늘 제사(祭祀)는 기록상 최초의 민족 국가인 고조선시대 부터 시작되었다는 게 현 사학계(史學界)가 인정하는 이론입니다. 즉 단군(檀君)이라는 제사장이 나라를 통치했던 시대부터 하늘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하늘 제사를 우리는 차례(茶禮)라 일컬었습니다. 글자대로 라면 차(茶)의 예법(禮法)이 되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나의 스승이었던 효당 스님만해도 지금의 녹차(茶)를 올리고 제사(祭祀)를 지냈기 때문이라 해석하지만 저는 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아의 북방에 근거지를 두었던 제사장 단군이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찻잎으로 제(祭)를 지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왜 차례라 말했을까요? 이같은 의문을 풀어보려면 아무래도 이야기를 과거로 떠나는 시간(時間) 여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