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과 크립토커런시 : 티셔츠 프로파간다

in kr-newbie •  7 years ago  (edited)

프로파간다라고 일컬어지는 대중 선전 기법에는 가용한 모든 수단이 동원됩니다. 나치시대의 대중연설과 언론장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기법은 점차 교묘하게 매뉴얼화 되어 오늘 날까지 우리의 삶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TV, 그리고 인터넷으로 발전해온 전파향 대중 선전 기법과 함께, 좀 무식하고 거칠게 살아온 기법이 있었으니, 바로 포스터였습니다. 나치 시절의 포스터는 프로파간다의 호전성과 거리의 장소성을 함께 결합시켜 함축적인 과단성을 담아 냈습니다.

1930년대 이후 실크스크린 인쇄가 발달하고, 2차 대전이 끝나기 전후의 상황에서, 미군의 공식적인 속옷이었던 티셔츠는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군이 승리의 증표로 고향에 가져가면서 승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방향으로 해석될 수는 없겠습니다만, 좀 재밌게 해석해보자면, 나치의 대표적 시각적 프로파간다 매체였던 포스터를 미국의 속옷이 무찌르면서 티셔츠라는 새로운 프로파간다가 시작된 셈이죠.

이후, 티셔츠의 변천사는 60년 대 히피세대의 전쟁 반대 티셔츠를 거쳐 70년대의 체가바라의 초상과 롤링스톤즈의 모습을 박아넣은 패션 아이템으로 변모했습니다.밀튼 글레이저가 디자인한 ⟨아이러브뉴욕I❤️NY⟩ 로고 티셔츠가 나온 시기도 1975년입니다.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섹스피스톨즈를 통해 자행한 안티패션의 서막이 열립니다. 그리고 대망의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생산과 인쇄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티셔츠 소비 시장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남루한 티셔츠를 입은 너바나가 그들의 헤비뮤직과 그런지 패션을 통해 완전히 세상을 집어삼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나이키 같은 대규모 패션브랜드들이 그래픽 티셔츠를 통해 ⟨브랜드⟩라는 자신들의 표상을 만들어냅니다.

반골 기질로 똘똘 뭉친 세명이 만든 밴드에서부터 불세출의 농구플레이어가 선전하는 스포츠 브랜드까지, 자신들의 메세지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 중에 티셔츠는 퍽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셈입니다.

그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상화폐의 세계에서 티셔츠는 어떻게 활용되는지 한번 보죠.


그림1. 다큐멘터리 비트코인가스펠에서의 로저비어 / 그림2. 한국채널 인터뷰의 ⟨₿CH PLS⟩티셔츠를 입은 로저비어

로저비어는 과거, 정치적 액티비스트로서 징역을 산 경험자 답게, 티셔츠를 이용한 프로파간다를 적극 활용합니다. 작년에 있었던 한국의 인터뷰에서도 비트코인캐시의 티셔츠를 입었었죠. 자신의 주짓수 도복에도 비트코인 로고를 누비쳐서 입고 다닙니다. (- 정확히는 bitchain.info의 로고입니다. 지금 쯤은 BCH를 상징하는 무엇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림3. 서울에서 열린 이더리움 밋업에서의 비탈릭 (출처: 연합뉴스)

개발자 패션계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비탈릭입니다. 저 아스타랄한 광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겁니까. 무민유니콘과 이더리움이라니요. 삼선 쓰레빠만 갖추면 완벽합니다. 네. 제가 저 ⟨힙⟩함 때문에 이더리움을 구매했다고 하면 믿으실는지요.


그림4.위키리크스 10주년 기념 발표에서 ⟨truth⟩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줄리안 어산지

가상화폐계의 인물은 아닙니다만, 줄리안 어산지도 있습니다. 그의 패션 센스 또한 명성에 걸맞게 유명합니다. 패션을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함은 본능적으로 시의적절한 메세지를 선택합니다. 한편,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그를 위한 헌정 제품을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림5.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줄리안 어산지 헌정 티셔츠

섹스피스톨즈를 탄생 시켰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손수 자신이 만든 ⟨내가 줄리안 어산지다.I am Julian Assange.⟩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라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컨셉프로덕트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디도는 위키리크스 프로젝트를 위해 ⟨Julian Bradley You Me⟩라는 티셔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림6. Julian Bradley You Me 티셔츠 (출처: http://bydiddo.com)

⟨Julian Bradley You Me⟩라는 티셔츠는 네덜란드의 그래픽디자인스튜디오 ⟨익스퍼리멘탈제트셋Experimental Jetset⟩이 2001년에 작업한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후, 그 당시 복역 중이던 브래들리 매닝의 이름에 가로줄을 그어 완성했습니다.


그림7. 익스퍼리멘탈제트셋이 만든 ⟨John Paul Ringo George⟩티셔츠와 변형 (출처: https://www.experimentaljetset.nl)

번외로, 제트익스퍼리멘탈제트셋은 자신들이 만든 ⟨John Paul Ringo George⟩티셔츠의 타이포그라픽 폼을 사람들이 그대로 가져다가 활용하는 형식을 가르켜 스스로 ⟨티셔츠주의T-Shirtism⟩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2차 대전 승리의 상징에서 히피세대의 반문화운동을 거쳐 세상과 마주하게 된 티셔츠는 8,90년 대를 거치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관광상품으로 그리고 우상에 대한 열망 혹은, 세상에 마주한 자신의 신념으로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이 상업화에 대한 저항을 내세웠지만, 결국 메인스트림에 동화 되었듯이, 비트코인을 위시한 크립토커런시들 역시 마찬가지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탈중앙화를 모토로 삼은 사토시⟨들⟩의 꿈은 정부와 시장으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의 테두리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선구자들, 새로운 기회에 배팅하며 수익을 꿈꾸는 투자자들과 세력, 헤게모니를 놓치고 싶지 않은 기존 시스템들, 이 모두의 유토피아를 염원하는 메세지가 담긴 티셔츠 한 장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뜬금없이 커트코베인의 사진 한 장을 올리며 끝맺겠습니다. bitcoin is dead.




스티밋을 통해서, 잘 아는 분야인 브랜딩 전반과 디자인을, 그리고 잘 모르는 분야인 경제와 암호화폐를 서로 비롯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일종의 반반 전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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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커트의 얼굴이 반갑고, 되는대로 주워 입은 것 같은 비탈릭의 엄청난 포스에 감탄하고 갑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저작권 관련 글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