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재(로자) _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
노동•정치•사람 청년사업팀은 팀 서울 신지예 선본을 지지하며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노동•정치•사람에 처음 가입했을 때가 생각난다. ‘사람을 아끼고 노동을 존중하는 정치로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는 창립 선언문의 구호는 가슴을 뛰게 했다. 그리고 팀 서울의 구호를 본다. ‘기나긴 폭력의 밤을 끝내자.’ 나는 여기에 다시금 가슴이 울렸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민주주의의 요구, 평등에의 요구가 들끓는 분노의 물결로 일어나는 순간이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 출신의 전임 시장은 권력과 젠더 위계를 동원해 성폭력을 저지르고 최악의 가해 방식으로 자살을 택했다. 거대한 남성 권력 카르텔과 이것이 야기하는 억압의 동학이 시민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전임 시장이 속해 있던 민주당도,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 요구를 묵살해오던 반동적 정치구성체의 중심에 서 있는 국민의 힘도 사회적 권력과 폭력에의 문제제기에 응답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 신지예와 팀 서울 선본이 있다. 신지예는 민주주의의 위기, 불평등의 위기를 직시하는 정치인이다. 남한 사회 민주주의의 급진화, 다원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전망하는 정치인이다. 민주당 정치로 수렴되는 기존의 ‘386’ 세대는 남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에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자임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의 권력을 독점하는 기성 세력이 되었다. 예컨대 위성정당 사태에서 시민사회는 거대정당들의 후보선출과정이 보여주는 비민주성을 목격했다. 한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의 성폭력 사건은 민주화 세력을 표방한 권력자들이 가부장 권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위와 같은 경향들은 민주주의자들과 여성주의자들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내부 성폭력과 비민주주의를 용인하고 은폐해 온 민주화 세대 가부장 정치인들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다. 신지예는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정치 집단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 상황에서, 페미니즘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력한 정당과 여성 정치세력화가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신지예의 ‘여성 정치세력화’가 소위 ‘정체성 정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 사회의 성숙 속에서 추동된 신사회운동의 물결은 다양한 정체성과 의제, 사회적 적대들을 매개로 다극화된 사회 운동의 ‘부문’들을 만들어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고립된 부문운동, 정체성 운동의 한계는 명확했다. 다극화된 사회 운동들은 “국가의 권력 논리와 시장경제의 화폐 논리가 체계의 경계를 넘어 생활세계(시민사회)로 확장되어 들어오는” 현상에 의해 위협받는다. 시민사회와 생활세계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신사회운동의 의제와 요구 역시도 물화되고 상품화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경제적 결정을 매개하는 것은 자본이므로, 짐짓 해방적으로 여겨지는 신사회운동 담론 역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물화되어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며, 지배계급과 자본의 수요를 넘어선 진보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적들은 이 지점을 착실하게 이용해 왔다. 지배계급과 결합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구성체와 우파 포퓰리즘 정치기획은 다극화된 주체들의 요구들을 적대하게 만드는 것을 공통된 실천으로 드러낸다, 예컨대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민자들은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는 주범이다”, “이슬람 출신 난민들이 여성대상범죄의 주범이다”와 같은 선동 구호들을 이러한 실천의 구체적 예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자유를 통해 자본의 시장권력을 강화하고 이윤을 증대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논리와 정책은 시장경쟁을 통해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과 시민의 내적인 경쟁을 일상화해 개인화와 균열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이는 한편으로 여러 부문의 사회운동들이 각 부문에서의 실천을 공통되게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구성체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축을 중심으로 접합하여 사회운동의 ‘공동전선’을 구성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지예는, 이를 위한 ‘생산적 연대’를 제안하는 정치인이다.
신지예는 관성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후보단일화 중심의 ‘진보정당 통합론’, ‘진보운동 통합론’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대신 정책과 인사 그리고 의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연합을 통해, 노선과 이념이 다른 이질적인 진보정치 집단 사이의 연대, 여성과 민주주의자들 그리고 좌파들 사이의 발전적인 연대를 꾀한다. 팀 서울은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팀 서울은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를 중심으로 여러 의제운동들의 당사자, 전문가들이 결합한 선거 운동 프로젝트다. 이가현 성평등 부시장 후보, 소란 기후위기 생태 전환 부시장 후보, 이선희 여성 안전 부시장 후보, 공기 살림경제 부시장 후보, 은하선 성소수자 부시장 후보, 류소연 문화예술 부시장 후보가 함께 한다. 이들은 담론별, 부문별로 결합해서 ‘등가 사슬’을 이루고, 총체적인 정치 기획을 제안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파편화된 시민사회의 주장들을 엮어내고 정치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의제들과 다원적인 요구들이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영역 전반에서 지배 형태에 대항하는 등가 사슬을 형성하지 못한 채 기존처럼 ‘집회가 열리면 깃발이나 들어주러 가는’ 기계적이고 관성적인 연대의 형태에 머무른다면, 각각의 의제운동들은 고립된 위치에서 방어투쟁에 급급하다 고사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의제 운동들과 경합하는 공동의 적을 설정하고, 이것에 대항하는 축을 중심으로 여러 부문의 요구들을 총체적인 동력으로 구성하기 위한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팀 서울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사회 속에 펼쳐질 전선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는 지배계급과 결탁해 남한의 민주주의 지형 그리고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위협해오던 양당 정치의 구조다. 이 축을 중심으로 제도권 정치의 호명을 받지 못했던, 제도권 정치로부터 배제되었던 힘 없는 자들이 손을 맞잡고 모이고 있다. 신지예는 자신을 김용균으로, 변희수로,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로, 여성으로,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명들로 호명하며 “서울이라는 집에서 쫓겨난 이들, 지금까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우리들이 팀서울이라는 울타리에서 이제 서로를 호명합시다. 그리고 서울에 우리의 자리를 만듭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연대의 불씨를 확인한다.
이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표류해오던 시민사회와 사회주의 정당 운동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절망과 냉소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우리 앞에 주어진 것은 거대한 역사적 갈림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로의 전진이냐, 케케묵은 87년 체제의 망령들이 드리운 과거와 야만으로의 회귀냐를 선택해야 한다. 신지예와 팀 서울에게 투표하자. 신지예를 남한 시민사회와 정치 지형의 근본적 재구성을 가리키는 횃불로 만들어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