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표지판 디자인

in kr-writing •  6 years ago 

주로 흑백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상조회사 같다며 무척 싫어하던 구성원들이 많은 조직이 있었다. 그들은 요즘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밝고 화사한 색으로 디자인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요즘 상조회사 홈페이지를 클릭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 상조회사들은 색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그들은 밝고 화사한 색이 요즘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색(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밝고 화사한 디자인(색)은 그들이 좋아하는 '취향'이다.

그들의 말을 감각이 떨어진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척도다.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 조직의 외관을 소위 고급지고 세련되게 '장식(디자인)'하는 것은, 그 조직의 무능과 불합리를 감춰주는 거짓에 부역하는 일이 된다. 그 조직이 그 조직 구성원 및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악덕기업이라면 디자이너는 그 범죄에 협력하는 공범이 된다.

디자인은 외관을 꾸미고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품고 있는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쉽게 만드는 일이다. '김밥천국'의 메뉴판을 6성급 호텔 레스토랑의 메뉴판처럼 디자인한다면 '김밥천국'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

주변에 보이는 소위 '구린' 디자인은 그 조직의 정체성을 알기 쉽게 보여주기 때문에 나름 '좋은'디자인이다. 일종의 위험, 경고 표지판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그 디자인을 보고 그 조직을 피할 수 있다.

나쁜 클라이언트를 만난다면 그들이 요구하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의 위험성을 시각적으로 쉽게 알릴 수 있다. 그들의 범죄에 협력하는 아이덴티티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회의 공익에 기여하는 공공디자이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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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ta 님 반가워요, 저도 이런생각 종종 해요ㅎ 나쁜 클라이언트를 좋아보이게 포장해주는 일을 할 때에는...자괴감이 많이 들기도 하죠.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싫을 때가 참 많습니다.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