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텍사스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 날은 어깨만 간신히 젖힐 가랑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에세이 시험을 보던 중 창밖을 보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선 엄청난 강풍이 불고 있었다. 양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둘레의 나무들이 반쯤 꺾여 휘날리고 온갖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은 교실의 창문을 세차게 때렸다. 학생들은 이것이 토네이도 아닐까 싶은 마음에 술렁거렸다. 그러나 그곳에서 단 한 사람, 선생님만큼은 무언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 듯 바깥 걱정 말고 시험 보라고 우리들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나뭇가지가 창문을 때리는 것을 애써 무시한 채 시험을 본지 십오분쯤 되었을 때 바깥에선 지금까지와는 종류가 다른 귀를 찢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학교 안전관리 시스템에서 내리는 토네이도 대피경보였다.'
선생님은 그 순간 벽에 걸려있는 비상 손전등을 꺼내 들고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짐을 모두 두고 서두르지 말고 제 뒤를 따라 나오세요" 라는 말을 고함치듯 반복했다. 시험지는 그 순간 내동댕이쳐졌고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나갔다. 그와 동시에 학교 전체는 전기사고를 막기 위해 비상정전되었고, 바닥엔 비상문 안내용 램프가 들어왔다. 각 교실에서 똑같은 상황에 일체의 지연도 없이 모두가 비상문으로 줄을 지어 나왔다. 간혹 처음 보는 토네이도가 신기한 듯 동영상을 찍는 철없는 유학생은 있었지만 아무도 뛰지 않고 교사의 지도에 따라 100m 정도 거리의 대피소가 있는 옆 캠퍼스로 이동했다. 대피소는 지하였다. 두께가 족히 2~30cm는 돼 보이는 빨간 문을 열고 들어간 지하실은 모두가 대피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교사들은 대피소에 들어오고 난 뒤에야 질문을 받으며 찬찬히 학생들을 진정시켰고 문을 지키는 안전요원 한 분은 안전 관리센터와 무전하며 상황을 지켜봤고, 30분 뒤 토네이도가 지나갔단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대피소를 나올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토네이도는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가지 않고 약 2~3km 떨어진 곳에서 지나갔다고 한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신기했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세월호 사고라는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선장은 혼자 도망가고, 해경은 제대로 된 대피전달사항을 내리지 못했으며 학생들은 객실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났다. 난 과정에서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는 만큼 여유로운 대피를 해본 경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집에 도착한 이후 나는 이 대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차근차근 따져봤다.
- 확실한 대피경보가 내려지기 전까지 수업을 진행하는 대피 가이드라인에 대한 교사의 신뢰
- 대피경보 직후 신속한 비상정전
- 간결히 필요한 말만 크게 반복해 전달하며 미리 훈련해둔 최단경로로 통솔
- 국가 안전 관리센터와 빠른 정보교환
-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전 고지 없는 대피 훈련
모두 정확히 가이드라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가이드라인은 우리를 위험에서 정말 빨리 대피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 속도와 안정감은 주위에서 두려움보다 신기함을 더 표출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우리의 사고와는 완전히 질이 다른 대처였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지금, 우리는 국가적으로 큰 아픔을 겪었음에도 우리는 또 다른 해상교통사고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했다. 현 야당은 세월호 때와 똑같이 해상교통사고가 난 동안 정부는 뭐했냐고 공격하는 얼간이 짓을 따라 하고 있고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전 야당, 현 정부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고 책임이라면서 하는 것 없이 언론플레이에 바빴다. 이 과정에서 또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었고 어선들과 밧줄에 얽힌 구조정은 출동이 늦어졌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때도 이번 사고도 정부가 할 일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지 사고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이 모든 것의 책임은 대비되지 않은 해경과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두지 않은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청와대로 몰아가는 정치공세를 펼치다 취임 후에는 대처 가이드라인과 훈련을 점검하지 않은 현 대통령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큰 사고를 겪고도 대처 훈련 및 가이드라인 개선에는 진전이 없고 이 사고 또한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의 필요성이라고 말하는 꼴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3년 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던 어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작년 말, 분노에 찬 상태로 썼던 글입니다.
그런데, 소방 점검을 지시해도 자율 점검하면서 비상구 앞에는 물건을 쌓아두고.. 그런걸 일일이 점검하기에는 소방인력도 부족하고.. 그 인력 확충에는 죽어라 반대하면서 일 터지면 욕만하는 정치인들에.. 총체적 난구이라고 보입니다. 독재는 나쁘지만 이 나라는 어쩌면 '올바른 독재자'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어떤 독재자도 올바를 수 없다는게 딜레마이긴 하지요. 그래서 정치에는 니체의 말처럼 초인이 필요한데, 초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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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전지전능하고 개인의 욕심이
없다면 훌륭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ㅎㅎ
안전점검을 했음에도 아파트와 여타 건물 비상 대피 계단에 짐을 쌓아두는 몰상식한 사람들의 인식개선이 가장 효율적이겠지만, 국가적으로도 안전훈련을
의제로 다루지 않는 마당에 국민에게 막연히 인식개선을 강요하기도 어렵습니다.
국가적인 가이드라인과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기적인 탈출 훈련과 피드백, 피드백 이행이 반복되다보면 대처할 수 없는 사고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당장 제가 겪었던 대피상황 속에서 출동한 공무원은 한명도 없었음에도 현장의 훈련된 사람들이 완벽하게 인솔해냈습니다. 전문인력을 아무리 늘려도 사고가 일어날 때 곧바로 도착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전문인력이 출동하기 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현장 직원들에게 교육과 주기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전, 대피와 통솔 상황을 직접 겪어보는 것 만으로도 전문 인력이 출동하기 전까지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증원 이후 전문인력 개개인에게 충분한 만큼의 장비를 제공하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소방관이라면 사비로 구매한다는 소방장갑 같은 것은 마땅히 국가가 지원해줘야 함에도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훌륭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인원만 늘어난다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가이드라인 정비, 구조 장비 개선, 주기적 훈련 등 비용적으로 더 효율적인 정책을 먼저 이행한뒤에도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면, 그땐 반드시 공무원 증원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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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 upvote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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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이지요...
사후약방문...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뒷북의 화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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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에 만큼은 예산과 투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 따라하는거를 좋아한다면, 안전 관리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따라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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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안전대책은 정말 선진국에게
배울점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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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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