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지능에 미치는 영향력이 50% 이상이라고?

in kr-science •  7 years ago  (edited)

며칠 전에 중앙일보에서 "성적이 쉽게 안 오르는 이유…IQ 절반은 유전자 탓"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2323954). 대단히 흥미로운 제목이지요? 자연스럽게 어떤 수치를 바탕으로 '절반' 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Genomic analysis of family data reveals additional genetic effects on intelligence and personality (2018, Hill et al. https://www.ncbi.nlm.nih.gov/pubmed/29321673) 인 것 같네요. 오늘은 이런 기사를 독해하는 팁을 한 가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 연구에서는 설문지를 통해 연구 참여자들의 산수 능력 등을 측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획득한 총점의 분산을 봤더니 이 분산 중 50%가 유전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입니다. 분산이란 주어진 데이터가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측정하는 값입니다. 아래 그림을 먼저 보시죠.




파란 색 곡선은 분산이 큰 데이터고, 빨간 색 곡선은 분산이 작은 데이터입니다. 분산이 클수록 데이터가 '퍼져있고' 분산이 작을수록 데이터가 '모여있다' 는 이런 의미입니다. 즉, 분산이 크다는 건 집단 안에서 데이터들 간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득의 분산이 크다는 건 그 집단 안에서 소득불평등이 크다는 얘기와 동치가 되겠습니다.

그럼 이 지능 지표의 분산은 왜 0보다 큰 걸까요? 그러니까 왜 사람마다 이 지표의 값이 다르게 나타날까요? 아마 유전적으로든, 사회경제적으로든 지능지표를 결정하는 요인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이 분산의 50프로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설명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지능지표가 단 한 개의 유전자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고 가정합시다. 예를 들어, 해당 유전자의 상태가 두 가지 밖에 없다면 지능지표의 값도 딱 두 개 밖에 없겠죠. 이 경우에는 이 유전자가 지능지표를 완전히 결정하므로 지능지표의 분산 전체를 모두 설명합니다. 지능지표의 차이(=분산)의 100프로를 이 유전자가 결정하니까요. 유전자 A, B 두 개가 지능지표를 완전히 결정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각각의 유전자는 지능지표의 차이 중 일부분만을 설명할 겁니다.

그런데 어떤 집단이 있어서 유전자 A의 상태는 조금씩 다른데 유전자 B의 상태는 모두 똑같다고 칩시다. 실제로 지능지표가 유전자 B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상태 B가 모두 같기 때문에 지능지표 상의 차이 중 B가 기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B의 상태가 모두 같으므로 지능지표의 차이는 모두 A의 차이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겠죠. 이런 경우에는 A만으로도 분산 전체를 모두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집단이 있어서 유전자 B의 상태는 조금씩 다르고 A의 상태가 모두 같은 경우에는 B만으로 분산 전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얘기를 조금 바꿔서 지능지표가 교육수준과 유전자 한 개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어떤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같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사회에서는 모든 지능지표의 차이가 유전자로부터 기인하겠죠. 이 사회의 지능지표 차이(=분산)는 100퍼센트 유전자에 의해서 설명이 됩니다. 반면, 유전적 상태는 같은데 불평등이 극심한 디스토피아가 있다면 이 사회에서는 지능지표의 차이가(=분산) 100퍼센트 교육수준에 의해서만 결정될 겁니다. 유전적 차이가 없으니 유전자로 인한 지능지표 차이(=분산)가 없을테니까요. 이쯤되면 뭔가 찜찜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모든 집단에 대해서 유전자가 지능에 미치는 영향력이 50프로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어떤 집단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이 값이 달라지는데?

이 연구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바탕으로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의 사회경제적 환경에서는 유전자가 50프로를 설명한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보다 불평등이 더 심한 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 상태의 편차가 더 클테니 이로인해 생기는 분산이 더 커질겁니다.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분산은 일정한데 사회경제적 상태가 만들어내는 분산은 더 커질테니 유전자가 전체 분산에서 기여하는 비율은 50프로보다 작아지겠죠. 반면, 스코틀랜드보다 불평등이 작은 사회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햐면 한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스코틀랜드와 다를테니까요. 어떤 나라의 불평등이 더 심한지는 저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아서 유전자가 기여하는 정도가 어느 쪽에서 더 큰지는 얘기하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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