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구두 가게 점원 이야기

in kr •  7 years ago  (edited)

20대 중반, 막 로스쿨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선물을 사주겠노라고 날 백화점에 데려가셨다.

비싼 신발을 막 살 수 있던 드문 기회라 가급적 여러 매장을 둘러보고 살 생각이었다. 근데 처음 방문한 매장을 나올 수가 없었다. 물건을 파는 남자 점원이 워낙 열성적으로 세일즈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을 묻더니 거기 어울릴 것 같은 신발들을 추천했는데 그 설명이 그렇게 그럴 듯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두벌도 아니고 대여섯벌을 권했는데 매번 내 밑으로 와 신발을 직접 신겨주고 구두끈까지 매주었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해서 그랬을까, 부담이 느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물건을 팔려고 억지로 고생하고 있다는 인상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진짜로 내 신발을 신겨주는 걸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결국 우리 가족은 그 가게에서 구두를 샀다. 물건을 계산하던 그 남자는 나에 대해 묻다가 내가 로스쿨에 입학한다고 말하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때 그의 얼굴에 드러난 진심어린 축하와 그 이상의 자신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쾌활하고 건장한, 잘난 수컷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내였다. 어쩐지 부모님이 사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신나서 백화점에 온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가 지금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일평생 그렇게 물건을 열심히 파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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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잘읽고 가요.
또놀러올께요 ㅠㅠ

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도 놀러가겠습니다 ^^

성공할사람은 이렇게 보이는군요 .. 좋은 묘사가 있었기에 더 재밌구읽었슨다 ㅋㅋ 늘 글을 재밌게 쓰시는거 같아요 ㅎ

ㅎㅎ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일은 모르는거긴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런 임팩트를 남긴 사람이니... 필히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ㅋㅋ

무엇을 해도 성공할 것 같은 분이네요.

그렇죠 ㅋㅋㅋㅋ 아마 잘 살고 있을 겁니다

^^ 인상이 강하게 남으셨나봐요

ㅋㅋㅋ 강하게 남았죠.... 아직도 기억나요

어떤 일이든 진심 열정을 가진 자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방문해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뭘 해도 성공할 모양입니다. 나도 내 일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ㅎㅎㅎㅎㅎ lekang님 글에는 늘 스스로의 일에 대한 애정이 보입니다. 멋지십니다.

  ·  7 years ago (edited)

마지막 줄은 세일즈 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찬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고의 찬사이긴 하나 또 받기 어려운 찬사가 아닐까 싶네요. 사실 백종원 나오는 프로그램 봐도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어도 자기 자존심 때문에 물건을 못 파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처음 정장을 입은 날이 생각나네요. 까다롭게 굴었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남자는 정장을 고를 때는 변태 같을 필요가 있다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업에 자부심과 열정이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벌써 뭔가가 보이네요

사실 남자는 정장을 고를 때 변태 같아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깨선부터 손목까지 등등 물론 정우성 조인성 수트빨은 아무나 나오는 게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옷이 정장이니까요

정장은 변태 같이 고르지 않으면 멋이 안 살죠.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요즘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선지 더욱 와닿네요.ㅎㅎ

ㅎㅎㅎ 사실 그렇지요.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젊은 사람이지만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쉬운 게 별로 없어서 그렇게 안 하죠 ㅋㅋㅋㅋㅋ

정작 본인은 깊게 생각하고 통찰을 내리는 재능을 바랄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금전 문제가 인생의 많은 것을 해결하는 현실에 금전이 넉넉해지는 재능이 우위에 있음이 명확하기는 합니다.

ㅋㅋㅋㅋ 무엇을 바라느냐에 따라 어떤 재능이 더 우위인지는 다르겠으나 저 같이 명예보다는 금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가치 판단은 명확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