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경쟁이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하는 것이며, 남과의 경쟁은 부차적이다 (단상을 쓰려 했는데, 논문을 썼습니다 ㅠㅠ)
오늘 처음 보게 된 짤이 하나 있다. 언제 방송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고려대 경영대 교수로 현재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열일하는 장하성의 발언이다. "경쟁에서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경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떡하니 자막이 달려 있다. 마음에 안 들어 빨간 줄로 지웠다.
이 짤을 보니, 작년 가을 내내 나를 불쾌하게 했던 포스터가 떠올랐다. 내가 강의하는 중형강의실 복도 게시판에 몇 달 동안 걸려 있었다. '제3회 SNU[= 무려서울대학교] 토론한마당'의 주제로 "경쟁은 바람직한가?"라는 뻘한 주제를 안내하는 포스터였다. 홈페이지를 가보면 '대회 취지문'이라고 해서 긴 발제문도 있다. (4회 주제가 공지될 때 변경될 테지만, 링크를 걸어 놓을 테니 궁금하면 찾아보기 바란다.)
그 중 시작하는 두 문단만 소개하겠다. 이 토론 대회의 취지를 짐작케 한다. (근데 등수도 매기고 상금도 주는 '대회'면 벌써 경쟁하고 있는 거 아냐? 그래서 내가 뻘하다고 표현한 거다.)
경쟁은 한정된 자원을 여럿 중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지 결정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일련의 규칙들과 선발 기준이 마련된 상태에서, 경쟁은 그 규칙에 맞게 선발 기준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쪽에 자원이 돌아가도록 작동합니다. 대부분 출중한 능력이나 그에 따른 결과물이 선발의 기준이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요소들이 선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경쟁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같은 자원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선발 기준에 더욱 부합하는 사람들이 희소한 자원을 가져가버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우수한 결과물을 내고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나는 철학자로서 이 글에서 규정한 '경쟁'의 의미(장하성이 염두에 둔 것과 똑같은 의미)가 틀렸다고 주장하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틀렸다기보다는 편협한 의미라고 해야 맞겠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의미가 그렇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내 주장이 좀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니 하나하나 따져 보자.
첫째. 이 글에서 규정된 '경쟁'은 남(들)과의 경쟁을 뜻한다. 이걸 게임이론의 용어로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한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합이 0이기 때문에, 누군가 가지면 다른 사람은 빼앗긴다(갖지 못한다). 경제학에서 통용되는 정의라고 해도 좋겠다(인용된 첫 문장은 경제학 냄새가 풀풀 나지 않는가). '한정된 자원'이라는 표현은 가지려는 자보다 자원이 적다는 뜻이며, 이 경우 '의자놀이' 상황처럼 내가 갖기 위해서는 남이 가져서는 안 된다는 함축을 지닐 수밖에 없고, 이 표현을 사용해서 '경쟁'을 정의하기 시작하면, 올바로 정의할 수 없다. 즉, '남과의 경쟁'이라는 의미망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입학, 취업, 승진, 결혼 등 여러 상황에서 남과 다툰다. 그게 우리 삶의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규정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것이지만, '경쟁'은 과연 저런 뜻일까? 또는 저런 뜻이어야 할까?
둘째. 이 점을 고찰하기 위해 남과 겨루지 않는 '경쟁'을 생각해 보자. 이런 경쟁의 특징은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려는 노력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그런 노력도 결국은 남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남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혼자 노력하는 건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성장하려고 애쓰는 것에 어떤 명칭을 부여할 수 있을까? 어제보다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애쓰는 오늘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 주장의 핵심은, '경쟁'에 대한 일상적 정의 바탕에 깔린 더 중요한 측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 용어를 써서 표현하면, 일상적 의미의 경쟁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닌 경쟁, 즉 자원이 무한하거나 제한이 없더라도 일어나는 경쟁의 측면을 먼저 보아야 한다.
셋째. 여기에서 니체의 '권력의지' 개념이 유용하다. 들뢰즈는 니체의 '권력의지'가 '권력 추구'이기에 앞서 '권력 표출'이라고 해석한다. 세속적인 돈, 명예, 지위, 권한 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추구할 수 있는 본원적 힘이 있어야 한다. 그 본원적 힘을 니체는 '권력(Macht, Power)'이라고 불렀다. 한편 니체는 권력의 발현을 '권력의지'라고 불렀는데, 니체에게 '의지'란 '하려 함'을 뜻했으며, '권력이 무언가를 하려 함'이 곧 '권력의지'였던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세속적인 권력을 포함해서, 도무지 무언가를 추구하려면 본원적 힘이 먼저 전제되어야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니체가 찾아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래에는 니체의 원문을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한 구절이니, 귀찮거나 어려울 거라 생각되는 분은 인용을 건너뛰자.)
