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 1. 호치민에서의 첫날

in kr-travel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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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났지만, 돌아오면 잔뜩 쏟아내겠다는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며칠이나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심신의 컨디션이 좋을 때 글을 쓰겠다며 미루고 있었는데 하루도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을 피로에 찌들어 지내다 문득 나는 원래 컨디션과 무관하게 카페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컨디션과 무관하게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게 습관이 되면 제시간에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래서 카페에 왔다. 새벽의 카페도 참 오랜만이다.

많이 미룬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다음은 알러지로 고생하는 봄에 공기가 맑은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 마지막은 단순히 나에게 휴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심신은 지쳐있었고, 20년을 가까이에서 지낸 친구와 떨어지게 되었고, 한달간 금연을 잘 지킨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기도 했다. 그 외에도 구실은 다양했다. 시기 뿐 아니라 목적지도, 그렇게 생각할 시간이 많았음에도 마지막에서야 결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7월에, 베트남에 가게 되었다. 내 선택에 영향을 준 것들은 무엇일까? 동남아 여행을 좋아하셨던 분이 베트남이 가장 좋았다고 하셨던게 기억에 남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워낙에 다낭에 떠나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을까?

호치민에서 시작해서 다낭에서 끝이 날 여행이었다.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장소들을 대략적으로 찾아서 지도에 점을 찍었다. 그 점들에 무엇이 있는가는 깊게 살피지 않았다. 이런걸 보면 내 여행은 7년 전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던지도 모른다. 7년 전에도 나는 점과 점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점에 무엇이 있는가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점에서 점으로 향한다는 목적만 갖고, 점에서 점으로 움직였다. 등에 텐트와 코펠이 없었다는게 차이점일까?

베트남에서의 첫 기억은 입국 심사를 하는 군인이다. 북한에서 나에게 소리를 질렀던 군인이 생각났다. 험악한 표정을 짓고 "모자 벗으라우!"라고 외치던 군인은 내가 한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거듭해서 소리를 질러야 했었다. 변명을 하자면 "뭐자브스라우!"처럼 들려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모자를 쓰고 있었다면 베트남 군인은 뭐라고 했을까? 아마 말 대신 제스쳐를 취했겠지. 혹 말을 했더라도 소리를 지르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군인 앞을 통과해서 공항에서 환전을 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심카드였다. 내가 많은 정보를 찾지도, 섬세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무작정 떠날 수 있었던건 필요한 정보는 순간순간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심카드를 사면 끝이라고, 어차피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걸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명소에 방문하는걸 즐기지도 않으니 그리 많은 정보는 필요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 계획은 공항을 벗어나기도 전에 변수를 맞이한다. 심카드 슬롯이 빠지지 않았다.

아쉽지만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공항에서 나서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나를 막아선다. "Where go? Hotel! Taxi!"라고 소리 지르는 택시 기사들을 피해서 시야가 탁 트인 곳으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거리가 있었기에 택시를 타긴 해야했다. 하지만 과도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에는 타고 싶지 않았다. 기사가 얌전히 운전석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찾아서 탔다. 그렇게 택시에 앉아서 도로를 살폈다. 처음 눈에 띈건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에 탄 사람의 수도 눈에 띄었는데 3~4명이 탄 오토바이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차선에도 몇대씩 늘어서 있고 조금만 틈이 보이면 추월을 하기 위해 차선을 수시로 바꾸고 인도와 차도를 자유롭게 오가는 오토바이들, 그 무질서한 오토바이들에게서 혼란을 느껴야 할 것 같지만 나는 묘하게도 그들이 일사분란하다고 느꼈다. 그 느낌은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그 많은 오토바이들을 갓길에 세우고 우비를 꺼내서 뒤집어 쓰는 모습을 보며 캐리어로 돌아오는 인터셉터들을 떠올렸다. 인터셉터들도 무질서하게 날아다니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으며, 일제히 귀환하면서도 충돌 따위는 없다. 물론 호치민의 오토바이들은 자주 사고가 나겠지만, 당시의 내 감상은 그랬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숫자의 오토바이들을 올리기 위해서 인도의 턱은 우리처럼 각진 턱이 아니라 경사로다.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볼 일을 볼 때는 인도에 올려서 주차한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짐을 풀어놓고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고수에 거부감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무난하게 식사를 마치고 카페를 가겠다고 무작정 강을 따라 걸었다. 숙소가 강가였기에 길을 걸을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강가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택시비가 싸서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걸을 필요가 없는데도 나는 꼭 걸어가길 원했다. 강을 따라 걷다가 골목에 있는 카페를 찾아서 들어갔다. 앉을 곳도 제대로 없는 허름한 카페였는데 영어로 된 메뉴는 있었다. Ice Coffee가 보여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커피에 우유를 붓고 있었다. 그리고는 연유를 넣고 마지막에는 휘핑크림까지 얹었다. 분명 메뉴에는 Coffee With Milk가 따로 있었는데 그 메뉴는 뭐였을까? 커피를 마시며 계속해서 강을 따라 걸었다. 호치민에 도착한 날은 꼭 술을 마시겠다고 생각했는데 강을 따라 걷다가 조금만 안쪽으로 움직이면 나오는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에 바가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다. 호치민은 확실히 보행자를 위한 도시는 아니었다. 인도의 폭이 좁으면 오토바이로도 가득 차서 수시로 갓길로 내려가서 걸어야 했으며 횡단보도는 유명무실했다. 뜨거운 볕을 맞으며 갓길을 걷다보니 일반국도에는 인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화물차가 바로 옆으로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 갓길에서 걸어야 했던 7년 전이 생각났다.

