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차별적 언어들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in kr •  7 years ago  (edited)

페미니즘을 비롯하여 각종 혐오와 차별에 맞선 운동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 요즘 느껴진다. 꼰대들의 발악도 한층 더 거칠어진 것 같고...

업무 이야기 외에는 평소 사적인 이야기를 안 하시던 상무님이 갑자기 요즘은 여자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느니, 조심해야 한다느니 같은 말을 하시고 예전엔 그럼 말을 함부로 해도 됐었나?, 미투 운동과 개헌 등의 이슈가 계속해서 다뤄지면서 뉴스 이야기를 하다보면 예전보다 더 자연스럽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피부로 와 닿지 않던 온갖 차별과 편견에 가득한 발언들을, 그것이 의도한 발언이든 무지의 소산이든간에, 더 자주 듣게 되는 것 같고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뉴스 아래에 이어지는 댓망진창의 현장이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는 체험하며 더 힘이 쭉쭉 빠지곤 한다.
하인라인의 말처럼 '인간의 멍청함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이 바닥의 끝은 어디일까가 궁금할 정도로 상상하지도 못할 법한 발언들을 듣게 될 때도 있다.

Girls Can Do Anything 문구가 써 있는 핸드폰 케이스를 썼다는 이유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 낙인을 찍고 (일단 페미니즘이 왜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지..?) 분노를 표출하는 남자들이 온라인에서만 보이는 나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더 좌절스럽다.

그리고 머리로는 강하게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막상 그런 발언을 직접 듣게 되면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공격(?)을 받는 느낌으로 아무 말을 못하게 되기도 하고, 내가 여기서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게 될까, 여기서까지 내가 이 사람과 논쟁을 해야하나 등의 생각 때문에 아니라고 말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은 것이다. 특히 그런 빻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보다 나이가 많고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말을 해도 못 알아들을 만큼 자기 고집이 쎈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러한 나의 비겁한 모습을 보면 자괴감도 들고 더 큰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며칠 동안 내가 직접 들은 발언들이다.

  1. 점심 시간에 밥을 먹다가 식당에서 나오는 뉴스에 이윤택, 조민기, 안희정과 같은 성범죄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미투 운동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때 회사 남자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팀장이 대뜸 저 사람들 다 한 방에 훅 가 버렸다고 하면서 '이래서 한국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순간 말문이 턱 막히면서 도대체 어떤 논리로 생각을 해야 저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나 이외에 다른 아무 누구도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다들 웃고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거기에 내가 아니다고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예민한 사람이 되고 왜 이게 옳지 않은 발언인지에 대해서 설명까지 해줘야하는 상황이 될 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 또 다른 날 점심시간, 이날은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는데 평소와 다르게 이사 한 명도 함께 합류해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날의 화두는 펜스 룰이었다. 요즘 남자들 조심해야한다,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말과 함께 그냥 그럴 기미를 보이지 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회식 자리에서의 성추행이 엄청 만연했다며 본인이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예전에 성추행이 있었는데 그 다음날 피해 여성을 가해자의 상사가 불러내어 일을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1천만원을 주고 합의를 했고 여성은 결국 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회사에서 일이 터지기 전에 빨리, 잘 수습한 예시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가 잘했다는 건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으며, 그 사실을 알고도 상사가 그 가해자를 징계한 게 아니라 피해자를 입막음 시키고 그만두게 만든 게 어딜 봐서 '좋은 예시'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도 나는 이사님의 말에 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냥 허허 웃으면서 '근데 결국 그만 둔 건 여자쪽이네요'라는 말만 간신히 했을 뿐이었다.

3.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이사가 이번에 자기 휴가로 베트남을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베트남 갔었던 이야기를 하고 이러던 중, 어쩌다가 여성의 사회진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베트남에서 여성들으 사회적 지위가 어떤 편이냐는 질문이 나왔고 나는 한국에서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무조건 우리보다 못 살고 모든 영역에서 다 우리보다 수준 이하일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성평등이나 여성의 사회진출 등의 면을 보면 오히려 베트남이 한국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사가 한국도 여자가 살기 좋은 사회다, 한국이야말로 모계사회가 아니냐는 말을 하며 이렇게 여자를 우대해주는 나라도 흔하지 않다, 여자가 하고싶은 거 다 하는 세상 아니냐 등등의 말을 하며 '자네도 나중에 결혼을 해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거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같이 있던 직원 중 최근에 결혼한 남자 동료에게 "00씨도 그렇게 생각하죠?"라고 물어보니 그 동료는 "당연하죠. 집에서 아내말이 곧 법이죠."라며 다들 한바탕 깔깔 웃고 넘어갔다. 나는 여기서도 웃음 포인트를 1도 찾지 못했고 도대체 저 이사는 무엇을 근거로 저런 말을 저리도 당당하게 하는 지 참 의아했다.

