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정신분석학, 진화심리학 (1) 성선택 성선택 성선택

in kr-science •  7 years ago  (edited)

성선택은 아마 여러 과학 개념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진화심리학에서 성차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성선택에 대해 알아보고 성선택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왔는지 알아봅시다.

성 선택이란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란 짝짓기(Mating)에서의 성공이 해당 개체의 생식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공작 수컷의 화려한 깃털을 설명하기 위해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화려한 깃털로 인해 포식자의 먹잇감이 될 확률이 증가하더라도 이로 인해 더 많은 짝짓기에 성공하여 생존율 감소를 상쇄할만큼 많은 자손을 남김으로써 이러한 형질이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인간의 유래 (1871)에서 그는

‘the males of almost all animals have stronger passions than the females. Hence it is the males that fight together and sedulously display their charms before the female.’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더 강한 열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수컷은 암컷보다 먼저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서로 경쟁한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유념해야할 것이 하나 있는데 다윈은 19세기 사람이라는 겁니다. 다윈의 많은 통찰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영감을 주지만 그의 주장들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전혀 엄밀하지도 않고 연구가 마땅히 따라야할 통계적 규칙들을 준수하지도 않습니다. 범생설(Pangenesis)와 혼합유전을 생각해보십시오. 적어도 다윈의 시대에 범생설과 혼합유전이 자연선택과 더불어 다윈주의의 핵심개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윈이 뭐라 했다고 해서 그의 주장을 온전히 신뢰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고 이전 글에서도 설명드렸지만, 명백하게 자연철학 장르로 쓰여진 종의 기원, 그리고 거기서 출발한 자연선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과학의 타이틀을 달 수 있었던 건 통계적 방법론을 획득한 20년대 집단유전학과 자연집단 연구의 과학적 단초를 마련한 30년대 자연주의자들의 기여 덕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윈의 성 선택이 과학이론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춘 건 언제였을까요?

성 선택 이론의 발전


토머스 모건(Thomas Hunt Morgan) 이래 초파리(학명 Drosophila melanogaster)는 유전학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연관(Linkage), 교차(Crossing)이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도 초파리 실험을 통해서였죠. 성 선택의 실험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되었던 것도 초파리 실험을 통해서였습니다(Bateman, 1948).


그림 1. Heredity에 게제된 1948년의 논문.

이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찮게도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다행히도 딱 한 가지만 알면 됩니다. 바로 Fisher(네 이 양반은 앞으로도 꼴백번은 더 등장합니다) 의 Fundamental Theorem of Selection (1930) 입니다. 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 (1930)에서 피셔는

"The rate of increase in fitness of any organism at any time is equal to its genetic variance in fitness at that time."

"어떤 생물에 있어서든 적응도의 증가는 유전적 분산에 비례한다"

라고 했습니다. 분산이 더 큰(=다양성이 큰) 집단의 진화속도가 분산이 더 작은(=다양성이 작은) 집단의 속도보다 더 크다는 겁니다. 물론 갓-피셔 님께서는 수학을 가지고 증명까지 해주셨지만 수식 쓰기 시작하는 순간 아무도 이 글을 안 읽을 거라는 걸 아는 저는 예만 간단하게 들어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디테일을 알고 싶은 변태다 : Reference (1) 참고).

두 집단 A, B의 평균키가 170cm라고 가정합시다. 또, A는 분산이 큰 집단이라 키가 140~200cm가 존재하고 B는 분산이 작은 집단이라 키가 165~175cm만 존재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키가 작을수록 생존에 더 유리한 상황에서 어떤 집단의 평균키가 더 빠르게 감소할 것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피셔의 법칙을 적용하면 A집단이 B집단보다 분산이 더 크기 때문에(=키의 다양성이 더 크기 때문에) A 집단의 평균 키가 더 빠르게 감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피셔의 이론이 베이트만의 연구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봅시다. 베이트만은 초파리를 쳐다보다가 다음 세 가지를 관찰합니다

  1. 수컷이 암컷보다 자손 수의 분산이 더 크다(=많이 낳는 놈과 적게 낳는 놈의 차이가 수컷이 더 크다)
  2. 수컷이 암컷보다 짝짓기를 한 상대방 수의 분산이 더 크다(=파트너의 수가 적은 놈과 많은 놈의 차이가 수컷이 더 크다)
  3. 수컷이 암컷보다 1과 2의 분산 사이의 상관관계가 더 크다(아래 그림 참고)



그림 2. 3의 주장을 요약한 그래프(베이트만의 논문에서 가져옴). 수컷은 짝짓기 상대 수가 많을수록 자손의 수가 계속 증가하지만 암컷은 증가하다가 멈춤.

여기에 피셔의 이론을 적용해봅시다. 수컷이 분산이 더 크니까 선택압을 암컷보다 더 세게 받을 겁니다. 와우! 그러면 수컷이 더 짝짓기와 매력어필에 더 적극적일 거라는 다윈의 가설은 증명된 거군요! 끝~
이면 이 글을 안 썼겠죠(...) 아무튼 이걸 앞으로 베이트만의 원리라고 부르겠습니다.

