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영화 감상을 위한 몇 가지 팁 (W/ 팬텀 스레드)

in kr •  7 years ago 

안녕하세요. 나루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를 봤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아 어떤 방법으로 이 영화를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평소에 제가 영화를 보는 기준에 따라 이 영화를 소개해볼까해요.


색다른 영화 감상을 위한 몇 가지 팁


- 미장센

영화에서 쓰이는 미장센은 단일 화면에서 담는 영상미를 가리킵니다. 제한된 장면 내에서 대사가 아닌, 화면 구도, 인물이나 사물 배치를 이용해 표현하는 연출자의 메시지와 미학을 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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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 시퀀스를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죠. 이 한 장면 속에 있는 각종 소품들, 배우의 의상, 벽지, 반대편 의자에 걸려있는 옷까지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미학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름 모를 어떤 명화가 떠올랐어요. 굉장히 회화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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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을 이용해서 감독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여주인공(엘마)과 남주인공(우드콕)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꽤 떨어져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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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씬의 다른 숏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우드콕이 친누나(시릴)와 훨씬 더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드콕이 엠마보다 시릴을 심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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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후반부입니다. 이 장면에선 우드콕이 엘마와 더 가까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 구성을 통해 감독이 우드콕의 심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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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촬영 방식에 따라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아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드레스 디자이너인 우드콕이 엘마에게 자신이 만든 드레스를 입혀주는 장면인데요. 익스트림 로우 앵글(극단적으로 낮은 곳에서 위를 찍는 구도)로 찍힌 씬입니다. 하늘 거리는 드레스의 천이 마치 바다에서 유영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이 장면은 꼭 음악과 같이 들어야합니다 ㅠㅠ)


- 영화 속 음악

저는 영화를 볼 때 음악을 굉장히 꼼꼼히 듣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입니다. 음악을 하지 않는 분들은 음악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실텐데요. 아래의 영상을 보겠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시끌벅적한 파티와, 그 안에서 '석별의 정' 멜로디가 나옵니다. 조금 더 집중해서 음악을 들어보시면 그 아래 조용하게 나오는 음악이 들리실거에요. 이는 우드콕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음악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석별의 정'은 파티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시스적 음악입니다. 그와 함께 나오는 영화음악은 실제 파티 장소와는 상관 없는, 우드콕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비디제시스적 음악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이런걸 신경쓰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음악과 함께 스토리를 받아들이곤 합니다. 저 장면에서 만약 신나는 음악이 나왔다면 우드콕의 심리가 또 다르게 느껴졌을 거에요.


- 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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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봅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마치 크레딧이 영화의 끝인 것처럼 기다렸단 듯 조명이 켜지는 것은 정말 애석합니다. 엔딩 크레딧도 영화의 연장입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는 음악은 그 영화 전체를 함축하고 있어요. 진짜 잘 만든 영화는 크레딧 음악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영화를 곱씹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노력한 기억하지 못할 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눈으로 담아봅니다. 그러면서 간절히 바랍니다. 크레딧과 음악이 딱 맞게 끝나길. 그리고 그럴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마지막까지 완벽한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팬텀 스레드의 엔딩 크레딧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반복되는 한 음에서 조니 그린우드의 재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마지막 음을 듣고 전율, 소름.. 황홀할 정도였어요.


