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ylee's Life Magazine 6.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을 읽고 - 무기력한 현 세대에 대한 통찰

in kr-writing •  7 years ago 

Lilylee's Life Magazine 6.
Books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을 읽고 - 무기력한 현 세대에 대한 통찰


하류지향.jpg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을 읽었다.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적 통찰

이상의 문구가 표지에 적혀있다.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잡아끄는데 표지의 문구는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유가 뭘까?

이 책은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자리잡아버린 '글로벌 자본주의'가 기존 국민국가를 위협하는 현실을 조명하며, 생산활동보다 소비를 먼저 배움으로써 배움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려 하지 않고 흥정하려는 요즘 십대들을 분석하고 있다.

'생산보다 소비를 먼저 배운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집안에서 아버지의 구두를 닦는다던가 작은 집안일을 도움으로써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일을 해낸다는 성취감을 먼저 맛보았다면, 현재는 저출산 등으로 아이를 점점 떠받들면서 "넌 그런 거 하지 않아도 돼" 식의 가정교육이 이루어져 가게에게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소비행위를 먼저 배우게 됐다는 것이다. '이게 뭐가 문제인가?' 싶겠지만, 가게에서는 돈만 있으면 아이든 어른이든 차별없이 대접하며 깍듯이 접객을 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어려서부터 돈의 맛을 보고 흥정을 배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내 시간과 자유를 지불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나에게 뭘 해줄 건가요?"

이것이 요즘 아이들의 태도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한창 저출산이 시작되던(가정마다 많아야 2명의 자녀가 있던), 내가 어렸던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의 분석은 상당히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급속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확산이 개인화와 고립화를 부추겨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해체로 가족들이 부담했던 공동부양 및 양육의 의무를 사회가 맡게 되었다는 점'을 유발 히라리와 같은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통하는 법인가? 물론 그러한 대가족 제도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며,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여기에서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는 "'고립된 인간'을 '자립한 인간'으로 내세우는 것이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원을 받으며 1980년대 일본 사회에서 합의를 넓혀갔다"고 서술한다. '제발 내버려두세요'라며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의 대거 양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내 인생의 궤적을 훑는 것 같아 씁쓸했다. 기존 교육에 대한 반항심, 일로부터의 도피, 결국에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반항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는데 말이다.

종합문화학과 교수를 지낸 우치다 타츠루는 무도와 철학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개풍관'을 열어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각자가 자기다움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천하는 지성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내 인생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적어본다. 학교에서 배우는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소음을 신호로 변화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은 일단 보류하고, 아직은 이해가 안 되지만 주의 깊게 듣고 있으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경의와 인내심을 갖고 메시지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음은 결코 신호로 바뀌지 않습니다.

배움에 의문을 가지는 십대부터 아이를 키우는 3,40대까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베짱이가 될 수는 없다. 쓰레기를 치우고 건설현장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사람이 없다면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일이 AI가 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두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 LilyLee’s Life Magazine은 음악, 미술, 영화, 책, 공연전시 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쓴 글을 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글 기대해 주세요.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보팅 및 팔로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٩(๑❛ᴗ❛๑)۶
  • 본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생산보다 소비를 먼저 배우는 아이들,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이라는 대목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책을 바로 주문해서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후기와 성찰에 감사드립니다.

최근 읽은 책들 중 첫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깊게 읽은 책이었어요.
좋은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감기 조심하세요~

올려 주신 글 꼼꼼히 읽었어요. 생각이나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lilylee 말씀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내 생각을 제껴두고 외부 정보를 온전히 받아들여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배척만 하다 보면, 소음인지 신호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외부정보를 적절히 받아들이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고인 물은 썩으니까요.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좀 후회가 돼요. 문제를 공식에 대입해 풀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런 공식이 나왔는지 그 논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했는데, 당시에는 이걸 몰랐던 것 같아요. 언젠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모르는 것에 대한 경의와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가 있었다면 수학이 소움이 아니라 신호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져서 제게도 인상적인 구절로 다가옵니다.

구두를 닦는 일이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이든 간에 그 일에 자기다움, 즉 자기 삶의 우선시되는 가치와 맞닿는 지점을 발견해 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소음이 신호가 되는 배움의 과정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내가 중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을 사회에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배움은 혼자서는 어려우니 지역공동체가 뒷받침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고요. 저자는 경쟁이나 소비와 같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저마다가 자기다움이라는 가치를 생산해내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 같네요. 맞나요? ㅎ 그런 면에서 보면 스팀잇도 저자가 말하는 지역공동체 개념에 부합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