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당 미스터리: 어느철학과 대학원 생의 수기#011

in kr-philosophy •  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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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극당 근처에 있는 동국대학교를 다녔다. 학교 가는 길에 지하철역을 나오면 보이는 태극당 건물은 리모델링하기 전까지 늘 미스터리였다. 1층에서 영업하는 태극당을 빼고 나머지 층의 창은 간판도 없이 가려져 있었고 위층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입구나 계단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 용도를 알아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철학과 강사는 태극당 건물은 안전 가옥이고 이를 속이기 위해 1층에서 영업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태극당이 개수하더니 이 층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그런데 호기심을 잃어버려서인지 올라가 보지 않다가 오늘 시끄러운 1층을 피하기 위해 올라가 봤다.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태극당 건물에 남아있던 오래된 건축 자재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다. 계단을 다 올라가서 거울 앞에 놓인 긴 탁자를 만났다. 2층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아주 기묘하게 느껴졌다. 사실 거울이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여긴 뭔데 이렇게 긴 탁자가 하나 놓여있나 싶었다. 내가 2층을 신비롭게 생각한 기대에 부응하는 실내라고 생각했다. 물론 거울이 놓여있는 것을 알고는 여느 커피집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차라리 태극당이 개수하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내 손자를 이끌고 이 근처를 지난다 치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서울 한복판에 도깨비집 같은 신비한 장소가 있다고 말할 거 같다. 만약에 태극당 건물이 개수하지 않고 사라졌으면 더 좋았을 거다. 손자가 세상에 도깨비집은 없다고 확인해보자고 말할 때 내가 본 그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영화나 소설을 볼 때, 두 연인이 엇갈리는 장면이라도 나올라치면 그렇게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연인이 서로 엇갈린 것을 모른 채로 상대를 원망하며 슬퍼할 때면 내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나에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 아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태극당 2층이 나에게 드러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소설 속의 연인이 자신들이 엇갈렸다는 것을 운명같이 알아차리고 재회했다 해도, 아련한 기억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좋았을 상황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재미있게 읽던 소설이 몇 장 남지 않은 것이 느껴질 때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은 욕망을 참아가며 천천히 넘기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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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다음 한국 방문에 동국대에 들릴텐데 꼭 가보겠습니다.

모나카가 맛있답니다!

모나카 잊지 않겠습니다.

중간에 거울이 있는 걸 모르고 봤을 땐
정말 기~~이인 탁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역시 모든 걸 다 아는게 좋은 건 아닌 듯 해요 :(

맞아요. 뭐든 적당한게 좋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