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기일

in kr-writing •  7 years ago  (edited)

오늘은 외할아버지의 기일이다. 어렸을 적 부터 유난히 나를 귀여워해주시던 그 분.

아직도 그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꿈나라를 헤매던 깊은 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그 분의 시간은 멈췄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첫 기억은 우리집이라 불리는 공장안의 작은방이었고 아침이면 공장물로 양치질을 하곤 했었다.

기계 소리가 익숙해질 때 즈음 일을 그만 두고 타지에서 식당을 하시겠다는 부모님은 나를 외할아버지댁에 맡겼다. 그렇게 그 분과의 추억은 시작되었다.

언제나 맛있었던 기사식당의 계란이 올려져있는 함박 스테이크

제집드나들듯 방문했던 어린이대공원의 동물들

주말이면 항상 틀어져있던 롯데 자이언츠 야구경기

매일 담배 한갑반을 피시고 점심때 진로소주를 반주삼아 드시던 그 분.

자신의 손자가 다들 그렇듯이 철썩같이 나를 천재로 믿고 계셨던 그 분.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 줄 것 같았던 그 분.

하지만 집안 사정이 나아지면서 나는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됐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서 외할아버지와 점점 멀어져 갔다.

기껏해야 명절때 한번씩 뵈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가 폐암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병문안 차 방문했던 그 분은 과거의 건강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호흡기를 꽃은채 나를 보고 환하게 미소지으셨다.

그 순간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죄책감, 안타까움, 절망, 슬픔, 후회 등이 격렬하게 내 몸을 휩쓸었다.

하지만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것 정도였다.

그리고 몇달 후...그 깊은 밤이 찾아왔다.


다음날 일찍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그 분의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뒤로 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다 슬픔에 짓누른채 빈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었다. 현실이 현실이 아닌것 같은 감각이었다.

어떻게 장례식이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끝나있었고그렇게 그 분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순식간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 나는 생애 처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억눌린 무언가가 순식간에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 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족이 그 분을 기억할때, 아니 최소한 나라도 기억할때 그 분은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 분을 추모하며 이 글을 쓴다. 여러분들은 나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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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지원 감사합니다!

가슴아파요.. 그리운마음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ㅠ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

R.I.P

감사합니다ㅠ

함박스테이크와 진로소주 영원히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추억이니까요.

ㅠ위로가되네요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할머니 할아버지 다 같지 않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중한것들을 소홀히 한 대가는 너무나 크네요ㅠ

이 글을 읽으며 저도 절 키워주신 친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못해 드린게 너무 많아요 지금도 그 분을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분명한건 그분은 항상 제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따뜻한 한마디 감사합니다. 큰 위로가 되네요^^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

ㅠ으아 고생많으십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애잔함이 묻어 나오네요. 외할아버님이 지금도 항상 곁에서 지켜봐 주시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ㅠ 큰 힘이되네요

ㅠ 저도 이글 보니까 외할아버지 생각 나네요~ ㅠ

ㅠ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