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처럼 놀았다. 외식하고 키즈 카페도 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피자몰’이라는 곳이다. 갖가지 피자가 나오는 샐러드바다. 그곳엔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 망고가 있고, 초콜릿 소스에 찍어 먹는 마시멜로우도 있다. 여러 종류의 파스타와 감자튀김, 양송이 스프 등 유치원생과 어린이집 재원생의 입맛을 사로잡는 치명적인 음식들도 있다.
금요일도 아닌데 갑자기 외식을 한 이유는 7살 앤 때문이다. 하원할 때 평소와 다르게 좀 쳐져 보여서 기분을 좀 띄우려고 ‘피자몰’ 얘길 꺼낸 순간, 외식이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식사 후 같은 건물에 있는 타요 키즈 카페를 들르는 게 가끔 치르는 우리들의 호사였기에 밥 먹고 키즈 카페로 올라간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이들은 3시간 정도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는 동안, 아내와 나에겐 틈이라는 게 주어져서 우린 쉬엄쉬엄 웹서핑을 즐기다 책을 읽었다.
올해 5월에 나온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에세이 <생의 실루엣>을 읽었다.
미야모토 테루를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진행하던 팟캐스트 ‘빨간 책방’을 통해서였다. 이동진 평론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을 소개했을 당시 그 소설은 한국에서 절판된 상태였다. ‘빨간 책방’의 파급력이 커서인지 그 방송을 들은 많은 이들이 <환상의 빛> 중고책을 구하려고 노력했고, 그 흐름을 인지한 출판사에서 재발간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 역시 그 방송을 통해 <환상의 빛>을 알게 됐고, 재발간이 된 직후에 읽었다.
이동진 평론가처럼 미야모토 테루의 감성과 문체에 흠뻑 빠져버렸다. 마침 그 책을 읽을 때 오키나와 여행 중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가족들이 잠든 밤, 난 호텔방 구석에서 스탠드를 켜고 그 책을 꺼내 들곤 했다. 일본의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서 바다가 배경으로 나오는 일본 소설을 읽는 느낌은, 가장 어울리는 소스를 뿌린 샐러드를 먹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오키나와 바다의 일렁임이 보일 때면, 소설속에 나오는 바다를 직접 바라보는 주인공의 눈을 가진 기분이었다. 아직도 가장 적절한 곳에서 좋은 책과 작가를 발견한,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라 기억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야모토 테루의 다음 책을 찾아 읽었다. 나오키상을 받은 그의 데뷔작인 <흙탕물 강>과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반딧불 강>이 실린 작품집이었다. 어떤 작가의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그의 전작을 찾아 읽었는데, 더 좋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거기다, 그다음에 읽은 작품도 너무 좋을 확률은? 그다음 책으로 <금수>를 연달아 읽고서 난, 이 소설가의 작품을 다 모아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야모토 테루는 폴 오스터와 더불어 내가 전작을 모으는 작가다. 예전에 나온 그의 책은 대체로 절판된 경우가 많아서 중고책으로 구입해야 했다. 손쉽게 검색해서 사버리는 대신, 중고책방을 갈 때마다 그의 책이 있는지를 살피며 천천히 모았다. 그건 내게 즐거운 의식이었다.
미야모토 테루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엄청난 팬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단단하고 충성도 높은 팬이 꽤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의 에세이가 한 달 만에 중쇄를 찍은 걸 보면.
<생의 실루엣>에서 테루는 소설에서처럼 담백한 문체로 자신의 삶을 기술한다. 비 오는 날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읽은 소설이 너무 재미없어서, 자신이 쓰면 이것보단 재밌는 소설을 하룻밤에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근데 그 당시 그는 지독한 공황 장애에 사로잡혀 있었고, 직장을 오가던 전철에서 자주 발병해서 직장 생활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뒷얘기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폐결핵을 앓게 됐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가 데뷔 후 <환상의 빛>을 마무리한 후에야 폐결핵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일화나, 본격적으로 공황 장애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정신과에 간 것이 <금수>를 절반쯤 썼을 때였다는 일화는 그의 팬의 입장에선 흥미롭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난, 그의 글이 주는 인상이 강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삶에서 실제로 겪는다면 정말 지독할 일들을 중심 사건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이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깜짝 놀랄 일들을 호들갑 떨면서, 극적인 장치로 감정을 고조시키면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담백한 문체로 담담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 일은 겪는 거잖아? 하는 태도로. 그 덕에 읽는 이들은 감정의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다.