술을 마시기에는 조금 이를지도 모를 시간에 타워에 올랐다. 근처 다른 루프탑 바에서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를 포함한 야경을 보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좋은 야경을 찾겠다고 이 혼잡한 도로를 몇번이나 더 건널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에 도착하마자 운이 좋게도 아주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다른 바를 찾아 다녔다면 놓쳤을 경치를 보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날이 많이 덥네요. 여러분 모두 건강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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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날씨가 동남아같다고 생각했는데, 베트남에 다녀오셨군요. 저도 모처럼 오랜만에 왔는데 김리님이 피드에 나타나셔서 무척 반갑습니다 :)

이제 매일 꼬박꼬박 써야죠. 빨리 안 쓰면 잊을테니까요.

얼마만인가요?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ㅎㅎㅎ 보고싶었답니다! 둘째날 그 다음날도 기다려지는군요~ 왠지 남다를것 같은 여행기 ㅋ

한달만이네요. 평범한 여행기여야 했는데...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더라구요.

글을 잘쓰시네요. 머리에서 영상이 떠오르네요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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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돌아오셨군요!!!!

네. 돌아왔습니다. 한국이 동남아보다 더워서 도착하자마자 괴롭더라구요.

김리님! 너무 반가워요. 충전 좀 되셨길...

이제 또 한 분만 돌아오심 좋을텐데요.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행 잘하고 계시군요. 베트남으로 가셨네요.
개인적으로는 "호치민"은 "사이공"이란 그 전 이름이 더 어울렸던 도시가 아닌가 싶어요.
뮤지컬 "미스 사이공"도 재밌게 봤고 해서요.

요새 한국도 만만치않게 더우니까 편하게 즐기다 오세요^^
서울도 계속 35도 찍고 40도 찍은 곳도 있답니다.

현지인들도 사이공이라 부르는걸 더 좋아하는 눈치더라구요.

저는 이미 한국에 돌아습니다. 한국이 더덥더라구요.

앗 그새 1달이 지나갔군요. 반가운 마음에 죄송합니다^^ 끝까지 읽다가 계속 계신걸로 착각을.

아뇨. 뭘 그런걸로...

첫 날 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몸은 좀 괜찮아 지셨나요?
인터셉트 케리어를 읽고 킴리님도 스타 크래프트를 했구나 싶네요.
저도 한 동안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는데...^^

베트남도 이리 더웠나요?

최고기온이 31~32도? 한국보다는 나았죠. 사이에 들렀던 달랏은 최저기온이 16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시원한 곳이었구요.

더위에 완젼 퍼진 줄 알았네요~
"큼~!!!!!!!"

그러게요.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네요. 율님은 더위를 잘 견디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죠?

