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나 트와이스만 듣지는 않는 남자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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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이 엄습할 때 나는 트와이스의 샤샤샤를 듣는다. 약간 치어업이 된다. 작심하고 비탄에 빠지고 싶어지면 하이페츠가 연주한 비탈리의 샤콘을 튼다. 우주처럼 외로울 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좋다. 또 마일스 데이비스 아, 혼자 위스키를 마실 때 마일스 만한 음악은 없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첫 음악 포스팅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이어야만 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니었다. 이런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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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전축 앞에서 배를 깔고 '재즈의 역사' 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턴테이블을 켜고 LP를 올리셨다. 그때까지 턴테이블을 켤 일은 거의 없었다. 내 재즈 음반은 다 CD였고 그때 나는 전축을 점령한 채 종일 재즈만 들었기 때문이다.

틱틱 LP의 잡음이 흐려지자 현악기가 울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다. 이윽고 금관악기가 폭발했다. 금빛 광선이 구름을 뚫고 쏟아졌다. 팀파니의 우레가 저항했지만, 소용 없었다. 암흑이 걷히고 광명이 밝았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눈앞에 펼쳐졌다. 소름이 돋았다. 2악장까지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3악장 아다지오에서 조금 숨을 돌렸다. 합창 3악장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저 위대한 4악장이 시작됐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알 만한 멜로디였다. 성탄절을 즈음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멜로디가,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찬송가가 사실은 베토벤 합창 4악장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4악장에서부터 성악진이 가세한다. 바리톤이 '오 친구여, 이런 소리가 아니다. 더 즐겁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자'며 노래를 시작한다. 가사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베토벤이 일부 수정했다. 3번째 변주부가 유명하다. 전 성악진이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라고 외친다. 합창에서 가장 눈부신 파트이기도 하다. 종장으로 갈수록 열기가 달아오른다. 오케스트라와 성악진의 환희 속에 곡이 끝난다.

일반적 추천앨범


  • 지휘 페렌츠 프리차이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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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호가들이 최고의 레퍼런스로 꼽는 음반이다. 프리차이의 합창은 과한 부분도, 모자란 부분도 없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가히 천의무봉이다. 50년대 후반에 녹음되었으나, 음질이 훌륭하다.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다. 밸런스가 잘 맞는다.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 애호앨범


  • 지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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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포한 합창이다. 보통 합창 교향곡은 '암흑에서 광명으로'로 전개한다. 푸르트뱅글러는 암흑에서 더 깊은 암흑으로 치닫는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4악장 끄트머리에서의 질주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 앨범은 호불호가 엇갈린다.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하며, 싫어하는 사람은 '이것은 베토벤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황 녹음한 앨범이다. 전시의 어두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녹음 상태는 좋지 않다.

  • 지휘 헤르베르트 본 카라얀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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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의 마지막 합창이다. 카라얀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와 성악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80년대 베를린필의 연주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다. 폭발적이다. 1960년대에 녹음한 카라얀의 베토벤 9번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80년대에 비해 차분하고 냉정하다. 1976년 녹음은 혹평이 많다. 건조한 녹음이 몰입을 방해한다. 70년대 녹음은 내 합창 첫 경험이기도 하다.

  • 지휘 세르쥬 첼리비다케 연주 뮌헨 필하모닉 녹음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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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연주다. 첼리비다케는 지독하게 느리게 연주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는 느린 템포가 음악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나마 합창은 첼리비다케 기준에서 빠르게 연주하는 편이지만, 다른 연주에 비하면 여전히 느리다. 이것이 첼리비다케의 마법이다. 그는 느린
    템포 속에서 에너지를 응축하고 또 응축한다. 클라이맥스에서 그 억눌린 힘을 쾅, 터뜨려버린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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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자체를 평소에 잊고 살아서 제 귀엔 웬만하면 다 좋게 들립니다~ ^^ 즐거운 한 주 되세요!! 가즈앗!! ㅋ

맞습니다 사실 앨범으로 나올 정도면 거의 다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이 되는 연주이지요. 호랑이 기운 넘치는 일주일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내즈앗!!! ㅋ

첼리비다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의 모델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지독하게 느린 연주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라서 그렇고, 실제로 연주자들을 면박 주는 일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거장들의 앨범을 다 알고 계시네요! 대단합니당. 저는 갠적으로 토스카니니의 연주도 좋아하는데 요즘 새로나오는 음질을 따라갈 수가 없더라구요!
좋은 포스팅 감사해요! 팔로우할게요~