‘힘’이라는 승리에 찬 개념은, 우리의 물리학자들이 신과 세계를 창조해내는 데 사용한 수단인데, 여전히 보완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내적 세계가 거기에 부여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을 나는 ‘권력의지’라고, 즉 권력의 표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요구라고 부르는데, 즉 그것은 또 창조적 충동으로서의 권력의 사용, 권력의 행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요구 등이기도 하다. 물리학자들은 ‘원격작용’을 자신들의 원리에서 제거하지 않을 것이며, 척력 (또는 인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달리 도리가 없다. 즉, 모든 운동, 모든 ‘현상’, 모든 ‘법칙’은 단지 하나의 내적 사건(Geschehen)의 징후라고 파악해야만 하며, 인간의 유비(Analogie)를 끝까지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동물에서도 모든 그 충동을 권력의지에서 이끌어내는 일이 가능하며, 마찬가지로 유기적 생명의 모든 기능을 이 유일한 원천에서 이끌어내는 일도 가능하다. (니체, 유고, 1885년 6월~7월, 36 [31])
이 구절에서 핵심 문장은 이것이다. "하나의 내적 세계가 거기(=힘)에 부여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을 나는 ‘권력의지’라고, 즉 권력의 표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요구라고 부르는데, 즉 그것은 또 창조적 충동으로서의 권력의 사용, 권력의 행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요구 등이기도 하다." 니체가 권력의지를 정의한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내가 니체의 '권력의지' 개념이 유용하다고 한 것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권력'과 니체가 생각한 '권력'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점에 주목하자는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일반적인 '경쟁'과 그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경쟁'은 구별되어야 한다. 나는 니체의 '권력의지'가 그런 경쟁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넷째. 그렇다면 근원적인 '경쟁'은 왜 굳이 '경쟁'이라는 이름을 여전히 지녀야 할까? 다른 용어로 바꾸면 훨씬 좋지 않을까? 이 점을 알아보기 위해 '경쟁'으로 번역되는 말의 본래 뜻을 추적해 보자. 옥스포드영어사전(OED)에 따르면, 영어 competition 또는 compete의 어원은 라틴어로 거슬러가는데, 라틴어 competere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추구하다'를 뜻하는 petere가 합쳐진 말로 놀랍게도 '함께하다, 일치하다' 또는 '함께 (무언가를) 추구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중세 프랑스어 compéter를 통해 17세기 초 영어로 유입되어, 잘 쓰이지 않다가 18세기 후반 '(남과 나란히)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다'라는 뜻으로 부활했으며,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또는 '아메리카' 낱말로 여겨졌다. 시장에서 사용되는 의미(오늘날 일반적인 의미의 '경쟁')는 1840년대이며, 1857년에 운동경기에서 사용되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이로써 오늘날 흔히 쓰이는 용법은 산업혁명 시기에 비로소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원이 급증하는 시기에 자원이 한정되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본래는 '함께 추구하다'라는 의미가 '남과 다투면서 추구하다'는 뜻으로 의미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경쟁'의 본래 의미를 되찾으면 되지, 의미를 빼앗긴 채 다른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다섯째.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 과연 산업혁명 전에는 오늘날의 '경쟁'이 없었을까? 물론 언제나 경쟁은 있었다. 제한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인간 사회에서건 자연에서건 말이다. 그건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여담인데, 흥미로운 건 "경쟁에서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경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라는 팩트다. (많이 가진 자가 꼭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앞서 말한 장하성 짤을 찾다가 본 문구가 마음을 찌른다. 한 청년이 (지우는 선을 긋고) 이렇게 말하더라. "이번에는 이긴 다음에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 안될까요?;;;" 하나 더 지적하자면, 앞의 '서울대 토론한마당'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경쟁을 권해 놓고 마치 그런 건 경쟁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위선을 부리는 경우도 많다(나는 토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논의를 보지 않아서, 이 글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나는 현실추수주의자가 아니다. 현실에서 이런저런 일이 사실로서 벌어지고 있으니까 인정하자? 절대 그런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경쟁에 대한 비판 담론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체로 경쟁의 폐해를 문제 삼는다. 대표적인 예로 입시 경쟁이 있다. 이런 부류의 경쟁을 두고 '과도한' 경쟁이라거나 자발적이지 않은 '타율적' 경쟁이라거나 사람이나 사회가 '황폐해진다'거나 하는 지적이 나오고, 불공정 경쟁의 문제도 언급되곤 한다(앞의 서울대 발제에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모두 과녁을 빗나가고 있다. 나는 경쟁 비판의 논거가 부당하다고 본다. 현실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가지려는 사람은 많고 가질 것은 적은데 어찌해야 하는가? 누군가가 더 먼저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일단 분배가 있은 후에, 갖지 못하거나 덜 가진 자가 불만을 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분배가 시작될 때 더 먼저 더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곧이어 제기되는 문제는 분배의 기준이다. 기준이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만큼 적절하고, 과정이 투명하고 건전하며, 심판이 정직하다면, 결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경쟁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사회 정의의 문제이다. 자기 몫이 제대로 평가 받는 공정한 사회에서 경쟁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여섯째. 나는 경쟁을 비판하는 사람이 정작 비판해야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주장하겠다. 더 나아가, 그런 비판자는 진실을 가리는 나쁜 일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판하겠다. 앞에서 보았듯이, 경쟁은 본래 남과의 아귀다툼이 아니라 남과 함께하는 추구이다.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건, 생산하고 창조한다는 뜻이다. '한정된 자원'이라는 편향된 틀로 세계를 보면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만이 보인다. 하지만 여태까지 없던 것, 또는 여태까지 가치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던 것을 만들어낸다면,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런 작업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작업이고, 그런 나들이 모여 함께 해나가는 작업이다. 함께 승리하는 '윈윈 게임(win-win game)'인 것이다. 경쟁의 본질은 '윈윈 게임'이다. 나는 스팀잇이 그런 곳이라고 포스팅한 적이 있다. (참고: 스팀잇은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아니다)
