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행기#76 오로라를 마주하다 - 트롬쇠: 오로라

in kr-writing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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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8] 트롬쇠에서 본 오로라

오로라 투어가 시작하는 관광안내소 앞으로 갔습니다. 강한 바람을 맞으며 서성이고 있으니 기골이 장대한 여성이 투어를 신청했냐고 물었어요. 통성명하고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차 안에는 승객이 볼 수 있는 속도계가 있었습니다. 갓 대학에 입학한 거 같은 중국인 이십 대 연인과 자신들은 중국이 아니라 홍콩에서 왔다고 말한 같은 나이 대의 연인 그리고 영국에서 홀로 온 사람 한 명과 두세 명이 더 탔습니다.

방한복을 덧입고 오로라를 볼 장소로 가는 동안 가이드는 트롬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동네는 집에 사람이 없어도 커튼을 열어 놓고 불을 켜 놓아서 밖에서도 환히 안이 보인다고 합니다. 도둑 걱정도 별로 없다고 했어요. 밤에 산속에서 불빛이 하나 내려오는 게 있으면 유령이 아니라 스키 타고 내려오는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평일에도 퇴근을 하면 스키를 지고 올라가서 타고 내려온다고 해요.

그렇게 가다 차에서 내렸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방한복이 원피스여서 팔을 펴면 하늘다람쥐처럼 바람을 탈 수 있어요. 가이드는 한켠에서는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오로라 촬영을 위한 조리개나 셔터스피드 설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나야 오로라 촬영에는 관심 없으니 한쪽에서 하늘다람쥐 놀이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빙하가 만든 좁은 만과 높은 산들이 낯선 한편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력을 두 장 넘긴 것과 비슷한 이유에요. 아직까진 부드럽고 적당한 거보단 강단 있고 확실한 게 좋습니다.

오로라를 보지 못해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가이드는 이동하는 내내 오늘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냥 우린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오로라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고 거기에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수치를 보여줬습니다. 또 구름이 많아서 못 볼 거 같지만 구름에도 틈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런 와중에 차가 언덕에서 눈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려보고 밀어도 보고했지만 꼼짝도 안 했어요. 지나간 제설차가 되돌아왔습니다. 차를 줄로 묶어서 빼주려 했어요. 나는 중장비 근처에는 얼씬도 하기 싫으니 길 건너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영국 사람도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내 근처로 왔어요. 종이봉투를 나에게 권해 뭐나 하고 보았는데 술병이었습니다. 한 모금 얻어 마시고 있다 보니 차가 빠져나왔습니다.

다음에 내린 곳에서도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어요. 가이드는 삽으로 썰매를 타자고 하면서 사람들의 지루함을 달래려 애를 썼지요. 검은 하늘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보고 싶은 대로 보입니다. 구름이 개면서 하늘이 맑아지고 푸르스름한 빛이 보일 거 같습니다. 하지만 사진기를 들이대보면 그냥 검은 하늘일 뿐입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요. 정말 오로라를 보고 싶으면 투어를 단 한번 신청할 것이 아니라 트롬쇠에 모든 걸 투자하고 며칠이고 오로라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혼자 우울하게 궁상을 떠니 즐겁게 노는 무리와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가이드도 내가 궁상떨고 있으니 마음에 걸렸는지 몇 마디 건넵니다. 굳이 오로라를 못 봐서가 아니라 원래 전 모르는 사람이랑 있는 걸 어색해해요. 이런 제 모습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느 날부터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디 외딴 나라까지 와서 이러고 있으니 썩 제가 싫어집니다. 제가 정말 싫어하는 것은 혼자 궁상떨며 어울리지 못하는 제 불쌍한 처지를 곱씹으며 더욱더 궁상떠는 것인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되었네요. 이러다가 상황이 어쩔 수 없으면 말도 붙이고 할 거지만 말입니다.

의미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낯섦을 마주하는 건 여행의 의미 중 하나이지요. 새로운 외부환경에 잘 적응 못 하는 평소 생각하지 않던 내 모습도 낯선 겁니다. 또 극점 근처에 온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낮에 해가 뜨지 않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생뚱맞은 곳에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비록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지요.

결국 내 여행은 싸구려 신파가 되어가는 중이에요.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목적한 걸 못 이루고는 결국 내 맘대로 되는 건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분해서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오로라도 보이지 않고 밖은 춥기만 해서 차에 다시 들어왔어요. 아까 얻어먹은 술 때문인지 감기 기운이 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차로 돌아왔습니다. 가이드도 돌아왔어요. 이미 약속된 가이드 시간도 지났습니다. 이제 돌아가도 누가 뭐라고 할 상황도 아니에요. 사람들은 오두막 아래서 모두 해안 쪽을 바라보다 돌아온 건데 오두막 반대편에 있던 운전기사도 돌아오는 게 보였습니다.

(차에 들어오기 전에 희미한 오로라를 보고 차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서 확실한 오로라를 본 걸 수도 있습니다. 오로라에 홀려서 기록을 세세히 하지 않았고 기억도 흐릿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기사 덕분에 오로라를 보았다고 모두가 손뼉 친 기억은 확실해요. 이를 생각해보면 제가 적은 대로 흐릿한 오로라를 보고 기다리다 오로라를 제대로 본 게 맞을 겁니다.)

운전기사가 오두막 반대편에서 오로라가 보인다고 했어요. 구름 틈새로 아주 잠깐이지만 어둡지 않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가이드가 오로라라고 말해주고 카메라로 오래 노출해 찍어 보여줘서 안 거지 몰랐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어찌 되었듯 오로라를 못 본건 아니게 되었어요. 가이드가 좀 더 있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들오들 떨고 있으니 반대편에 구름이 걷히고 오로라가 보였어요. 가이드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요. 처음에는 차를 빌리거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관측 지점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으면 엄청난 오로라가 나타난 게 아니라면 오로라가 나타났는지 지도 모르고 그냥 돌아올 뻔했어요. 가이드가 방향을 말해주고 어디 근처에 있다고 말해줄수록 오로라는 점점 선명해졌고 알아차릴 수 없었던 오로라의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지요.

적외선이나 자외선 사진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적외선과 자외선이 사진에 나오듯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적외선과 자외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저에게 그것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색을 설명하는 거나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요. 오로라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오로라를 설명하는 것이 딱 그렇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대상을 보는 건 놀라운 경험입니다. 하얀 건 구름이고 푸른 건 하늘이니 구름은 어디까지가 구름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데 처음 본 오로라는 어디까지가 밤하늘이고 어디까지가 오로라인지 구분할 수 없었어요. 제 머리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정보를 받아들여서 고장 난 느낌입니다. 오로라를 보고도 저게 맞는지 이미 사라졌는데 잔상이 남은 건 아닌지 얼마간 의심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오로라가 익숙해지니 움직이는 것도 보입니다. 오로라가 움직이는 건 정말 굉장한 광경이에요. 말 그대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요. 제 앞에 있는 건 맞지만 단순히 보는 거 이상의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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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로라를 보시다니... 너무 부럽네요
저는 오늘 처음 가입한 뉴비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좋은 글과 사진들 기대하겟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