아 강마에의 모델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죠 아주 뛰어난 인품을 지닌 분은 아시셨던 것 같아요. 오 토스카니니는 뭐랄까 맺고 끊음이 되게 분명한 느낌입니다. 팔로우 감사합니다~

👍👍👍👍👍👌👌

저는 하루키 때문에 라흐마니노프을 좋아하게 됐어요. 쇼팽도 좋아하구요. 개인적으로 아리아 음악도 좋아해서 유튜브로 즐겨 찾아보기도 해요. afinesword 님처럼 애정하는 특별한 앨범은 없지만^^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구요. 나중에 찾아 들어봐야겠어요.

그랬군요. 하루키가 클래식도 좋아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클래식 막상 들으면 좋은데 지루할 거라는 편견이 일종의 진입장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음악 교육의 폐헤인가...

아이돌을 주르륵 나열하셨다면 웃기기는 할 것 같습니다. ㅋㅋ

저도 얼마전에 영화를 보는데 거기서 피아노신이 자주 나오거든요. 그걸 보고나니 클래식도 듣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아이돌은 잘 몰라서... 트와이스랑 레드벨벳은 압니다 ㅋㅋ

흐음... 클래식 음악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관심이 가네요~ 잘 읽었습니다. 팔로우하고 갈게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클래식과 재즈에 대해 주 1회 포스팅 할 생각인데 잘 될는지는... ㅋㅋ 꼭 저 앨범이 아니어도 훌륭한 합창 연주가 유튜브에도 많아요. 시간나실 때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쇼팽과 라흐마니노프를 즐겨듣습니다.

오오 저도 두 작곡가 좋아합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_+

마일스 데비스만 알아들었습니다. (애정하는 아티스트입니다. +_+)
덕분에 좋은 곡들 잘 알았습니다!

저도 마일스옹 애정합니다. 담주에 마일스 데이비스 포스팅 해볼게유. (안 할 수도...)

헉.... 고상하고 우아하다....
저도 아버지의 고상한 취향덕분에 집에 클래식 음악
엘피판들이 많아 어릴때 자주 들었어요. 하지만 외우는건 잼병이라.. 누구음악인지... 제목이 뭔지... 하나도 모른다는게 함정이죠. 피아노도 꽤 오래쳤는데 외우는 악보하나 없다는거... 전 예술계로 안가길 잘한듯합니다. ㅎㅎ

이제야 제 진면목을 알아봐주시는... ㅋㅋ 와 저는 악보 까막눈이에요. 피아노 잘 치시는 분들 보면 부럽습니다. 엄마가 피아노학원 가랄 때 갈 걸

와..다들 음악 취향이 고급지시다..

그중에 제일은 트와이스...

아..역시...

  ·  7 years ago (edited)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 실황을 수업시간 1시간을 오롯이 다 써서 들려주셨던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비탈리의 샤콘느. 새벽에 들으면 우울함의 카타르시스가 폭발하죠-(장영주 버전도 좋아합니다)

와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장영주 샤콘느도 찾아 들어보겠습니다-

  ·  7 years ago (edited)

와...클래식도 좋아하시는구나!!
본문에 앨범 모두 들어보겠습니다!!
과연 제취향이랑 비슷할지 ㅎㅎ

저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차이코스프키의 바이올린협주곡 35번을 가장 좋아합니다. 아직도 들을때마다 전율이 일고 예전에 유럽인가 독일인가 어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때 직접 들었는데 클라이막스에선 숨이 턱 막히면서 눈물까지 나더군요 ㅎㅎ

아 좋죠 차이콥스키 정말 좋아합니다. 오늘은 그거 들으면서 일해야겠네요. 상기한 앨범은 혹시 아이폰 쓰시면 애플뮤직에서 찾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합창은 워낙 인기가 있는 곡이어서 꼭 위의 앨범이 아녀도 좋은 음반이 많습니다. 유튜브 등에서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어렷을적엔 누나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클래식음악을 정말 많이들었습는데 ㅎㅎ 저는 클래식음악은 잘모르지만 ㅎㅎ 항상 강렬한 에너지를 받았던 곡들이 믾았던것같습니다 ㅎㅎㅎ
팔로우 하고가겠습니다 ^^

좋은 곡들이 참 많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