길게 다녀오신 만큼 할 말도 많으시겠습니다! 다음 후기를 기다립니다ㅎㅎ

보고 싶었습니다.
뭐자브스라우...예전에 그쪽도 다녀오셨군요.
다음 여행기 기다릴게요.

우리동네 침범하셨군요 ㅎㅎ..해피여행^^

벌써 귀국하셨군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러게요. 벌써 한달이 지났군요.

오랜만이에요 킴리님^^ 베트남에 다녀오셨군요~ (북한에도 갔다오신 적이 있으신가 보네요)

오랜만입니다. 네. 북한에도 다녀온 적 있어요.

  ·  6 years ago (edited)

신 짜오! 베트남 인사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ㅎㅎ글로 보는 풍경도 되게 좋네요. 모니터에서 오토바이 매연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또박또박 발음해주지 않다 보니 알아듣기 어렵더라구요. '진줘'에 가깝게 들리곤 해서... 제가 어설프게 발음하면 그 사람들도 못 알아듣구요. 그래서 그냥 "Hello!"하고 말았죠. 발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게 될거에요. 그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라요.

피드에 묵직한 김리님의 소크라테스 프사가 떠서 보자마자 클릭했습니다:) ㅎㅎ 여행의 첫날을 멋진 일몰과 함께 시작하셨군요 ㅎㅎ 기억에 오래 남으실듯...

일몰과 같은 순간의 경치는 아무리 눈에 새겨두려고 해도 그 광경이 주는 느낌만 남고 그 광경 자체는 잊혀지는거 같아요. 사진이 없으니 되새길 수도 없구요.

돌아오셨네요. 생생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합니다

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ㅎㅎㅎ

저도 다음 여행은.. 어디든.. 외국으로 가고 싶어지네요.

가까운 곳으로 가시면 큰 부담 없으니까 한번 다녀오세요 ㅎㅎ

김리님이 쓰시는 여행기를 읽을 줄이야 ㅎㅎㅎ 베트남 음식은 맛있게 드셨나요?! (향신료에 거부감이 없다는 전제하에) 동남아 음식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계속 생각나더라구요 ㅠㅠㅠㅠ

한국 돈으로 1700원에 사먹었던 고기가 듬뿍 올라간 쌀국수가 생각나네요.

오랜만에 뵙네요. 여행다녀오셨군요. 이제 여행기가 시작되나요. 기대하고있겠습니다. :)

돌아오셨네요! 어디로 가신 걸까 궁금했는데 베트남이었군요!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다낭에 가서 기억에 남은 것이라곤 콩카페 코코넛커피가 참 맛있었다...는 것뿐 길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김리님 여행기가 더 기대됩니다. :-)

오랜만입니다. 여행 즐거우셨나요?
새벽의 카페라니,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셨네요. :)

베트남 여행 에피소드 많으시겠어요
기대하며 보팅하고 갑니다
기분 좋은 날 되세요

돌아오셨네요!^^
베트남을 여행하셨나봐요.
아직 베트남 여행을 해보지 않은 저로서는 기대가 되는데요?

우선 오토바이가 많은 풍경은 여행 중 상해에 경유하면서 본 것과 비슷하네요.ㅋ

베트남으로 가셨던 것이군요. 7년 전에는 여행을 많이 하셨었군요!! 킴리님 피에는 저처럼 방랑과 노숙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ㅎㅎㅎ

동남아는 오토바이가 참 많은 기억이 나요 ㅎㅎㅎ 저는 베트남은 가보지 않았지만, 태국 여행했을 때 수많은 오토바이로 뒤덮인 도로를 보았던 기억이 나요 ㅎㅎㅎ

베트남 다녀오셨군요! 흥미진진합니다!

여행지가 베트남이었군요^^ 무사귀환을 환영합니다ㅎ

저도 여름 휴가로 타지에 와있습니다. 오기 전 킴리님이 돌아오셨다는 신호를 알리는 댓글을 이웃의 글에서 봤습니다. 휴가지에 와있어서 이렇게 글을 재개하신줄 이제야 알았네요! 그것도 킴리님의 여행기라니 +_+

진지하게 읽고 있었는데 뜬금 carrier has arrived 해서 깜짝 놀랐네요ㅋㅋㅋ 매우매우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