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티비 키드였다.
태호pd처럼 그 소양을 직업적으로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티비를 절대 배경음 삼아 틀어놓지는 않는 사이보그 덕분일까? 어느 순간 나도 티비를 질적으로 시청하게 되었고,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한 주에 서너 개 쯤 되었다.
한국 프로그램들 중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이미 초록창의 헤드라인 기사만 봐도 줄거리 파악, 킬링포인트 등이 모두 숙지된다고나 할까? 미드의 경우에도 종영되지 않은 시즌물은 잘 시작하지 않는 편인데, 이유는 다음 편이 궁금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즌 종료 후에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으면 소위 정주행을 하는데, 한국 드라마의 경우 뭐랄까, 종료 후 정주행을 하면 약간 단물 빠진 껌을 나혼자 뒤늦게 씹는 기분이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90년대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녹화한 VHS 테이프를 대여했을 거고, 내가 처음으로 해외생활으르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해적판DVD, 다운로드+USB을 서로 돌려봤다면 지금은 앱과 스트리밍티비로 한국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을 실시간 종영 후 몇 시간 정도면 바로 시청할 수 있다.
나는 On Demand Korea라는 앱을 사용하는데, 모바일 기기 어디에서나 스트리밍이 가능하다.
단점이라면 중간 30초-2분 짜리 광고가 두 개씩 세트로 묶여 약 15분 단위로 나온다는 건데, 한국 VOD나 실시간 시청도 중간광고는 있으니까... 따로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다운로드를 받지 않아도 많은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다는 장점을 생각하면, 참을만 하다. 유료 버전을 사용하면 광고 안 봐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까지 할 정도로 티비 중독은 아닌 관계로...
최근 이 앱이 내가 케이블 대신 사용하는 스트리밍 티비 ROKU를 통해 서비스 되고 있어서, 아이패드로 보던 한국 방송들을 티비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효리네 민박2.
원래도 소시에선 윤아를 제일 좋아했기에 그녀의 관찰예능 모습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하게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 효리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화장기없는 얼굴에 편한 복장을 주로 입지만,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는 효리.(물론 그녀와 나 사이엔 얼굴-몸매의 극심한 격차가...)
화려하고 바쁜 생활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새 삶을 시작(나의 한국 생활이 그녀만큼 화려했다는 건 절대 아님)
부부가 서로 거울 앞에서 머리를 잘라주는 모습은 정말 우리와 오버랩되었다. (우리는 문 위에 걸어놓는 형태의 거울을 사용하는대, 그걸 뒷뜰에 옮겨놓고 의자에 앉아 커트보를 치고 머리를 자른다. 손재주가 나보다 좋은 사이보그가 나와 아이의 머리를, 나는 사이보그의 머리를 자른다. 중요한 건, 그렇다고 우리 동네에 미용실이 없는 건 아니다. 효리도 말한다, 제주도에도 미용실이 없는건 아니라고. 우리 동네에는 무려 한국분이 하시는 미용실도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뿌리매직+C컬 열 셋팅펌이 불가능할 뿐)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자꾸 조언을 하게된다. (대학 도시에 살다보니 학부생들 만날 일이 심심치 않게 있는데, 그때마다, 특히 여자친구들에게는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기 전에,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라”라고 얘기하게 된다)
사람이 그립고 반갑다. 사실 말로는 놀러와 놀러와 하지만, 막상 정말 놀러올까 싶기도 하고, 괜히 내가 질척대나 싶은 마음도 들고. (물론 서울서 뱅기 한 번, 한 시간 정도만 타면 되는 제주와, 비행기를 세 번 타야 하는 우리 집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제주와 달리 우리 동네는 관광지라 말할 수도 없다.)
누가 온다고 하면, 어떻게든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해줄 수 있는걸 최선을 다해 준비해주고 싶은 마음( 우비를 빌려준다거나, 콜택시를 대신 불러준다거나...)
막상 누가 왔다가면, 시원섭섭한 그 기분. (시즌 마지막회에 나오는 두 부부만의 컷들이 정말 실감나더라는. 작년, 어머님 일행이 여기를 다녀가시고 난 뒤, 사이보그사 내게 했던 첫마디가 “고생했어”였다. 올 여름엔 내가 사이보그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게 되겠지?
일요일 저녁에 챙겨보던 프로그램이 사라졌으니,
이제 내 한 주의 마무리는 누가 해줄까...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프로그램인데 끝나서 많이 아쉽겠습니다.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면 사람이 많이 그리워지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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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무언가로 허전한 마음을 채워봐야죠~
네 맞아요. 또 막상 한국에 가니 너무 정신이 없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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