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사순절 기간에 성당에서 하던 십자가의 길이란 기도가 기억이 난다. 천주교 신자들이 성당에 모여서, 예수님이 고통받으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성서를 읽으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근데 나는 이때 초등학생이었다. 어린 나에겐 그 성서의 내용들과 기도들이 공포스럽고 무서워서 불 꺼진 집에 들어가면 무서워서 서둘러 불을 켜곤 했었다.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어렵고 큰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읽어서 좋지 않은 점은 무엇일까요?" 면접관의 질문이었다. 면접에서 취미가 어떤 것인지 물었을 때 독서라고 답한 적은 있지만, 최근에 읽은 책들과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리고 본인의 취향은 어떻다고 직접 증명까지 한 면접은 아주 흥미로웠다. 본인은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고, 최근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읽었고 호모 데우스의 서문을 꼭 보라고 하셨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나는 (찾아보니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야기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본인이 소화하고 느낀 것이 아님에도 책의 내용을 본인의 생각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답변을 했다. 면접관은 나에게, 본인 생각으로는 책을 읽으면 불평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채 사장의 말도 떠올랐다. 불편한 독서, 불편한 지식들을 흡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매트릭스의 빨간 약과 파란 약도 생각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위의 사건들이 다시 한번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자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책도 쓰시고 방송에서 대중강연도 많이 하고 계신다고 한다. 차이나는 클래스 등에도 출연하셨었는데 방송을 직접 보진 않았다. 본인 표현으로는 사회학적 자기계발서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나도 상당히 공감했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작가는 본인은 투덜이라고 표현하는데, 투덜이가 아니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분노한 점은, 왜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비난받고 매장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소위 쌍팔년도라고 불리는 1980년대보다는 2018년이 남녀가 좀 더 평등해지고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았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내 글이나 이 책을 보고 "저게 뭔 개소리지?"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뤘고, 적어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문맹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올림픽을 2번이나 유치한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장애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부터 노키즈존, 그리고 과장해서는 군대의 나라라고 불리는 한국 사회의 구조들을 작가는 비판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각각 다르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평생 살아온 경험치로 봤을 때 예외라고 생각되면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문제다. 집단에서 불편한 일이면 나에게도 불편한 일이고, "거 시끄럽네. 남들은 가만히 있는데."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농담일 수 없는 차별적인 발언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농담인데 죽자 살자 달려드네라는 말을 많이 듣을 수 있는 사회이다.
모든 문제들을 나에게서 원인을 찾는 소위 '자존감 담론'에 대한 생각도 떠오른다. 작년에 읽었던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 대표적이다. 모든 화와 잡생각의 원인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이론들을 삶에서 실천한다면 대다수 스님이나 성직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사람이라면 자극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모든 개인들은 꿈과 삶의 목적을 설정하길 강요당하고, 꿈이 없다는 청년들을 언론과 기성세대들은 비난한다. 그것이 실패할 경우엔 열정과 패기가 부족해서라는 외부의 반응이나 혹은 스스로 자책한다. 그런 쳇바퀴 속에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든지, 아니면 이 쳇바퀴를 다른 쳇바퀴로 바꿔야 변화가 가능한지를 따져보기 어려울 수 있다.
p. 95 '오늘만' 성실한 이들이 '매일' 성실한 그들보다 더 부유하리라. 나보다 더 바삐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나보다 더 가난할 것이다. 그나마 나는 일주일에 '하루만' 시간을 허비하지만 매일 첫차를 타는 사람들은 어떨까? 첫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놀라운 풍경은 지난주의 그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내 앞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졸고 있다는 거다. 아마도 어제도 저 옷이었을 것이고 내일도 같은 옷을 입고 졸고 있을 게다. 첫차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첫차를 타야만 하는 형편이 있다. "첫차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의 발"일 뿐이다.
이 책을 읽고 함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다. '무지를 옹호하는 다양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로 거리를 두거나, 본인의 삶과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나라를 말아먹을 인물들에 투표하는 사람들은 괜찮은 것일까? 작가가 책에서 인용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문장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p. 271 "우리의 삶은 모두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좋아하든 안 하든 인지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나도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다름을 인정하고 불편한 것이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흑과 백, 자유민주주의와 빨갱이가 아닌 공존할 수 있는 세상. 더 이상 이런 종류들의 책들이 출간되고 논란에 오르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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