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단에서 대립유전자보다 더 적응적인 변이가 등장했습니다. 과연 이 변이는 집단 내부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정말로 단순한 적응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변이는 집단 내부에서 빈도를 높여나갈까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바로 위대한 일본의 유전학자 Ken-Ichi Kojima와 사회생물학을 비판한 것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하버드의 Richard Lewontin이 그 두 사람입니다.
모든 집단 유전학 연구는 기본적으로 하디-베인베르크 법칙에서 출발합니다. 선택, 부동, 돌연변이 등이 존재하지 않고 충분히 큰 크기를 가진 이상적인 집단이 따르는 유일무이한 규칙이 바로 하디-베인베르크 법칙이니까요. 이러한 집단에서는 각 유전자들의 빈도(Frequency)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법칙이 바로 하디-베인베르크 법칙이구요.
반대로, 하디-베인베르크 법칙이 깨졌다는 것은 선택, 부동, 돌연변이, 선택적 교미 등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주어진 유전 메커니즘(멘델의 법칙) 하에서 자연선택은 유전자 빈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는 1918년 피셔가 집단유전학을 개척한 이래 항상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미 1920년대에 유전학자들은 멘델의 법칙이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를 유전학의 대표주자로 올려놓은 Thomas H. Morgan은 염색체와 유전현상 사이의 관계를 확증하고 연관(Linkage)와 교차(Crossover)이 유전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냅니다. 이는 명백하게 독립의 법칙에 위배되는 결과였습니다. 한 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는 독립적으로 유전되지 않고 함께 유전되니까요. 이는 유전자의 물질적 기반(DNA와 염색체)에 대한 고려가 생명의 진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 염색체 상에서 가까이 붙어있는 유전자들은 교차를 경험할 가능성이 적고 멀리 떨어져 있는 유전자들은 교차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 가까운 유전자들은 함께 유전되고, 먼 유전자들은 따로 유전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 현상을 가리켜 우리는 Linkage Disequilibrium(LD)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선택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적응적인 유전자 A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유전자 A는 오히려 적응적이지 않은 유전자 B와 같은 염색체 상에서 가까이 붙어있다고 합시다. 선택은 A의 빈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한 편, B의 빈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독립적으로 유전되지 않고 반드시 함께 유전되기 때문에 A를 가진 개체는 B를 가지고 B를 가진 집단은 A를 반드시 가집니다. 따라서 AB는 각각이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서로의 영향을 상쇄시켜서 자연선택의 영향을 전혀 안 받을 수도 있고, A가 B보다 영향이 커서 (AB)를 포함한 염색체의 빈도가 더 증가할 수도 있고, B가 A보다 영향이 커서 (AB)를 포함한 염색체의 빈도가 감소할 수도 있습니다(반수체가 뭔지 설명하기 귀찮아서 염색체로 대충 퉁쳤습니다). 결론은? 그냥 특정 유전자가 더 적응적이라고 해서 그 유전자가 선택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주변의 유전자들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그 유전자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거죠. 쉽게 말하면 유전자도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집단유전학은 정량적인 학문이니까 이 현상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기술할 것인가? 어떻게 이러한 직관을 더 정교하고 엄밀하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사람들이 바로 Kojima와 Lewontin이었습니다. 그들은 옆 친구가 잘나서 같이 선택이 되는 Hitchhiking Selection(버스 선택...?), 옆 친구가 못 나서 같이 집단에서 제거되는 Background Selection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좀 더 넓게는 LD 하에서 Selection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포괄적으로 알아보고자 했죠.
아래는 그 연구들의 링크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그 형질은 적응적이니까 선택압을 받았을거야!' 라는 주장이 얼마나 순진하고 단순한 발상인지 느끼게 되실겁니다.
- Survival Process of linked mutant genes
https://www.jstor.org/stable/2406613… - The effect of genetic linkage on the mean fitness of a population
https://www.ncbi.nlm.nih.gov/pubmed/5280533
이들의 선구적인 업적들은 21세기 인간 유전체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기 시작한 이래 그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핵심적인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비교적 최근, 아니 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형질을 탄탄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연구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올해, 2018년, 조현병(Schizophrenia)과 관련해 어떤 선택작용이 있었는지 톺아보는 연구가 등장했습니다(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8-018-0059-2).
게놈 프로젝트 이후 대량의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이.제.서.야.(2018년) 인간이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왔는지 데이터와 계량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알아보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전까지의, 검증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변적, 소설적 이론(?)들을 대체해 나가겠죠. 몇몇 인류학이라거나, 진화심리학이라거나 등등 ㅡㅡ;;
저는 단순한 사변적, 적응주의적 소설이 아닌 잘 선택된 데이터와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유전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대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저도 그 길에 먼지 하나라도 쌓고 싶군요 깔깔...
유전자가 어떤 우수한 특성을 나타내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붙어있느냐도 유전자의 생존이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긴 한데, 이걸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역시 통계학을 포기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
게놈프로젝트가 20년은 되었을텐데... 하기사, data science는 이제 걸음마를 뗀 단계이니 앞으로 있음직한 말 대신 근거있는 주장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bioinfomatics 분야는 요즘 어떤지 궁금한데 물어볼데는 여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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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생이라 이제 알음알음 알아가는 중입니다.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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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사람들은 그게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쓰지 않고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쓰니까요.. ㅠㅠ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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