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처럼 - SWEDEN] 부폐용 깃털이 필요합니다 - 실야 라인 크루즈 Silja line Cruise

in kr-newbie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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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와 스웨덴, 투르쿠와 스톡홀름의 시차는 한 시간이다.

그래서 그 둘을 잇는 크루즈 안에는 두개의 시각이 존재한다.



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침 두개와 분침 하나를 가진 시계를 보는 일은 상당히 생경한 경험이다. 핀란드만 시간대가 다르고, 스톡홀름에 도착한 이후로 이동한 브뤼셀, 앤드퉈프,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코펜하겐의 시간은 모두 같이 흐른다. 시간에 대해서는 생각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 왜...?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12몽키즈를 한 번 더 보는 것 같은 난처함을 겪어야 하니까. 적당히 과식해서 도저히 누워 잠들 수가 없을 때에는 해 볼만 하겠지만…

무민월드에서 투르쿠로 돌아와 스톡홀름으로 이동하는 실야라인 크루즈를 타기 위해 시간보다 일찍 텅 빈 터미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말고 또 한 팀의 일찍 온 손님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들은 무민월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먼저 가버린 스웨덴 노부부였다. 결국 무민월드를 못보고 돌아가시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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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시간 때우기를 하며 앉아 있노라니 하나 둘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인파들이 터미널을 채우기 시작했다. 터미널 입구 어딘가에 있는 거대한 냄비에서 팝콘처럼 파바바밧 생산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 도시의 어디에 꽁꽁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터미널 안에 가득 들어차자, 거대한 건물 세 네 개 정도를 이어 놓은 것 같은 배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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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을 토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빨아들인 거대한 탈것은 비바람으로 파도가 넘실대는 날씨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무겁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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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에 들어갔더니 올드레이디 두 분이 이미 1층 침대 양쪽을 장악하고 누워계신다. 2층을 선호하지 않는 우리의 아차 싶은 표정을 포착하셨는지

"우린 나이가 많고 너흰 젊으니까 너희가 2층 써. 오케이?"

하고 선빵을 날리신다. 어쩌겠는가. 선착순이며 나이며 공력이며 모두 뒤쳐지니 2층으로 썩 물러나는 수 밖에.

일단 선내를 슬슬 구경하고 다녔다. 배 안 이라기 보다는 호텔 리조트 같은 곳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여러 개의 음식점, bar, 쇼핑몰, 활발히 오가는 투숙객들,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엘리베이터가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건물을 가장한 배 안에 들어차있다.

그 중 우리의 눈을 확 잡아챈 것은 면세점. 이 나라도 저 나라도 아닌 바다 위의 면세점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각종 화장품과 의류, 잡화를 파는 그야 말로 당당한 면세점이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 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가 오나 해가 비치나 희한하게 건조한 그곳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는 목마름으로 수분을 갈구하는 피부에게 무언가를 양보해보기 위해 화장품 코너를 굶주린 늑대마냥 쏘다녔다. 그리하여 발견한 핀란드 고유브랜드 루메네의 저렴하고 효과적인 수분크림을 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었다. 24시간동안 깊은 수분공급을 해주겠노라고 자신만만하게 패키지에 써 놓았기 때문에 그를 믿어보기로 했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들의 건조함에는 그들의 수분충전방식이 필요한 모양이다.

전날의 유령도시에서 강요에 의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나를 손님으로 맞은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하는 패기 만만한 마음가짐으로 디너부폐 식당을 찾았더니 일찍 보딩패스를 받아서인지 배의 가장 앞부분, 백야의 바다를 뚫고 전진하는 희망찬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때때로 보이는 작은 섬을 짐짓 근엄하게 슬쩍 피해가며 큰 배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어가며 전진하느라 장엄한 소리가 난다는데 지금은 그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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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음식들과 무제한 맥주를 섭취하며 멈춰버린 지각에 양분을 제공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토록 호사스러운 일이 언제 또 있을까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 이리도 거대한 크루즈의 선두에 앉아 멋들어진 부폐를 즐기게 되다니 말이다. 허나 그 누구보다도 많이 먹어버리겠다는 나의 욕망과 포부는 우리 앞의 한 무리의 가족을 인지하는 순간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그 풍체로도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는, 부부와 세 명의 아들로 구성된 그들의 부폐 이용 방식에 스스로 패배를 선언해야 했다. 하나의 아이템이 한 접시를 가득 채우고, 그렇게 부폐의 모든 음식들이 번갈아 접시를 채우는 그 박력 넘치는 섭취방식을 내 감히 어찌... 그래도 최선을 다한 후 캐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아에서 폭식으로 단숨에 건너뛴 간극을 이겨내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리고는 다음날 점심때 즈음이 되어서야 전날의 부폐가 꽤나 훌륭했었노라고 논할 수 있었다.

원리 부폐라는 것이 스웨덴에서 시작된 음식문화다. 바이킹들은 오랜 기간 바다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신선한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어 했다. 그래서 널찍한 상 위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차려놓고 식성껏 갖다먹는 패기 넘치는 식사법을 즐겼던 것이다. 이런 스칸디나비아식 상차림을 ‘스뫼르고스보드(Smorgasbord)'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폐의 기원이 된 것이다.

크루즈가 제공한 부폐에는 각종 북유럽식 딱딱하고 담백한 빵과 버터들, 적당한 종류의 샐러드채소와 소스들, 어떤 짐승의 무슨 부위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맛이 좋은 매우 여러 종류의 육류요리들, 생선요리와 생선절임, 가벼운 멕시칸요리(또띠아와 나초와 칠리와 그 친구들인 각종 소스류), 조류 요리들, 몇 가지의 면요리... 열거하자면 너무 많고 아무튼 이것 저것 있을 것이 촘촘히 다 있었다. 그리고 무한정 마실 수 있는 맥주와 와인과 음료들과 커피,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썩 괜찮은 푸딩류와 케잌들이 준비되어있었다. 그것들을 거의 빠짐없이 하나씩은 다 먹어보았으니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옛 유럽 귀족들이 먹고 토하고 또 먹기 위해 구토유발용 깃털을 지참했다는 글을 읽고 혀를 찼던 적이 있는데 부폐만 보면 뇌세포는 커녕 뇌가 통째로 없는 양 흥분하는 내가 그들을 흉볼 자격 따위 없었던 것이다. 바이킹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그렇게 핀란드발 스웨덴행 크루즈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어떤 것을 파괴당했다.

그 하나는
제정신을 차리고 크루즈 안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을 정도의 포만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 멋진 남자와 함께해야 할 소박한 꿈이었다.

수세미양이 그랬다.

“나 이제 한강 유람선이 하찮아져서 못 탈 것 같은데 어쩌지?”


SWEDEN

우월한 자존심

북유럽처럼


본 포스팅은 2013년 출판된 북유럽처럼(절판)의 작가 중 한 명이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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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실자라인 탔을때 웰컴 연주가 있었어요 매우 흥겨웠어요

ㅎㅎㅎ 흥겨운 크루즈여행 또 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