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마사히코 저 / 김경원 역 | 이마 | 2016년 09월 30일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
머리말을 읽는 순간부터 이 책에 반하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는 단편적이고 불충분한 수많은 사람과 물건, 풍경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보는 사람이다. 많은 잣대와 기준에 맞춰 휘청거리면서도 꿋꿋하게 걸어가는 독자에게, 이러한 책을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의식하지 않는 일상의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을까. 바쁘게 살다 보면 그날그날의 하늘과 구름과 태양과 길거리의 풀꽃들이 보이지 않는다. 때로 하늘로 고개를 쳐올리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내 맘에 여유가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달으니까 말이다.
저자의 직업은 사회학자이다. 책 제목에도 사회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흔한 사회학 책이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독서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학 작업과는 전혀 상관없이 써나간 '사회학'의 감투를 쓴 서사시와 같았다. 사회학자라는 직업이 마치 일상의 편린들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데 능숙한 사람같이 느껴질 정도로 모든 서사는 시적이다.
"세계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온 천지 길바닥에 무수하게 굴러다니고 있다"
수많은 개인의 생활사를 채록하면서 사회를 연구해온 저자는 사회학자가 하는 이 일이 '단편적인 만남을 통해 일반화하고 전체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도 느낀다. 그래서 연구 기록으로 가치가 없는 채록들과 일상에서 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었던 작은 것들의 반짝임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어쩌면 나무보다 숲을 보는 작업에 익숙했다가 숲에서 나무를 보려는 저자의 본능적 습성이 한풀이처럼 이 책에 기록된 것 같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사건이든 오래도록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던 소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이것'이 된다고 말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닐 것들이 특별한 서사로 읽힐 때 낯선 아름다움을 읽을 줄 아는 특출함으로 사소해서 무의미하기까지 한 것들에 대해 소중히 적어나간다. 이렇게 깊이 들여다보는 사회학이라면, 문학과 다를 바가 없다. 난 문학을 읽듯 한 줄 한 줄 소름이 돋는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우리는 각자 단편적이고 불충분한 자기 안에 갇혀 있다. 자기가 느끼는 것이 정말로 옳은지 어떤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타자나 사회에 대해 개입한다. 그것이 가닿을지 아닐지는 알지 못하는 채, 끝도 없이 병에 담긴 언어를 바다로 흘려보낸다."
익숙해지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숫자와 상관없이 늙는다. 그렇기에 노화란 새로울 것이 줄어드는 하루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사소한 것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수많은 문장들을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독서로 안티에이징'인 셈이다. 이 책은 뇌의 안티에이징에 최적화되었다.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곧 숙련이라고 해석되지만, 사는 모든 풍경에 익숙해지고 권태로워지면서 '다 그런 거야, 원래 사는 게 다 그래'라는 태도를 보이는 건 고인 물에 사는 어리석은 어른과도 같다. 그것은 진짜 어른이 아니다.
진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창의력 높이기 책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이런 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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