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를 불었습니다,
아버지는 목관악기
소리는 소리의 방에 푸른 공원을 짓고
오늘 저녁 초록은 아버지 계신 데로 흐릅니다
푸른 피리가 빛나는 오후
소리는 빛나지도 않고 그늘에 흐릅니다
소리의 족보를 짓습니다
아버지는 목관악기
텅 빈 공중으로 꽃들이 피고
텅 빈 지상으로 꽃들이 지고
피리로 봄을 불었습니다
아버지 마음속에서 세월과
또 한 세월이 시소를 타고
푸른 공원의 푸른 벤치에 앉아
종일 피리를 불었습니다
아무리 불어도 아무리 불러도
아버지 먼 데 계시고
나는 생각들을 소리 속에 가만히 재우고
소리는 소리의 방에 푸른 가족사를 새기고
- 아버지 그런데 이 소리들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 나무로 만든 소리는 나무로 돌아간단다
아버지의 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저 나무들과
아버지의 봄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가는 소리들과
피리와 꽃들이 부딪히며 불던, 불던, 바람들과
나란히 앉아
종일 피리를 불었습니다
아버지를 불었습니다
박진성 본인이 맞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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