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쓰리 빌보드>는 지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깝게 연기상밖에(?) 받지 못한 작품입니다.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샘 락웰이 이 영화 덕에 각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영화 자체도 작품상이나 각본상 정도는 받았어야 한다는 극찬을 받고 있죠. 아마도 지난 1월 골든글로브에서 드라마부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은 탓에 아카데미에서는 상을 놓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각본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감독 마틴 맥도나가 직접 썼습니다. 마틴 맥도나는 앞서 베니스영화제 등 여러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적이 있는 뛰어난 이야기꾼입니다.
실제 이 영화 역시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스토리라인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단순한 소재에서 출발해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 그리고 영화과 끝난 뒤에도 많은 여운을 남기는 결말로 관객들을 이끕니다.
범인에 대한 복수심, 경찰에 대한 분노
7개월 전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경찰은 범인의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 해결은 희박해보입니다.
밀드레드는 상실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슬퍼하기보다는 화를 냅니다. 자기자신이 먼저 딸을 지키지 못했고 딸을 잃기 직전 함부로 말했다는 것에 자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범인에 대한 복수심과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분노로 대리되어 표출됩니다.
딸을 잃은 엄마는 없는 돈을 털어 미주리 에빙 지역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대형 광고판 3개를 1년 장기 임대합니다. 광고판은 빨갛게 칠해지고 경찰의 무능을 비난하는 세 개의 메시지가 올라갑니다.
RAPED WHILE DYING (내 딸이) 죽어가며 강간당했다.
AND STILL NOT ARRESTS? 그런데 아직 못 잡았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 어떻게 된 일인가, 윌러비 서장?
밀드레드가 내건 ‘쓰리 빌보드’는 브루스 웨인의 ‘배트 시그널’(배트맨을 부르는 때 켜는 조명)과 같은 상징성을 지닙니다.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멸시이자 불신이죠.
고담 씨티에서 배트맨은 무능한 경찰을 대신하는 영웅입니다. 밝은 세상을 대변하는 히어로가 아닌 어둠 속 다크나이트라 불리는 이유는 악을 응징하기 위해서라면 폭력과 불법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도 밀드레드는 배트맨과 다르지 않습니다.
밀드레드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에게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에빙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의 DNA를 검사해야 한다. 그래도 없으면 미국의 모든 남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남자들의 DNA를 검사해서라도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권에 대한 피해, 또 다른 불법은 안중에 없습니다. 밀드레드 입장에서 악은 악으로 응징해야 하고 이로 인한 피해는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트맨은 동경하면서 밀드레드는 불편한 이유
당연하게도 밀드레드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됩니다.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밀드레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그녀는 자신을 안 좋게 대하는 치과의사의 엄지 손가락에 구멍을 내고 (일순간의 오해로) 화염병을 던져 경찰서에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범인을 잡는 것과는 관련 없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폭력이 행사되며 관객들 역시 불편해집니다.
배트맨은 동경하고 칭송하면서 밀드레드에게는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수의 대상이 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밀드레드가 대립하는 에빙의 경찰은 무능할지는 몰라도 악하진 않습니다. 경찰서장 월러비는 성실한 인물입니다. 평이 좋고 존경 받으며 심지어 췌장암에 걸려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그가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에 “그러니까 (죽기 전에) 빨리 수사하라”고 재촉합니다.
부패가 아닌 무능을 탓하는 건 정당할 수는 있어도 정의롭지는 않아보이죠.
영화 후반후 밀드레드가 화합하는 대상은 경찰관 딕슨(샘 락웰)입니다. 여성이나 흑인, 난쟁이가 아니라 자신과 가장 격렬히 대립했던 백인 우월주의자를 택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이자 메시지입니다.
감독이 그녀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어쩌면 ‘절대선은 없다’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회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건 누구일까요? 법 질서이거나, 공권력이거나, 티 없이 깨끗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수많은 폭력을 행사한 밀드레드는 분명 깨끗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배트맨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히어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밀드레드와는 다르게 분명한 악당들만 상대하지만 악당을 폭력으로 처벌하는 건 정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배트맨은 정의로울까요? 그는 갈등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사는 다크나이트가 되길 스스로 선택합니다.
누구나 정의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 방식은 정의롭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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