베이트만의 한계


아무튼 대단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윈이 1800년대에 썼던 '썰'이 실험적으로 입증된 겁니다. 그랬더니 오만 인간들이 달라붙어서 위대한 다윈의 ^통찰^과 '베이트만의 원리'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필두로 온 동네 대중교양서들은 다 끌어다 붙이는 Trivers의 1972년 연구가 있겠습니다(3).

그런데 과학을 공부한 경험이 많으신 분들은 이쯤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셨을 겁니다 : '초파리한테만 해놓고 사람한테까지 외삽해도 괜찮은 건가...? 어???'

자 여기서 과학이론을 이해할 때 반드시 고려할 요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든 이론과 법칙에는 조건과 가정이 따릅니다. 예를 들면, 특수상대성이론은 '관성계'에서만 참이고 중간값 정리는 '연속함수와 옹골집합'에서만 참입니다. 그러면 베이트만의 원리는 어디에서 성립하는 걸까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집단에서'만' 유효합니다. 복습하면

  1. 수컷이 암컷보다 자손 수의 분산이 더 크다(=많이 낳는 놈과 적게 낳는 놈의 차이가 수컷이 더 크다)
  2. 수컷이 암컷보다 짝짓기를 한 상대방 수의 분산이 더 크다(=파트너의 수가 적은 놈과 많은 놈의 차이가 수컷이 더 크다)
  3. 수컷이 암컷보다 1과 2의 분산 사이의 상관관계가 더 크다(그림 2 참고)
    가 모두 성립하는 집단에서만 성립한다 이거에요~ 그런데 인간도 이거 다 만족하나...?

놀랍게도 베이트만의 원리를 가져다 썼던 수많은 문헌 중 저걸 확인하고 가져다 쓴 문헌은 거의 없다는 사실!



그림 3. 트리버스(1972)의 후덜덜한 인용수

이런 기본도 안 갖춘 연구가 인용수가 13350회나 된다는 겁니다. 물론 까려고 인용한 것도 제법 있겠지만요.

실제로 베이트만의 세 가지 관찰을 만족하지 않는 집단은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실험실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가까운 친척인 또 다른 초파리 종(Drosophila lummei)에서 조차 잘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4). 물론 만족하는 동물들도 있고. 따라서 진화심리학이 늘 그러는 것처럼 인간 집단에 성 선택을 끌어다 붙이기 위해서는 이 조건들을 확인할 필요가 생깁니다.

뿐만 아니라 수학적으로 더 복잡한 모형을 사용하는 현대적인 성 선택이론들은 성 선택이 작동하는 방식이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이트만 원리가 요구하는 조건들이 극단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5).

인간 집단은 베이트만 원리의 전제들을 만족하는가?


자 그러면 인간이 베이트만 원리를 잘 따르는지 알아볼 때가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딴 거 없다는 겁니다. 그럼 첫 번째 조건이 성립하는가? 땡-...
이 링크(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096780/table/tbl1/)의 표를 참고하면 남성분산/여성분산의 비가 0.79에서 4.75까지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입니다. 0.79인 핀란드를 보면 오히려 암컷의 분산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두 번째 조건은 성립하는가? 땡- 세 번째 조건은? 역시 땡 -.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편차가 너무 커서 일관성있는 결과를 관찰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문헌들은 이 조건들을 확인할 생각조차 안 하고 무분별하게 베이트만의 원리를 적용해온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가 없죠.

진화심리학, 21세기의 정신분석학


이토록 경험적, 통계적 근거가 부재하니 진화심리학을 21세기판 정신분석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페이지에서 썼던 글들에서 여러 번 밝혔지만 뭐 이런 게 잘 팔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저도 대충대충 통계 돌리고 대충대충 썰만 풀어서 논문 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예과 방학에 맨날 연구실 끌려가서 코딩하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ㅠㅠ 이 인간들은 이렇게 야매로 논문 찍어내고 책도 팔아서 돈 버는데 ㅠㅠ

Reference
(1) 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 1930, Fisher (https://books.google.co.kr/books?id=sT4lIDk5no4C&dq=The+Genetical+Theory+of+Natural+Selection&lr=&hl=ko&source=gbs_navlinks_s)
(2) Bateman's Principles and the Measurement of Sexual Selection in Plants and Animals, 1994, Arnold (https://www.jstor.org/stable/2462732)
(3) Parental investment and sexual selection, 1972, Trivers (http://roberttrivers.com/Robert_Trivers/Publications_files/Trivers%201972.pdf)
(4) Bateman's principles and human sex roles, 2009, Brown et al.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096780/)
(5) Kokko H., Monaghan P. Predicting the direction of sexual selection. Ecol. Lett. 2001;4:15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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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해하기쉽게 글을 잘쓰시네요! 의대생이신것 같은데 평소에 바쁘실거같은데도 이렇게 자료를 많이 읽고 분석하시니 놀랍습니다.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옹골집합이 아니라 연결집합입니다.
compact set.. connected set...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