죽을 것 같던 공황 장애의 경험이나, 수많은 죽음이 발생한 대지진을 겪은 탓인지 몰라도, 그의 소설엔 누군가의 ‘죽음’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그리고 에세이에서도 누군가의 죽음이 많이 언급된다. 그런 죽음들을 그는 일상의 일부로 바라보게 만든다. 특별하거나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내용과 글의 표정이 일으키는 낙차에서 어떤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의 책은 문체와 내용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소 같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재독이 좋다지만, 내 경우에,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수>는 2번쯤,. <환상의 빛>는 3번쯤, <흙탕물강・반딧불강>은 그 이상으로 여러 번 읽은 것 같다. 읽을 때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아름다운 걸 볼 때 느끼는 경이감이다. 글로 구질구질한 삶, 어떤 사건 이후의 파장을 그렸는데 왜 아름답지? 하게 된다.
아이들이 키즈 카페를 뛰어다니는 동안, 미야모토 테루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저 흘릴 일이 아니었다. 뭔가 설명이 필요한 일이다. 특별하고 호젓한 시간이 아니어도, 일상의 러시아워가 펼쳐지는 그 중심에서 얼마든지 특별한 시간의 구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그걸 확인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노는데 온 힘을 다 써버렸는지, 집에 와서 씻고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미야모토 테루에 진심인 나처럼, 아이들도 키즈 카페에 진심이었다. 오늘 우리는 애나 어른이나 진심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p.s
문득, 이곳에 쓰고 싶었어요.
늘 향수가 있는 글집입니다.
조금 더 자주 들러 일상을 끄적이려고요.
늘 이곳에서 만난 정다운 이들의 안녕을 빌고 있습니다.
자주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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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리님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계시네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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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남아있는 사람도 보팅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라고요? 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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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점님 반갑습니다^^ 기억해주시는 것으로도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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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악!!!!!!!!! 너무 반가워서 데구루루 구릅니다~ ㅎㅎ 잘 지내시는 거죠? 자주 오세요. ^^
생의 실루엣은 이곳에서 리뷰를 보고 기억하고 있던 작품입니다. 소설을 썼던 작가가 처음 쓴 에세이라고 해서 궁금했었어요.
솔메님께서 전작을 모으는 작가라고 하시니 더 궁금해집니다. ^^ 지독한 일들을 어떻게 덤덤하게 써 내려 걌을지 읽고 싶어지네요. 소설을 두세 번 여러번 읽으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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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님이라 데구루루 잘 구르실..ㅋㅋ
예전처럼 상주하듯 하진 못해도 지금보단 자주 얼굴을 디밀려고요ㅎ
미야모토 테루는 꽤 팬이 많을 거예요.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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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오늘 솔메님 생각했는데 솔메님이 오시다니 : )
미야모토 테루님 책을 좀 읽어봐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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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님의 생각 바구니에 저도 오늘 담겨있었다니 영광이네요^^ 아직 안 보셨다면 <환상의 빛> <반딧불강><금수> 다 좋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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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지만 오늘 반가운 이름을 보니 봄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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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얀님이 따뜻해서 봄처럼 느껴지시는 거지요. 반겨주셔서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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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sns에 올려주시는 소식 잘 보고 있답니다. 앤과 쑥쑥이의 유쾌한 에너지에 감탄하면서요. 솔메님도 오랜만에 운동 다시 시작하셨다고요. 건강한 추석 보내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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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과 쑥쑥이를 귀엽게 봐주는 어른이 있어서 더 잘 자랄 거 같아요ㅎ 이제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해야합니다ㅋ 연휴 마무리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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