洋務運動

in kr •  7 years ago 

洋務, 洋에 힘쓴다. 洋은 西洋이란 뜻인데, 淸末에 西洋문명을 배우자고 淸나라에서 일어났던 운동이다. 淸末에는 中華가 서양 열강에 엄청 얻어터졌는데, 淸이 서양열강을 이기고자, 그동안 겪은 수모를 갚고자, 中華로서의 자존심을 접고 西洋 문명을 배우기로 했다. 이때에 나온 주장中 하나가 東道西器였다. 道는 中華에 두고 그릇은 西洋문명에 두자. 여기서 道는 정신을, 그릇은 과학, 기술 따위를 뜻한다. 결국은 東道西器가 채택되어졌다. 그리고 열심히 그릇을 배웠다. 한 30년동안 軍을 서양식으로 바꾸고, 무기창도 서양식으로 만들고, 군함도 서양에서 들여오고, 그 결과, 北洋함대가 만들어졌다. 北洋함대에서 우두머리는 이홍장이었고, 洋務派는 그동안 노력에 내심 뿌듯함을 느꼈을 게다. 사람이 그렇다. 뭔가 노력해서 어떠한 결과를 이루었으면 그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때에 마침 조선에서 일이 터졌다. 동학농민운동이 터졌다.

洋務派는 그동안 저들이 기울인 노력이 과연 어떠한지를 알고 싶었을 게고, 조선 농민들이야 안중에도 없었을게다. 洋務派가 노린 상대는 일본이었다. 淸도 그랬지만 일본도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온나라를 열심히 바꾸었으니깐, 洋務派는 일본을 상대로 해서 한번 그 힘을 시험해보고자 했을게다.

그래서 淸軍과 일본군은 조선에서 한판 붙었다. 청일전쟁이라고 한다.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서 淸軍이 일본군에 박살이 났다. 조선에서, 서해에서, 여순에서, 줄줄이 박살이 났다. 淸이 서양열강을 상대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고작 일본에도 박살이 났다. 淸이 어떤 나라였고, 일본이 어떤 나라였는가? 淸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대대로 중심이었던 中華를 이어온 나라였고, 일본은 그 中華를 열심히 배운 나라였는데, 그런 일본에 淸軍이 박살이 났으니 洋務派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자살하고 싶지 않았을까? 온갖 자존심을 접고 西洋문명을 배웠고, 그동안에 온갖 노력을 들였는데, 1·2년도 아니고, 약 30년동안 힘썼던 온갖 노력이 한순간에 박살났으니 그 참담한 마음이 오죽 했겠는가?

그런데, 淸은 일본에 왜 졌을까? 淸은 곧 中華인데, 일본이야 그 中華를 따르던 작은 나라였고, 규모나 문화나 淸이 일본에 질만한 이유는 없었지만 왜 졌을까?

洋務運動은 그 방식이 東道西器였다. 그에 비해 일본은 維新이었고, 洋務派는 西器만을 받아들였지만 일본 維新派는 西道西器를 몽땅 다 받아들였다. 말 그대로 維新이었고, 말 그대로 維新했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건축양식, 요리 따위까지도 西洋式이면 몽땅 다 받아들였다. 그렇게 완벽하게 西洋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에 淸軍은 박살이 났다. 洋務派는 西洋문명 中 일부만 받아들였지만 일본 維新派는 온 西洋문화를 받아들였다.

문화라는 건 總體다. 뭔가가 하나 있다면 그만으로는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알든 모르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뭔가가 있다. 이는 필요하고, 저는 필요없고, 그래서 이만 받아들이자. 이런 자세는 곤란하다. 뭔가를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몽땅 다 배워야 한다. 저가 필요없다고 자기가 여긴 무언가까지 배워야한다. 따지지 말아야 한다. 이는 어떻다. 저는 어떻다. 이는 중요하다. 저는 不중요하다. 이는 필수다. 저는 非필수다. 이런 자세로써는 제대로는 배우지 못한다.

洋務運動이 역사에서 이를 증명한다. 取捨選擇해서는 제대로 배우지는 못한다. 싫든 좋든, 몽땅 다 배워야한다. 그래야 훌륭한 성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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