일곱째. 방금 전에 나는 아주 중요한 발언을 했다. 무엇인고 하니 함께 모이기 전에 먼저 모일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추구하는 나'가 먼저 있지 않고서는 '함께 추구함'이 성립할 수 없다. 이런 까닭으로 앞서 말한 '어제보다 나은 나'가 되려는 노력, 다시 말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벌이는 경쟁'이 가장 밑바탕에 있다. 이것이 경쟁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남과 함께 추구하기 전에, 남과 겨루기 전에, 먼저 어제의 나와 겨뤄야 한다. 그것은 자기 성장의 추구이다. 김연아가 아사다마오와 경쟁했다고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김연아는 늘 어제의 김연아와 경쟁했다. 남을 이기기 위해 하는 경쟁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 경우라면 1인자가 되는 순간 동력이 사라진다. 나날이 나아지는 자신을 확인하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일만이 지속력을 갖는다. 남과의 경쟁은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생기는 부수적인 일이다. 남을 신경쓰지 않아도 남과 부딪히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여덟째이자 마지막. 자신과의 경쟁이 주로 '예술'이나 '체육'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하자. 오늘날 많이 상업화되긴 했지만 예술이나 체육은 '돈'보다 '가치'를 좇는 작업이다. '경쟁'이란 '가격'을 추구하는 활동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경쟁은 홀로 하는 싸움이다. 이 지점까지 와야 '경쟁'에 대해 바르게 고찰했다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경쟁'에 해당하는 '아곤(agon)'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 아곤은 남과의 경연(競演) 형태로 드러나지만(드러날 땐 그럴 수밖에 없다), 그 근본에는 '가치'의 추구가 있었다. 짧게 인용문을 보자(이 훌륭한 책의 서평을 언제 포스팅할 생각이다).
우리는 그리스인이 자신의 '티메' 곧 정당한 칭송의 보상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보았다. 그리스인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본질적으로 경쟁적이고, 야심만만하고, 자기가 주도하기 원한다. (...)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마다 '경쟁' 곧 '아곤'(agon)의 개념을 만난다. 우리가 빈약하게도 '경기'라고 번역하는 낱말은 그리스어로는 '아고네스'(agones)다. 연극 축제도 '아고네스'다. 시인과 시인이, 배우와 배우가, 합창단장이 합창단장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영어의 'agony'(고통)의 직접적인 어원이 '아곤'이다. 인간의 진면목은 바로 투쟁의 고통에서 드러난다. (H. D. F. 키토,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박재욱 옮김, 갈라파고스, 2008, 369쪽)
경쟁의 고뇌(agony)는 삶 자체의 활동이다.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가? 고뇌는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지 않는 자신을 느낄 때 생겨난다.
이상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글의 내용이 마음에 드시면 스팀잇 사랑 3종세트('팔로', '보팅', '리스팀')으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무분별하게 생각도 해보지 않고 경쟁으로 뛰어들게끔 만드는 사회나 그것을 따라가는 우리나.. 모두 생각해 볼 것들이 많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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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라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쟁이 남을 짓밟고 서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삶에 적용하는 순간 사바나의 하이에나 비슷한 존재가 되죠. 여기에 약간의 성공이 추가되면 지가 사자라고 착각하는 하이에나가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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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없어서, 오해가 많다고 봅니다.
서울대마저 저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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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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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비판할 것이 아니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비판하라는 말씀은 백번 동의합니다.
그러나 경쟁은 홀로하는 싸움이다라는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경쟁은 대상이 있는 싸움이 아닌가요?
쓰신 글에서도 "함께 (무언가를) 추구하다"라는 표현처럼 함께할 타인 혹은 대상이 있어야 경쟁이 성립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의 경쟁, 과거의 나와의 경쟁은 단지 수사에 지나지 않는 표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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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대상(=목표)가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남을 눌러야만 한다는 걸 '전제'하지는 않지요.
남을 누르면서 이루어지는 경쟁 전에, '함께 추구함'이 먼저라는 점을,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다시 '(스스로) 추구함'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feat.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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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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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할 때 어제의 나보다 잘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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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게 공감합니다...
항상 고뇌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약간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는걸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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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서로간의 발전과 자극을 위한 경쟁은 나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사회에서의 경쟁이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네요.
이 땅에서의 경쟁은 서로 피곤하면서도 많은것을 잃게 만들수도 있기에 그 경쟁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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