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3학년 무렵이었다. 모르는 어른들을 함부로 따라가면 안된다는 부모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무렵만 되면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교회였다. 온갖 선물들로 치장되어 분간도 할 수 없을 만큼 알록달록함과 낯선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항상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낯설게 생각했는데 그 분들은 날 보면서 전혀 낯설지 않게 여기니 신기했다.
부활절, 크리스마스면 그렇게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만 받고는 함께간 동생과 돌아오기 바빴다. 부활절에 받은 달걀이 정말 병아리로 부화할거라며 그 날 내내 들고다니다가 깨먹은 기억이 있다. 어느 일요일날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길거리에 성경을 들고 교회를 가는 사람을 보고 아버지가 한 말이 기억난다.
“미친놈, 주말마다 교회가서 돈이나 바치고 있네. 그 시간에 일이나 더 하지”
(여담이지만 어릴적 부모님이 남들을 욕한 기억은 정말 뇌리에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박혀든다)
주택가에 있었던 집에 선교를 하러 온 사람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정말 단호하게 사람이 들어올 수 없게 하셨다. 재밌는 것은 그 외에 화장품 판매원, 아이들 학습지 판매원분들은 얼마든지 집에 들여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신청을 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에게는 귤을 거의 바구니 째로 건내며 너그러움을 주시던 분이었다.
예측컨대 부모님 세대에 분명 기독교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이 커서 다자라 사람들을 직접 찾아 만나기 전까지는 주변에 종교인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모태신앙이라는 분들을 만나면 그들의 가정사가 궁금했다. 조상님들의 어디부터 모태신앙이었을까? 모태신앙이면 불가항력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거기다 때론 그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종교인들의 행동이나 이야기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분들의 교회에서도 그런 분들이 가끔 존재하는가 라며 넘어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다시금 종교인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 자체가 기독교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사립학교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사님의 수업이 있었고 가끔 학교 옆 교회를 전교생이 가서 특별활동을 하기도 했다.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수업을 해주시는 목사님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수업 때 얘기하는 것들이 그래도 당시 학생이었던 나에게 꽤나 진솔하게 들렸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처럼 기독재단인지도 모른 채 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럼에도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목사가 하는 일이 뭔지를 조금이나마 진솔하게 설명해주신 분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그냥 진솔한 사람이 좋더라. 그들이 말을 할 때 적어도 나를 조롱하거나 속이려고 하지 않음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좋다. 하나 둘 대화에서 거짓이 드러나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을 멀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또 생각난 내용이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도시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가 건설되고 교육이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학생이 배워야 할 과목들은 자꾸만 분류하고 구분하며 나누기만 했나보다. 당연히 공통되거나 안정적인 커리큘럼을 만들기엔 가장 적합한 것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게 옳은 것일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해야되지는 않을까 의심이 든다.
한 곡의 대중가요에서도 문학, 시, 음악, 음향효과, 춤, 사회적 시대적 반향이 담겨 있는데 여전히 우리는 문학, 국어, 음악 등을 나눠서 배우고 난 뒤 합쳐보질 못한다. 누군가 한 말이 기억이 난다.
“결혼은 배우자를 통해 서로가 다시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 다시금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의 학교 숙제 혹은 특별활동에 한 번쯤 참여하면서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단순히 하나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인데도 복합적으로 아이에게 이런 분야에 교육이 될 수 있겠구나 혹은 어릴적 배울 때는 몰랐던 통합체의 신선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들어서 기억에 남는 종교인은 단연 짝사랑했던 여학생이었다. 공대 특성상 교내에서 수업을 들으며 만날 수 있는 여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적었다. 그러다 알게된 그녀를 고백도 안하면서 거의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년간 짝사랑을 했었다.
서로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했기때문에 만날 기회가 많았다. 도서관에서 공부도 같이하고 과제도 도와주고 밥도 같이 먹으며 이야기도 많이 했다. 혹은 그녀 입장에선 단순히 과에서 공부를 그래도 잘 하는 축에 속했던 나와 함께 지내는게 이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백을 할 기회가 많았지만 정말이지 머릿속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될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주중에는 늘 과제에 바빠 공부를 같이 하거나 문제를 함께 푸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주말에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을 때면 그녀는 부리나케 집으로 가 일요일에 교회를 갔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그녀가 주말에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종교적으로 신실해서 그런줄 알았지만 속사정은 교회 청년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으로 알게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교내에서는 내가 가능성이 있을것이라며 장담하며 지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녀에게 교회는 가정 다음으로 사람들을 매주 만나며 친분을 쌓는 제 2의 사회였고 학교나 직장은 그 다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학기에 휴학을 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정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처참한 거절 100%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방학 어느 비오늘 날이었다. 당시 방학임에도 지도 교수님이 연구실에서 일을 배워보라는 조언에 방학동안 학교 주변에서 더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방학 동안 교내에서 어떤 교육을 듣는다고 하여 어쩌다 교육장까지 데려다 주게 되었다. 곧 방학이 끝나고 나면 휴학을 하게 되어 못보게 될 것을 아쉬워 하면서 나름 고백을 준비하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선물 상자에 딱 그 크기만한 휴대폰 고리 인형을 담아 두었었다.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도 요상한 선물이었다. 도대체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휴대폰을 많이 보거나 만지작 거리는 그녀를 생각하며 폰 크기 만한 인형을 악세서리로 준비하고야 말았다. 선물 상자도 참 요상한 반짝이가 가득 붙어 있는 파랑 무늬에 리본이 달린 상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용도로 쓰는지 알리도 없었다. 그 상자 안에 직접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 ‘나 너 좋아해’ 라는 쪽지까지 메모지에 적어 넣어뒀었다.
교육장에 다다르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줘야할지 내가 직접 말을 해야 될지 생각만 하다 그녀가 교육장으로 훌쩍 들어가고 말았다. 아차하면서 그냥 갈까 어떡할지 고민을 하다 문자를 보내 그녀를 다시 불러내서는 손에다 박스만 쥐어다 주고 나왔다. 분명 메세지로 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 휴대폰을 끄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2시간 뒤에 슬며시 꺼내 확인해보니 그녀는 정확히 ‘친구로만 지내고 싶다’ 며 선을 그었다.
그 뒤로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아니 못만났다고 해야될까. 그 마지막 학기에 나는 졸업을 하였고 그녀와 어떻게 되었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그저 ‘차였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숨기고 싶은 고백이었다.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스스로 종교를 핑계삼아 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억지를 부리며 짜증을 냈던 때.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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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 담백하게 글을 잘 쓰셨네요 술술 읽어내려가면서 공감도 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신기한것이 남자는 여자와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이 지내면 없던 감정도 생기는데 여자는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네요
고백은 시작점이 아니라 때를 맞춘 확인절차라고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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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스스로 금사빠 기질이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함께 짧은 시간이라도 보낸 사람들은 다 좋아했더라구요. 이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피곤하고 느낄 때가 있지만 ㅎ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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