4.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이 있던 몇 주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거의 왕래가 없던 나는 결혼식에서 졸업 후 십 년만에 처음 보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수 있었고 각자 어떻게 살고 지내는지 근황을 업데이트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나이 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듯이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은 회사 욕을 하느라 바빴고, 퇴사를 하고 싶어했으며, 이미 퇴사를 했거나 아직까지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퇴사할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라고 부러워했다. 어느 직업군이나 다들 힘들다는 이야기와 업무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인간관계와 시스템이 숨막히게 하는 게 더 힘들다는 하소연을 서로 하던 중 그 자리에 간호사인 친구도 있어서 '간호사도 굉장히 힘든 직업이지 않냐'는 질문과 함께 최근 '태움'논란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거론이 됐다.
그리고 그 답변은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논조였다.
그는 물론 '태움'문화가 나쁜 건 맞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도 있다며 처음 신입 간호사들이 정신을 바짝들게 만들어야 업무에 투입되었을 때 실수를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태움'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신입 간호사가 자살을 하여 큰 논란이 있었는데 사실 일정부분은 그 자살한 간호사도 책임이 있는거다, 분명 그 사람도 뭔가 잘못을 했으니 선배들이 더 힘들게 태움을 시켰을 것 아니냐, 그걸 못 버티면 안 된다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업무상 사고가 나는 건 간호사 업무량 대비 인원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고 묻자 그게 인원을 더 충당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간호사들을 더 많이 뽑으면 여자들만 더 많아져서 서로 뒷담화하고 가십거리 만들게 바빠서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차라리 몸이 힘들게 여유를 주지 않고 여자들끼리 모여 다니지 않게 만드는 게 좋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면서 '외부인'인 내가 볼 땐 그 사람이 마냥 피해자처럼 보이겠지만 실상 내부에서는 또 그렇지만도 않다며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위의 몇 가지 사례는 정말 일상에서 내가 요즘 듣고 겪은 일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러한 일들을 더 많이, 자주 마주하게 될텐데 저런 상황에 계속 놓이게 된다는 게 너무 너무 불편하다.
이게 그냥 불편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만 보거나 침묵하는 나의 모습도 같이 상상이 되어서 더 괴롭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면서 나도 이렇게 괴로운데, 정작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힘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어 미약한 목소리지만 계속해서 어디서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내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길고 긴 싸움을 위해 스스로도 더욱 더 공부가 필요하고, 이러한 혐오와 차별, 또 꼰대질에 어떻게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비슷한 경험들과 의견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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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막막하게 느껴져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쌈닭이 되고 싶은데 태생적으로 그런 성격이 아닌지라 저도 많은 경우 그냥 포기하게 되는데 이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ㅜㅜ

저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공감합니다 ㅠㅠ

공감합니다. 힘들지만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바꿔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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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edited)

헉..ㅜㅜ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야기들입니다.
특히 천만원 주고 이직 시키고 잘 수습했다는 얘기.... 아.

저희는 여자들 5명이서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는데요, 녹음 전에 그런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위와 비슷한 상황에서, 성희롱하거나 꼰대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동료나 상사에게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된다, 그런 말 하지 마시라, 고 종종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새 페미니스트라고 찍히고, '쎈 여자' '예민한 여자' 가 되었다는...
그리고 조직에서든, 어디에서는 여자가 자기 주장을 이야기하면, 너무 쉽게 공격받는다고 하네요.
그럴 때 곁에서 다른 여자들이 같이 목소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고 했어요.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이야기들에 대처하거나 맞서려면, 서로 지지해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더 슬픈 건 저게 어디 유별나게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적인 아재들 수준이라는 거죠.... ㅜㅜ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저런 소리도 함부로 못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