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엇이 지역정당 설립을 가로막는가? ― 정당법② : 돈과 사람이 없다면 당 만들 생각도 말라!

in kr-politic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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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

현행 정당법 제3조의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 만드는 정당은 반드시 중앙당을 두어야 하며 또한 그 중앙당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정당은 등록이 거부된다. 서울에 당원이 단 한 명도 없더라도 중앙당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한다.

정당법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나라가 한국의 정당법과 유사한 정당법을 가지고 있다. 항간에는 OECD 국가 중 정당법이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말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독일과 스페인에도 정당법이 있으며, 상당한 나라들이 선거법 등에서 정당을 규율하거나 결사체 또는 법인으로 정당을 다루기도 한다. 문제는 현행 한국의 정당법에서와 같이 강력한 제한을 둔 나라들이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 중앙당 수도 소재 규정부터 보자. 중앙당의 소재지를 특정한 지역 내로 한정한 정당법은 한국 외에도 존재한다. 카자흐스탄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내용이 다르다. 카자흐스탄 정당법 제5조 제5항은 “정당의 최고기구와 조직부서는 공화국 영토 내에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정당의 중앙당이 외국에 있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비슷한 예가 캄보디아이다. 캄보디아 정당법 제3조는 “모든 정당은 중앙당사를 프놈펜 또는 캄보디아 왕국의 주와 지방자치체에 두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두 경우 모두 중앙당이 국내에 있어야 한다는 말일 뿐이다. 그 어떤 나라의 정당법도 중앙당을 수도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한국이 유일하다.

OECD 국가 중 체계적인 정당법을 두었다고 평가받는 독일과 스페인 역시 중앙당을 수도에 둬야 한다는 제한은 없다. 독일의 모든 정당의 중앙당이 다 베를린에 몰려 있다거나 스페인의 모든 정당 중앙당이 다 마드리드에 몰려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거야말로 기괴하지 않은가? 분권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나라 모두 연방제 국가니 한국과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권형 지방자치를 과제로 삼은 한국이 정당 구성에 있어서 굳이 스페인이나 독일과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모든 정당의 중앙당이 서울에 몰려 있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모두 44개에 달한다. 서울에 44개 정당의 중앙당이 몰려 있다는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이처럼 기괴한 구조는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부터 비롯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혁명공약이었던 권력의 민간이양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민주정부를 전복했다는 근원적 한계가 있는 입장에서 더욱 강력한 비판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여기서 나온 묘수가 바로 스스로 민간인이 되는 것, 즉 군복을 벗는 것이었다. 쿠데타 정권은 1962년에 헌법개정을 단행한다. 그리고 개정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해야 했다.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전역한 박정희는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인 1963년 11월 26일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했다.

정당법이 바로 이때 등장한다. 닥쳐올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해 쿠데타 세력은 공화당을 창당했다. 당연히 총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경쟁자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중앙행정기관에서 관리하기 힘든 지역 연고의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일을 최대한 억제해야만 했다. 또한 쿠데타 이전에 활동하던 유수의 정치인들의 발목을 잡아둘 필요도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기획된 정당법은 지역에 기반을 두었거나 재정적으로 지구당의 확보가 어렵거나 당원의 확대가 곤란한 조직은 아예 창당을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규제들로 채워졌다. 그 대표적인 규제조항이 바로 중앙당의 수도설치 강제조항이다.

중앙당을 서울에만 둘 수 있다는 강제규정은 지방 차원의 정치결사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동시에 중앙당을 기준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지역조직에도 강한 제한을 두었다. 그 결과 자원이 부족한 정치조직들은 독자적인 정당의 창당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공화당은 제6대 총선에서 175석 의석 중 110석을 싹쓸이했다.

현행 정당법은 쿠데타 정권에 의해 제정될 당시의 체계를 그대로 이어온 것이다. ‘민주화’된 지가 어언 한 세대가 흘렀음에도 정당법은 여전히 박정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애초 정당등록을 중심으로 하는 제한경쟁체제는 집권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러한 효과를 이제는 보수양당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양당의 기득권 카르텔이 군사정권의 폐단마저도 용인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중앙당을 서울에 두어야 하도록 강제하는 것만이 지역정당의 건설을 가로막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정당법에는 이 외에도 지역정당을 만들 수 없도록 하는 규정들이 산재해 있다. 어떤 규정이 또 있는지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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