이 영화가 정말,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감독을 항상 우디 앨런이라고 말했어요. 어제부터 그 마음을 바꿨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이라고요.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그리고 팬텀 스레드. 한 사람의 필모그래피라고 하기엔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PTA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갈수록 진화하는 PTA의 끝은 어디일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어쩌면 영화를 압도하는, 그 음악을 만든 조니 그린우드는 이로써 또다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저는 영화 음악은 영화에 종속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영화를 보기 전에 OST를 듣지 않아요. 그런데 이 앨범을 조니 그린우드 신보인 줄 알고 듣게 되었습니다. 꽤 많이 들은 후에야 PTA 영화의 OST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어요. 실제로 영화를 보니 제 상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입니다.(역시 영화 음악은 영화에 종속되는 게 맞아요.)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과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았고, 그래서 영화음악가를 꿈꿨던 적도 있지요. 그 때 영화과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요즘 아무 생각없이 영화 자체만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만, 지금껏 그냥 영화를 보셨다면 한 번쯤은 영화 속 배치, 구도, 음악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장센을 소개하며 제가 올렸던 장면입니다. 음악과 함께 들으면, 영상과 함께 보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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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 최고의 영화 리뷰 중 하나로 꼽고 싶네요.

특히 엔딩 크레딧 음악에는 전혀 전혀 전혀!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다음부터는 엔딩 크레딧 배경 음악을 꼭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루님 덕분에 영화를 보는 시야가 한 단계 넓어진 것 같습니다. 감사를 드리면서~ 이런 글은 홍보해야해

@홍보해

이런 극찬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독립 영화관에 가면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주지 않습니다. 자의반 타의반 크레딧을 끝까지 보게 되지요. 저는 묘한 반발심에 CGV, 메가박스에 가서도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ㅎㅎ 한번쯤은 크레딧 음악을 들어보시면 색다른 매력을 느끼실거에요. 홍보 감사합니다!

올리신 첫 화면이 정말 명화같군요.
영화에 대한 이해가 느껴집니다.
이 영화 찾아서 봐야겠어요. ㅎ

네 한 번 보세요. 가볍게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친절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미장센~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 글로 감이 잡히네요^^ 영화를 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ㅎ

부족하지만 도움이 됐다고하니 기쁩니다. 영화를 볼 때 조금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이지요. 나중에 시간 되면 팬텀 스레드도 한 번 보세요! 정말정말 좋은 영화랍니다.

음악 좋네요. 연주해보고 싶을 정도로요. 영화 받아놨다가 나중에 꼭 봐야겠습니다!

원래 진짜 좋은 음악을 들으면 연주해보고 싶지 않나요? 저도 듣자마자 넘 좋아서 조금 쳐보고 있답니다! 오쟁님의 연주로 들으면 더 좋을텐데요~~ 영화 꼭 보세요! 진짜 좋아요!

미장센이라는 말이 영화에서 저런 용어가 되는군요 몰랐습니다 화면보다는 주로 스토리 보고 혼자 생각하면서 보는것을 더 즐기다 보니 으음.... 묘한 이끌림이 있네요

대부분 스토리를 쫓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당연하고요. 저는 좀 세세히 보는 걸 좋아라하는 편입니다. 봤던 영화를 한 번 더 보기도 하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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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7b13님 안녕하세요. 모찌 입니다. @torax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미장센분석에서 영화는 역시 시각예술이라는게 느껴집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영화를 그리는 만연필은 카메라고, 영화는 카메라라는 만열필로 그린 그림과 같아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화는 역시 시각예술이지요. 아름다운 영상에서 오는, 그 영상미가 압도하는 힘이 엄청난 것 같습니다. 카메라라는 만년필로 그린 그림 같다는 말이 재밌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정말 아침식사 주문 장면 예술이네요....
저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청소하는 직원 들어올 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ㅎㅎㅎ 쿠키영상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말이죠..
팬텀쓰레드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상 클립을 보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해놓고 잊고 있었던 영화네요. 다시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저 아침 식사 장면은... 정말정말 대박입니다. 사랑할 수 밖에 없어지는 두 사람입니다. 저는 가끔 영화가 너무 별로이면 그냥 나올 때도 있는데요. 직원분이 들어오시면 왠지 빨리 나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아하지 않습니다.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아하실거에요!

아!!! 이것도 오늘의 영화리스트에 올려야겠어요. 저도 미장센과 음악을 영화를 평하는데 주요한 요소로 보고 있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그렇답니다.

오늘도 호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