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light] 파리의 한 가수를 생각하며

in kr-review •  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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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곳 스팀잇에서 본 레일라는 누구보다 반듯한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반듯한'이라는 표현이 좀 생뚱맞아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형식의 벽을 넘나들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이고, 파리에서 지낸 세월을 글로 묶어낸 예술가에게 '반듯한'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왠지, '자유로운 영혼' 같은 표현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레일라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규칙적으로, 치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꽤 오랜 세월 꾸준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읽는 사람, 성장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본업인 음악에 있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올리던 일상의 기록을 통해 얼마나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려고 애썼는지 엿볼 수 있었다. 낭만적인 파리에서의 삶이란, 제멋대로고 유유자적할 것 같지만 레일라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진짜 자유롭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악기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규칙적인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레일라는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노래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기 위해서, 매일 반듯한 일상을 보냈다. 예술가 특유의 똘끼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오히려 다른 예술가와 그녀를 구별 짓는 것 같다. 재능을 발산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잠잠히 실력을 키우고 쉴 새 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지내는 그녀의 삶이 멋져 보였다. 그 어떤 똘끼 충만한 예술가보다도.

 이런 그녀의 모습을 책, <어젯밤, 파리에서> 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내 일상의 서사는 '쌓임'이었다. 연습의 쌓임, 기록의 쌓임 그리고 그리움의 쌓임. 72p

이 크고 넓은 세상을 애써 잘 살아 내고 있다고 믿으며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곧 겨울이 올 테고, 누군가는 변화를 시도하고 또 희망을 모색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그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푸른 여름에 얻었던 기운을 씨앗 삼아 거름을 잘 주다 보면, 겨울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리라 믿는다. 74p
-레일라, <어젯밤, 파리에서> _'책 읽는 도시' 중에서

 그녀는 기본적으로, 쌓아가고, 심고, 거름을 주는, 그런 세계관을 가졌다. 공으로 거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리의 공원을 걷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지만 멈추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두려운 건, 정체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해왔던 모습을 보면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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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일라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질문과 질문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파리에서의 에세이라고 해서 말랑한 일상의 기록으로 가득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이 책은 수많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와 연결되었던 관계 속,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 대체될 수 없었던 것일까? 52p

어떻게 하면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욕구를 즐겁게 행할 수 있을까. 84p

질문을 멈추면 호기심이 사라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질문하는 습관이 사라지기 때문에 늘 성찰과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88p

어려움에 부딪힌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과정에서의 나의 행동은 적절한가?

나 자신에게, 사회에게, 부모님에게, 직장 선배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118p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119p

내 정서란 무엇인지, 음악에 녹아있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대중이란 매체 사이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121p

어떻게 하면 나의 사유와 고찰이 잘 어우러진 음악을 아우르고 연주할 수 있을까. 126p

 그녀의 질문 사랑을 살펴보며, 내겐 어떤 질문이 남았나를 생각해보았다. 이제 답만 남은 건 아닐까. 더 이상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질문을 가진 사람은 '겸허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태도에서 하나를 배운다. 다 아는 사람 말고, 여전히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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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글 선생으로의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고 내게 자극을 주기까지 했다.

학생들과 수업 중 잠시 흐름을 끊으며 여기서 할 수 있는 질문을 생각할 시간을 준다. 88p

지도하는 학생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더 발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90p

그들은 내가 전달하는 모든 단어와 톤, 그들에게 비추는 태도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흡수하며 그들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한다. 92p

 가르치는 일을 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의식하는 일이 점점 흐려져 온 것 같다. 나의 태도를 아이들이 남기지 않고 흡수할 거라는 레일라의 문장을 보며, 잠시 등골에 찌릿 전기가 흘렀다. 어른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는 내가, 가르치는 대상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너무 편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저장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 것이다. 그들을 좀 더 큰 존재로 여기고 의식해야 할 것이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지만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다. 생각할 거리와 여운을 준다. 개인적으론 글동무인 레일라라는 한 사람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앞으로도 그녀의 성장과 반듯한 분투를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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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칭찬겸 채찍질에 또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ㅎㅎ 멋진 사진과함께 진심 가득한 감사한 글 잘 읽었습니다. 솔메님과 글쓰는 사람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의 간극에서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마음이 읽혔나봅니다. ^^ 콕 찝어 주셨네요.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지만 그런 책인척 포장하고 있는 책의 진실을 알아봐주셔서 기쁩니다.

레일라님처럼 부단히 글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책은 후루룩 읽기에 가독성이 좋았고, 레일라님의 사색과 성찰에 동참해서 이것저것 생각하기에 좋았던 독서 시간이었답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은 쓰는 일과 또다른 희열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이 나눠주세요. ㅎ
이제 한국에서의 2장이 시작된 것 같은데요, 이곳에서의 레일라님의 글쓰기도 차곡차곡 쌓여 다음 책으로 열매맺길 바랍니다! ㅎㅎ

서평에서 저자의 댓글을 보니까 되게 신기하네요..

스팀잇의 매력이 아닐까요. ㅎㅎ

제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때도 잠시 멈추어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책일것 같습니다. 읽어보도록 해야겠네요.

생각이 나서 들어왔습니다. 자주 왔었는데 발자취를 남기는 건 처음이네요. 솔메님 저 마이해피써클입니다. 아이디 바꿔서 새로 활동한 지 한달 조금 넘었어요. 생각 많이 나는데..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많이 덥다고 하던데 더위 조심하시고요. :)
늘 머물러 주셨던 그 마음을 제가 갚을 길이 없네요.

  ·  3 years ago (edited)

해피써클님~ 아름다운 이름으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전 아주아주 가끔~ 들어와 둘러보는데 오늘이 그날이네요. 이렇게 흔적을 볼 수 있어 반갑습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하신건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다거나. 그 바람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ㅎㅎ 건강하시고 평온한 날들 보내시길요!! :)

흑 ㅠㅠ너무 반가워서 읽고, 읽고, 또 읽고 ㅠㅠ
잘 지내시는 거죠? 비도 많이 온다고 하던데…

제가 어떤 의미로 다시 시작을 했는지 사실 저도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 진심을 쏟아 마음을 담았던 곳이기에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이곳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요. 글을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니었거든요.
어떤 일이 제게 생기면 이곳이 후회로 남을 거 같았나 봐요. ^^;; 너무 많은 에너지와 애정을 쏟은 곳이었기에…

이렇게 짧게라도 인사 드릴수 있어서 너무너무 반갑고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감사합니다.

솔메님도 늘 건강하시고 평온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